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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까워진 2백만 동포의 어제와 오늘(중국 조선족: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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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까워진 2백만 동포의 어제와 오늘(중국 조선족:10)

입력
1992.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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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 순결화/한글표기규정 어기면 “처벌”/성마다 「어문지도소조」구성 행정지도/간판에도 “한자보다 한글 꼭 위에 쓰게”/두음법칙·사이시옷 철저 배제… 세대간 언어혼란 겪기도연변에 간 한국인들은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한글간판을 보면서 뿌듯함과 흐뭇함을 느끼게 된다. 남의 나라 땅에 살면서도 민족의 언어와 문자를 온전하게 지켜가고 있는 동포들이 믿음직하고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연변의 간판과 각종 표지판은 엄격한 규칙에 의해 제작·부착되고 있다. 자치주의 행정기구인 어문사업위원회는 연변조선어문사업조례(88년 제정)에 따라 한글과 한자를 함께 쓰되 반드시 한글이 위에 가도록 하고 간판을 2개 내걸 경우 한글간판은 오른쪽,한자간판은 왼쪽에 설치토록 하고 있다.

이 규정을 어기면 1차 경고한 뒤 그래도 안고치면 50원(한화 7천5백원 상당)까지 벌금을 물린다. 중국의 월급수준에서 50원 벌금은 거액이다.

그러나 심양철도국 산하인 연길역의 푯말은 여전히 한자가 위에 올라 있어 고칠 것을 요구하는데도 『철도부의 지시문건이 없다』 『우리도 자치주에 살긴 하지만 소속이 다르다』는 이유로 불응해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54년에 조선어가 연변의 공용어로 지정된 이후 중국 조선족은 조선어순결화운동(우리의 국어순화운동)을 통해 우리의 어문을 지키고 가꾸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54년 9월20일 채택된 중공헌법 1장8조에 「각 민족은 모두 자기의 언어문자를 사용하여 발전시킬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한 이후 조선어 사용·연구가 활발하게 추진되기 시작했다.

교과서에서 한자가 빠지고 세로쓰기가 가로쓰기로 바뀜으로써 중국 조선족의 언어생활에는 큰 변화가 초래됐다.

이어 57년에 연변일보가 조선어 순결화 문제에 관한 지상토론을 전개,조선어 규범화 사업을 정착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66∼76년의 문화대혁명기간은 조선어문연구가 전면 중단되는 암흑기였다.

77년 5월 결성된 동북3성 조선어문사업협의소조는 조선어문사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 길림성 부성장을 조장으로 각성의 부성장이 대등한 지위로 참여하는 이 기구가 협의결정한 언어를 쓰지 않을 경우 처벌을 받는다. 각 성에는 조선어문사업 지도소조가 구성돼 실무책임을 맡고 있다.

협의소조가 의무적으로 사용토록 공문을 통해 지시하는 언어는 규범화위원회의 결정을 거친 것들이다. 20여명으로 구성된 규범화 위원회는 다수결원칙으로 중국 조선족이 사용해야 할 말을 해마다 사정하고 있다.

규범화의 원칙은 ①오래전부터 써온 말은 그대로 쓴다 ②외래어 한자어는 쉽게 바꾼다 ③남·북조선의 맡은 양쪽에서 다쓰는 것은 그대로 쓰되 서론 다를 경우 중국에서 쓰는 말과 일치하는 쪽을 취하고 전혀 다르면 다듬어 쓴다는 것이 큰 줄거리이다.

규범화위원회에서는 늘 논쟁이 계속된다. 가령 중국인들은 가을에 벼를 수확하는 것을 대추수라 하고 부업으로 호박 머루 오미자 등을 수확하는 것을 소추수라 부르는데 이 「소추수」를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격론을 벌인 끝에 규범화위원회는 일단 「야생식물채집」으로 잠정결정했으나 여전히 반대가 많은 실정이다. 어떤말들은 신문 잡지 등에서는 쓰는데 대중이 따라 주지않아 사어가 돼버리는 경우도 있다.

중국인들이 쉴새없이 만들어내는 신조어의 처리도 골칫거리다. 「화평연변」을 「평화적 이행」으로 「흑화」는 「밀매품 금제품 부정품」,「계획생육」은 「산아제한」 등으로 규범화했으나 두가지가 혼용되거나 한자어만 그대로 사용되는 경우가 흔하다.

사물의 표준을 뜻하는 「수평」은 표준어가 「수준」으로 정해졌으나 중국 조선족은 흔히 『문화수평이 낮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들의 어문규범이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는 것과 사이시옷을 쓰지 않는다는 점. 그러다 보니 학교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은 표기대로 「랭면」 「치렬하다」,「나무잎」이라고 발음하는 반면 노인과 학교교육을 덜 받은 사람들은 옛 습관대로 편하게 발음하는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띄어쓰기 규칙도 너무 복잡해 대학을 나와도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40주년 기념대회」처럼 토없이 결합된 명사는 모두 붙여 쓰고 「앞 사람」은 띄어 쓰되 「사람앞」은 붙여쓰게 돼있어 까다롭고 어렵다.

지금까지 중국 조선족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어문정책을 따라왔다. 54년에 나온 「조선어철자법」은 「표준어는 조선인민 사이에 사용되는 공통성이 가장 많은 현대어 가운데서 정한다」고 북한과의 차이를 줄인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77년에 중국 제1차 조선어문사업회의가 열렸을 때에도 66년에 북한에서 나온 「조선말규범집」의 철자법 띄어쓰기 표준발음법 문장부호법이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78년의 제2차회의도 「조선어 명사 술어 통일원칙과 방안」을 제정,공포했지만 중국조선족 고유의 사전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의 「문화어사전」이 널리 퍼지고 또 중국에서의 실제사용에 그 말들이 거의 부합돼 북부방언을 그대로 쓰게 됐다.

이미 62년 6월에 주은래총리가 『조선말은 평양어를 따라야 한다』고 지시한 바 있었고 한국과는 단절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북한 어문정책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현재 조선어문사업에서 장애가 되는 것은 한어를 잘 써야 출세한다는 생각. 연변의 당대표대회 인민대표자회의 등 규모가 큰 공식회의는 반드시 조선어로 진행하도록 돼있다. 또 직장 기업단위에서도 조선족 구성원이 많으면 조선어로 회의를 하도록 돼있으나 말이 서투른 사람이 많고 그러다보니 회의시간이 길어지는 현실적 불편 때문에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52년에 62%이던 자치주의 조선족 비율이 40년후인 91년말 현재 40.5%로 낮아지면서 조선어의 지위는 점차 위협을 받고 있다.

중국조선어학회 이사장,중국조선어규범화위원회 주임 위원인 최윤갑교수(62·연변대 어언문학연구소)에 의하면 조선어의 사용범위가 줄어드는 것이 어문사업에서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57년 이전에는 모두 학교와 적지 않은 기관 공장에서 조선어를 위주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농촌과 중·소학교,조선어문 연구기관,조선문언론기관을 제외하면 모두 한어를 위주로 쓰고 있다. 그 이유로는 민족인구 구성비율의 역전외에 조선족의 한어 구사수준이 높아진 점,연변을 제외한 도시에서 조선족 집거지구가 없어진 점 등이 꼽힌다.

조선어를 알타이어 계통에 넣는 것이 타당한가를 필생의 연구사업으로 삼고 있는 북경대 조선어학과장 안병호교수(64)는 조선어순결화를 『가급적 중국말의 영향에서 벗어나 민족의 이질화를 줄여보자는 운동』이라고 설명한다. 안 교수는 『세대가 지나면 규범화하는 정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조선족이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며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단절과 이질화를 실감케한다.

중국어에서 들어온 말이나 함경도 평안도사투리,중국조선족 사회에서 의미가 변화된 생소한 어휘까지 섞이면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과 다름없게 된다.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 중국 조선족도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것을 불편한 점으로 꼽고 있다. 91년에 서울에서 한달동안 생활했던 운전사 이명광씨(33·흑용강성 하얼빈시)는 말이 잘 통하지 않았던 사례를 들면서 한국인들이 영어 등 외래어를 많이 쓰는것에 거부감을 표시했다.

기독교도인 회사원 김애선씨(27·여·하얼빈시)도 말이 서로 다른 것을 가장 큰 불편사항으로 지적했다.

중국조선족은 기본적으로 2중언어인이다. 나아가 영어 등 외국어까지 배워야 하는 현재 상황은 그들을 3중언어인의 곤경에 처하게 했다.

중국조선족은 8·24 한중수교로 한국과의 언어교류,학계교류가 촉진되면서 새로운 어문상황을 맞았다. 출판물에 한자를 혼용하는 문제도 새로 제기되고 있다. 중국은 간자를 쓰고 한국은 정자를 쓰는 것이 어문교류의 현안이 되고 있다.

「언어의 순결성이 언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지켜질 수 있는가」는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과 같은 「무분별한 외래어 남용」을 거부하는 중국조선족에게 조선어순결화는 더욱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다.

□특별취재반

임철순(사회부 차장)

강진순(사회부 기자)

조상욱(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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