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 본궤도 오르자 본격 부상/오락가락 행보후 결국 “불발탄”14대 대선출마와 관련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행보는 결국 「본향」인 대우그룹의 잔류로 낙착됐다.
신당 창당 움직임과 함께 그의 정치참여 의지가 밖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김 회장은 그동안 정계와 대우의 울타리를 수차례 넘나들며 숙고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면 이같은 그의 강한 정치성향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개혁론」과 「허리론」으로 요약할 수 있는 그의 독특한 정치관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이것이 한때 김 회장으로 하여금 대선출마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든 근인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이같은 정치적 신념이 김 회장의 정치야망을 발아시킨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대선 출마파동도 그의 이같은 정치적 소신에서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먼저 김 회장은 현 정치권이 크게 개혁돼야 한다는 주장을 거듭 피력해왔다.
『정치의 「비생산성」,정치인의 현실안주성향,구 시대적인 정치행태 등이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소신을 펴왔다.
또 낙후된 정치가 경제의 발전도 가로막고 있어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김 회장이 이처럼 정치개혁과 연결지어 제시하고 있는 다른 주장이 「50대 지도자론」.
「50대 역할론」 「50대 영웅대망론」은 지난 8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김 회장이 처음으로 주창한뒤 지금까지 줄곧 김 회장 정치론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최근 대선출마 파동에서도 그의 50대 역할론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지난 25일 광주 전남대 경영대학원 주최 특강에 이어 「동경발언」 「김포회견」 등 미묘한 시점마다 그는 50대 지도자론을 강조햇었다. 그의 나이가 50대라는 점 때문에 미묘한 추측을 유발한 것도 사실이다.
「정치개혁론」 「50대 지도자론」이 나올 때마다 그는 「국민운동」까지 제기했었다.
『정치참여가 대선 출마만을 의미하는게 아니다. 개혁을 위한 「국민운동」 같은 것도 생각할 수 있다.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고난의 길을 갈 수도 있다』
정치개혁론이 현실정치의 행태와 내용을 비판한 것이라면 30대 후반∼40대의 「허리론」은 정치판 인적 구성상의 문제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김 회장은 이번 파동의 와중에서 이와관련해 『우리 정치계에는 「허리」가 없다는게 문제다. 30대 후반∼40대 지도자가 없어 세대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국민적인 합의를 도모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많다. 이를 위해 정치인재 양성기관을 설립하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었다.
지난 5월 대우기술연구원 설립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일본의 마쓰시타 정치의숙과 같은 신진 정치인 양성기관을 세우고 싶다』고 말했었다. 이후 대우그룹내에 「한국정치연구회」라는 조직체가 가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회장은 이같은 현실비판적 정치판을 총선을 앞둔 지난해 12월께부터 본격적으로 외부에 개진하기 시작했다.
정계·학계·재계·언론계 등 각계 인사와 접촉을 통해 자신의 정치소신을 밝히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어 민자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이종찬의원을 「물밑」 지원하다 좌절됐고 8월초께는 「김우중 신당설」이 터져나왔다.
이런 와중에 「김우중 대선출마」 문제가 다시 집중조명을 받게 된 것은 노태우대통령의 9·18조치로 이달 중순께부터 신당 창당이 본궤도에 오르면서부터.
신당은 「국민후보」 대상자를 교섭했으나 여의치 않게 되자 김 회장을 영입대상으로 상정케 된 것. 또 김 회장 자신도 신당 출범에 때맞춰 각계 인사와 접촉하면서 대선출마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아 「김우중 후보설」이 급격히 부상하게 됐다.
그러나 김 회장은 일체 자신의 진의를 공개하지 않고 있던중 지난 25일 광주에 내려가 서재경 대우기조실 이사를 통해 「정치 불참여」를 공식 표명했다. 이로인해 「김우중 후보설」의 불길은 수그러드는듯 했다.
다만 정치 불참여를 김 회장 본인의 입으로 확인될 수 없었던 점이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26일 상경한 김 회장은 곧바로 일본으로 출국했다. 27일 상오 동경에서 한국특파원들과 만난 김 회장은 다시 출마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날 저녁 귀국해 김포공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아예 서 이사의 25일 광주발표 자체를 부인했다. 그러면서 신당 일각의 「대우정리」 등 전제조건 제시에 대해서는 완강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긍정과 부정의 갈림길에 서서 신당측의 입장정리를 기다리는 듯했다.
28일에는 신당측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나왔다. 창당준비위의 이자헌·박철언 부위원장이 김 회장을 만나 후보영입 의사를 공식 전달한 것이다. 그러나 영입 전제조건이 어떻게 해결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29일 상오 뜻밖에 김 회장은 자신의 결심을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했다.
그가 왜 이런 결심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만이 나오고 있을 뿐이다.<신효섭기자>신효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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