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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민주당 정부와 한국/윤국병(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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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민주당 정부와 한국/윤국병(화요칼럼)

입력
1992.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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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충격이 한국에서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미 대통령선거를 1주일 앞두고 뉴욕 타임스와 CBS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공화당의 부시 대통령과 민주당의 클런턴 후보간의 지지율 격차는 5% 포인트로 좁혀졌으나,클린턴 후보의 당선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인 것 같다.카터 대통령이후 12년간 미국과 비교적 밀월시대를 누려온 한국은 클린턴의 민주당 정부탄생을 앞두고 적잖이 술렁이고 있다. 12월 대선을 앞둔 우리 정계는 정계대로 클린턴을 둘러싼 설전을 벌이고있고 경제계는 경제계대로 클린턴이 몰고 올지도 모를 통상압력 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오래된 「묘한 악연」

클린턴 행정부의 탄생이 우리에게 어느정도의 충격파를 줄 것인지는 클린턴이 아직 대외정책,특히 대아시아 정책에 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어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정책참모나 지지자들이 밝힌 기고 또는 발언 등을 통해 어림할 뿐이다.

그러나 미 민주당 정부 특히 카터 행정부와 한국정부의 관계를 되돌아보면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60년대이후 미 민주당 정부와 한국정부와의 관계는 묘한 악연을 갖고 있다.

61년 43세의 젊은 나이로 35대 대통령이된 민주당의 케네디 행정부는 그해 5월 한국에 군사혁명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보게 된다. 도덕성을 중시하는 미 민주당 정부가 혁명정부의 탄생을 달갑게 볼리가 없다. 60년대초의 한미관계는 결국 「도덕성」과 「쿠데타」가 맞물려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된다.

미 민주당 정부와 한국정부와의 악연은 카터 행정부때 극에 달한다.

77년 공화당의 포드 대통령을 누르고 39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카터 대통령의 행정부는 유신시대의 한국정부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다.

그것은 바로 카터가 내세운 인권외교와 유신이 상극을 이룬 결과였다. 당시 박정희대통령과 카터 대통령간의 일전은 그 때의 한미관계가 얼마만큼 심각했었는가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79년 6월30일 내한한 카터는 통상적인 외교관례를 깨고 김포공항에서 바로 헬기편으로 미 전방 사단본부가 있는 캠프 케이시로 직행,1박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노골적인 불쾌감의 표시였다. 이튿날 청와대를 찾은 카터에게 박 대통령은 단독대좌에서 30여분간 한국의 안보상황,인권문제 등을 일방적으로 설교하듯 설명했다. 카터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화가 치밀대로 치민 카터는 청와대 회담이 끝난뒤 측근들에게 박 대통령에게 대한 심한 언급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한·미간의 이같은 심각한 상황이 결국 10·26사태로 이어졌다고 보는 시각마저 있을 정도였다.

○40대 클린턴 패기

클린턴 행정부 등장이후의 한·미관계를 불안하게 보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카터 행정부 때의 한·미관계,그리고 미 민주당의 인권외교와 보호무역주의정책 등 때문이다. 여기에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 60대의 경륜을 갖춘 지도자인데 비해 민주당 출신 대통령은 40대 또는 50대 초반의 패기에 넘친 젊은세대라는 것도 46세의 클린턴 행정부 등장이후의 한·미관계를 불안하게 보는 이유중의 하나일 것이다.

패기는 이상을 추구하고 경륜은 현실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최근 외무부가 국감보고를 통해 클린턴 이후 한·미관계의 상당한 변화를 예측한 것도 이러한 이유들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클린턴 이후에도 미국의 대한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이들의 논리는 한국이 지금 처해있는 상황이 인권이나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케네디,카터 행정부 때와는 다르다는 점,그리고 클린턴 자신이 민주당의 좌파를 극복하고 중도온건 노선을 택해 성공한 지도자라는 점 등 때문에 결코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대한정책 보다는 미국의 대아시아정책,특히 대중국정책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문제를 안고 있는데다 매년 10%씩 군비를 증강하고 있는 중국과 클린턴 행정부와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경직될 가능성이 높고,그렇게 될 경우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도 심각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클린턴 이후의 대한정책을 보는 시각이 이처럼 엇갈리고 있으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주요 외교상대국이 권력이동의 큰변화를 맞고 있다는 현실이다.

경험칙으로 보아 그것이 우리에게는 껄끄러운 상황이 될수도 있으며,그렇게 될 경우 우리 외교는 또 한번 시련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 시련을 외면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처지이다. 민주당과의 외교채널이 없는 것을 탓할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그것을 만들어야 한다. 6공정부는 외교에 강한 정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평가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편집국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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