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대입땐 서울대 전체수석제34회 사법고시에서 수석합격한 원희용씨(28·서울대 공법학과 졸)는 대학시절 노동운동에 몰두했던 운동권 출신이다.
23일 상오 9시 경기 광명시 하안1동 주공아파트 145동 108호 자취방에서 수석의 소식을 들은 원씨는 『시험 준비기간이 짧아 좋은 성적으로 합격할 줄은 몰랐다』며 『고향 제주에서 못난 자식 뒷바라지 하시느라 주름살만 느셨을 부모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82년 대입 학력고사에서 3백32점으로 전국 수석을 차지하고 서울대 법대에 수석입학했지만 원씨의 대학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캠퍼스 곳곳에 상주하는 사복경찰관들과 실랑이를 벌이던 1학년 2학기때부터 원씨는 사회의 모순을 보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시 법대 사회과학연구 동아리에서 읽은 「전태일평전」은 「실천」만이 현실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83년초 학내시위에 가담했다가 한학기 유기정학 처분을 받자 원씨는 당분간 학업을 포기하고 구로공단에서 야학을 열어 공장근로자들에게 중·고교 과정과 노동법·근로기준법 등을 가르쳤다.
85년부터 2년여동안엔 휴학 복학을 거듭하며 인천의 공단일대에 위장취업,기름때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살았다.
공장생활에서 생각과는 달리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못한 원씨는 87년 6월 항쟁이후 급변하는 사회상황을 지켜보며 관념지향적이고 비판 일변도였던 기존의 운동방식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89년 「형편없이 낮은」 학점으로 간신히 졸업한뒤 진로걱정을 할무렵엔 이미 친구들 대부분이 사회진출을 한 뒤였다.
운동권 출신의 잇단 국가고시 합격 소식을 듣고 원씨는 90년 12월 뒤늦게 사시에 도전할 결심을 했다. 모교 도서관에서 하루 10시간씩 하루도 빠짐없이 육법전서와 시름한지 1년반만에 원씨는 수석합격의 영예를 따냈다.
제주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2천여평 감귤농사하는 아버지 원응두씨(58) 어머니 김춘년씨(58) 사이의 2남4녀중 차남인 원씨는 『늦게나마 가족들의 걱정을 덜어주게 돼 홀가분하다』며 『사람에 대한 애정 때문에 노동운동을 시작했듯 법률가로서도 같은 자세로 일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광명=변형섭기자>광명=변형섭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