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금리 연내인하… 하향안정기조 정착 유도/“88년보다 여건 다소 불리” 신중추진 주장도향후 금리정책의 가닥이 잡혔다. 정부는 금리자유화는 금리수준을 하향안정 시키면서 시행되어야 한다는 대전제아래 우선 금리의 하향안정기조를 정착시켜 나가기로 했다. 연내에 은행공금리를 1∼1.5% 포인트 가량 인하한 다음 내년 상반기에 2단계 금리자유화를 시행키로 한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은행공금리 인하카드가 한때 물건너 간 것으로 보이다가 다시 살아난 것은 은행규제 금리를 내리지 않고 2단계 금리자유화를 시행할 경우 자유화 초기의 부작용이 예상보다 클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시장실세금리가 무서운 속도로 내리고 있지만 이를 놓고 금리 하향 안정기조가 정착되었다고는 아직 단정하기 이르다. 불의의 경제적 충격이 가해져 금리가 한번 뛰기 시작할 경우 걷잡을 수 없이 튀어오를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의 금융구조나 금융관행상 은행의 주요 여수신금리를 일시에 자유화(2단계 자유화)시킬 경우 수신금리의 상승은 불을 보듯 뻔하고 이것은 당연히 여신금리 상승을 부추기게 된다. 특히 수신경쟁이 과열될 경우 은행 등 금융기관의 경영부실화도 심화될 것이다.
○…재무부가 2단계 금리자유화의 연내 실시를 반대하는 것도 사실은 지난 88년말의 금리자유화 실패 경험 때문. 한 당국자는 『시장실세금리가 크게 떨어지는 등 2단계 금리자유화의 여건이 조성되어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금리수준이 이제 겨우 13%대에 진입한 상황인데 이 하나만을 보고 주요금리를 자유화시킬 수는 없다』며 『지난 88년말의 좋은 여건에서도 금리자유화 정책이 실패한 사실을 염두해 둘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88년 말의 여건과 비교해 볼 때 전체적으로 지금이 더 불리하다는 것.
○…지난 88년의 경험을 되새겨 보는 것은 여러가지 면에서 의미가 크다. 그 때도 실세금리가 13%선이었고 시중자금사정도 양호했다. 실세금리 수준의 질에 있어서는 그때가 오히려 더 건실했다. 지금의 실세금리 수준은 12월 들어서야 이론적 적정치(실질성장률+물가상승률)에 접근하고 있지만 88년말에는 이론적 적정치(19.5%)보다 무려 5.8% 포인트나 낮았다. 금리 하향안정세가 확실했던 것이다. 자금사정의 내용에 있어서도 지금처럼 대기업은 아주 좋은 반면 중소기업은 사경을 헤매는 이중구조 현상이 없었다. 부도율도 0.04% 수준으로 지금의 0.14%보다 아주 낮았다. 증시도 활황세를 보였고 국제수지는 대규모 흑자를 냈다. 기업의 자금조달루트가 지금보다 다양했던 셈이다. 실물경기는 유례없는 호황. 특히 정권초기여서 중요정책 추진의 침투력이 강했다. 다만 지금보다 나빴던 점은 물가상승과 부동산투기. 사공일 재무장관(당시)은 이같은 상황에서 금리자유화의 여건이 충분히 조성되었다고 판단,금리자유화 조치를 과감히 시행했다. 그러나 자유화 초기의 부작용인 급격한 금리상승을 감당하지 못해 3개월도 못돼 두손을 들고 말았다. 금융시장은 혼란의 도가니속으로 빠져 들었다. 국내 굴지의 가전업체인 K사가 주거래은행인 H은행에서 부도(1차)를 내고 만 것이 대표적인 사례.
○…흥미있는 사실은 88년에는 재무부가 금리자유화에 앞장섰고 한은은 반대입장을 취했던데 비해 지금은 거꾸로 한은이 공세적이고 재무부가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 또 예나 지금이나 이론에 강한 학자출신(조 총재·사공장관)이 적극적인 반면 실무에 강한 재무관료 출신(이 장관)과 정통 한은출신(김 총재)은 조심스런 접근을 하고 있다. 금리정책의 최종결정권자인 재무장관의 금리자유화 스타일도 다르다. 사공장관은 서구이론에 입각하여 일시에 주요금리를 자유화시켰다. 이 장관은 행정지도를 어느정도 가미한 일본식의 단계적 자유화정책을 구사하고 있다.<이백만기자>이백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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