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게임 수세… 보수파 대공세 예고【베를린=강병태특파원】 러시아 의회가 21일 최고 헌법기관인 인민대표대회 개최를 연기하자는 옐친 대통령의 제안을 거부한 것은 옐친의 집권이래 최대의 정치적 패배로 규정되고 있다.
독일 언론들은 이를 옐친과 급진개혁 노선에 대한 치명적 타격으로 규정,그의 권력유지 가능성 자체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등 향후 러시아의 정세변화에 비상한 관심을 나타냈다.
인민대표대회 개최문제는 최근 급속히 가열되고 있는 옐친과 보수세력간의 「파워게임」의 중대고비로 간주됐었다.
인민대표대회는 헌법상 연간 2차례 열리게 돼 있다. 이에 따라 상설의회인 최고회의는 이미 2주전에 오는 12월1일부터 9일까지 하반기 회의를 소집하기로 결의했었다. 그러나 옐친은 오는 인민대표대회에서 급진개혁정책과 자신에 대한 반대세력의 총공세를 예상,내년 3월로의 회의연기를 모색했었다.
소련시절인 90년 첫 국민직선에 의해 구성된 인민대표대회는 보수세력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인민대표대회는 지난해말 소련붕괴 직후 급진개혁 열망이 팽배한 상황에서 옐친에게 개혁추진을 위한 초헌법적 비상대권을 부여하는데 동의했다. 따라서 옐친은 대통령으로 개혁조치를 단행하는 한편 의회승인 없이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민대표대회는 이미 지난 4월 회의에서 급진개혁의 부작용을 이유로 비상대권 박탈과 가이다르 총리대행정부의 불신임 등으로 위협,옐친을 궁지에 몰았었다. 이후 경제파탄속에 보수세력의 발언권과 조직은 한층 강화됐다. 이에 따라 이번 회의에서는 급진개혁 노선 수정압력이 거세지는 것은 물론 옐친이 기대해온 대통령 비상대권의 연장도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비상대권의 박탈은 급진개혁정책의 전면 수정과 가이다르 총리정부의 와해를 의미한다. 여기에 구 공산당 골수세력과 민족주의 세력 등은 옐친 자신의 퇴진까지를 외치고 있어 인민대표대회는 옐친에겐 실로 「악몽」이 될 것이란 예상이었다.
옐친은 얼마전까지만해도 『인민대표대회가 개혁을 가로막을 경우 의회자체를 조기 해산하고 대통령권한을 강화한 신 헌법을 국민투표로 채택하겠다』고 위협했었다.
그러나 급속히 대중적 지지를 상실하고 있는 옐친은 지난주 20개 자치공화국 지도자들의 지지를 모아 인민대표대회 소집연기안을 의회에 제출,타협적 자세를 취했다.
옐친은 19일 최고회의 헌법위원회에 제출한 신 헌법 초안을 이번 겨울동안 최고회의가 심의해야 하기 때문에 헌법 제정권을 가진 인민대표회의를 내년에 소집하는 것이 합리적이란 명분을 내세웠다.
그리고 자신이 위원장인 최고회의 헌법위원회에서 58명중 31명의 지지를 얻어 가까스로 인민대표대회 연기안을 통과시켰었다.
옐친의 이같은 타협적 자세는 총원 1천명이 넘는 인민대표대회에 비해 영향력 행사가 다소 용이한 최고회의를 상대로 「숨쉴 틈」을 찾으려는 궁여지책으로 평가됐었다.
그러나 결국 옐친은 보수세력과의 파워게임에서 여지없이 밀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는 12월 인민대표 회의가 보수세력의 페이스대로 진행될 것임을 예고한다.
대중적 지지도에서도 루츠코이 부통령에 뒤질 정도로 위축된 옐친은 직선 대통령이란 마지막 보루에 의지하고 있다. 그러나 「합법적 쿠데타」로 무력한 대통령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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