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대통령이 오는 11월15일께 일본을 하룻동안 실무방문,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동북아정세와 대일 무역역조 시정 등 양국 현안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보도되었다.이같은 노 대통령의 방일계획에 대해 그 배경과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는 아직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보도를 대하는 많은 국민들은 계획의 느닷없음에 대해 석연치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음이 사실이다. 「또 해외나들이냐?」는 비판적 시각이 그 대표적인 반응의 하나이다.
노 대통령의 방일계획에 대해 이런 반응이 있는 까닭은 그의 임기동안에 이미 10번의 해외나들이가 있었다거나 그 경비가 6백50억원(경제기획원 국정감사자료)에 이르렀다는 사실에만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그토록 잦았던 해외나들이가 과연 「정상외교」라는 말에 걸맞을 만큼 긴요한 것들이었던가 하는 반성이 앞서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지난달에 있었던 그의 세번째 유엔방문에 대해서도 그것이 적절한 정상외교였는지와 함께 목표로 했던 성과에 접근했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이번 방일계획에 대해 외무부의 실무국장은 한일 두나라 정상이 의전절차에 얽매이지 않는 실무방문(워킹 비지트)으로 서로 쉽게 자주 접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데 뜻이 있으며,양국의 현안문제 해결보다는 한중수교 이후의 국제정세 전반에 대한 의견교환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과 미야자와(궁택희일) 일본 총리는 이미 한차례씩 공식방문(스테이트비지트)으로 정상외교를 펼친바 있으므로,그때 그때 의전절차를 생략한 실무방문형식으로 현안에 대처하는 것도 바람직한 외교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적대관계에 있던 프랑스와 독일의 정상들이 수시로 만나 복잡한 현안들을 해결하고 있음은 훌륭한 타산지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일 정상이 이같이 격의없는 상태에서 국제정세를 논의하고 실무협력을 다지기 위해서는 국교정상화 이후 37년동안 줄곧 제기돼온 무역역조의 시정과 종군위안부 등 전후보상에 관한 근본적인 현안들에 획기적인 진전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안되는 것이다. 두나라의 역사적인 현안문제가 해결되지 않은채 동북아의 안정과 세계평화를 논의한다는 것은 본말이 뒤바뀐 연목구어의 논리일 뿐이다.
또한 노 대통령의 방일 일정이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의 예정된 방한(11월18일) 직전에 이뤄진다는 점에서,일본의 대러시아 외교에서의 「한국카드」 사용의도라는 견해가 있으며,우리로서는 이점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노 대통령의 방일은 이처럼 석연치 않은 문제들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양국간의 무역역조 시정 및 기술이전문제를 해결키 위한 「행동계획」의 획기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하고 정신대 등 현안문제의 해결에 큰 진전을 가져올 수만 있다면 그 의의를 결코 작다고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왜 일본에 가야만하는지를 국민 모두가 먼저 알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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