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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이방지대 압구정르포(오렌지족의 세계: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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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이방지대 압구정르포(오렌지족의 세계:4·끝)

입력
1992.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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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풀이 소비욕」의 왜곡된 분출/“나만 잘살면”식 기성세대 의식에/개성중심 사고 맞물려 일탈심화/졸부들 행태자성·청소년공간 더 늘려야압구정동을 출입하는 젊은이들의 표정은 밝다. 70년을 전후해 태어나 고도경제성장의 자양분만으로 자랐기 때문일까. 그들에게선 구김살을 찾아볼 수 없다. 자기주장이 확실하고 멋대로 멋을 부리는 것이 유행이다.

심야의 로데오거리에서는 취객들의 싸움이나 술취한 젊은이들의 구토,방뇨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적당히 마시고 자제력있게 행동하는 것은 이곳 젊은이들의 특징이다. 업주들은 이들이 좀처럼 흥분하는 일이 없으며 유순하고 업소의 규칙을 잘 지킨다고 말한다.

그들은 감각파인 것이다. 오렌지처럼 연하고 밝고 나긋나긋한 것들을 좋아하지만 사려깊게 생각을 한다거나 일정한 주의·주장을 갖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외부인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어떤가. 외국 패션잡지를 구입하러 압구정동에 자주 온다는 이모씨(32·여·의류업)는 『거의 모든 여성이 검정색 스팬미니스커트를 입고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개성파들이 몰리는 곳에서 획일적인 패션을 보니 착잡하다』고 이들의 복제된 개성을 꼬집었다.

로데오거리 H미용실의 미용사 민모씨(25·여)도 『머리모양 선택은 자신의 결정보다는 함께온 친구나 미용사의 권유에 따른다』며 『자기주장이 강한 경우는 사실 드물다』고 말했다.

압구정동에서 9년째 약국을 경영하고 있는 유모씨(51)는 이곳을 가치관이 전도되거나 혼돈에 빠진 거리라고 단정하고 『젊은애들 노는 꼴을 보면 나라의 장래가 걱정된다』고 말하고 있다.

압구정동 문화는 70∼80년대 경제성장의 혜택을 받고 강남지역에 뿌리를 내린 상류층 2세와 부를 바탕으로 해외여행이나 유학경험이 있는 유학생파가 중심부를 이루며 주변에 이들의 행태를 모방하면서 압구정동의 「깔끔한 놀이문화」를 즐기려는 강북 출신의 20대 초반 여성과 대학생,재수생이 포진하고 있는 형태다.

오렌지족의 등장배경에 대해 서울대 김광억교수(45·인류학)는 정치·사회적 개방과 소비를 마음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부모세대의 한풀이 소비욕구에다 전반적으로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분위기가 한데 어울린 것이라고 분석한다. 김 교수는 이들의 자기표현이 강한 이유에 대해서도 전통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욕구가 『우리가 좋아서 하는데…』식의 개성중심사고와 맞물린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김 교수는 젊은이들이 문화의 질이나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데 비해 외국상품과 문화의 유입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 압구정동 문화가 지역성은 물론 가족애까지 파괴하는 문화침탈행위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화여대 양옥경교수(사회사업학과)는 「나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을 강조해온 기성세대의 잘못된 교육이 오늘과 같은 문제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압구정동에서 모델양성소 「모델라인」을 운영하는 이재연씨(49)도 『돈을 물쓰듯 하는 젊은이들은 2세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 졸부들의 자녀』라며 『기성세대의 자각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마광수교수(43·국문학)는 개성표출이 돈과 비례해 나타난다든가 돈있는 사람만이 놀 수 있게 된 요즘의 압구정동 풍속은 보수윤리의 억압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마 교수는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받았던 보수적교육이 일시에 무너지면서 뚜렷한 가치관이 정립되지 못한채 폭발적 일탈을 경험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그러나 성급한 규제보다는 자정능력이 배양될만큼 시간을 주어야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연세대의 조혜정교수(44·여·문화인류학)는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공간이 필요한 만큼 압구정동을 사시로만 보기보다는 어떻게하면 생산을 위한 여가공간으로 창조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압구정동을 비롯한 신촌·대학로 등지도 젊은이들이 개성을 표출하고 젊음을 발산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하도록 정부가 청소년계도와 함께 공간확보를 해주어야한다는 것이다.<이영섭·이진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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