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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떼논 당상”… 주전역 축제무드/클린턴 선대본부 아칸소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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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떼논 당상”… 주전역 축제무드/클린턴 선대본부 아칸소 르포

입력
1992.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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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주서도 대통령 탄생” 흥분/주민들 새정권 얘기꽃/정일화특파원 제 1신【리틀록 (미 아칸소주)=정일화특파원】 흥분,기대감,자신감,긴장 그리고 축제무드.

빌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후보의 아성인 아칸소주도 리틀록시는 벌써 민주당대통령이 탄생한 듯한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는 18일 하오 리틀록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리틀록공항 앞에는 「아칸소의 아들 빌 클린턴,92년 미국의 선택」이라는 구호가 쓰여진 대형사진이 아칸소를 찾는 사람들을 맞고 있었다. 뉴욕이나 워싱턴의 대공항같은 번잡함은 없지만,최근들어 클린턴 선풍으로 드나드는 사람이 급증했다고 공항관계자는 말했다.

트랩을 내리는 동안 바람이 몹시 불었다. 『왜 이리 바람이 세지』라고 말했더니 당장 한 승객이 『클린턴 바람때문이지』라고 응답했다. 그러자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유쾌히 웃었다. 아칸소가 클린턴의 주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공항뿐만이 아니었다. 택시운전사나 길거리의 아무에게나 선거얘기를 던지기만 하면 누구나 흥분을 감추지 못한채 『드디어 우리주에서도 대통령이 나오게 됐다』며 신명나게 대답했다. 한 시민은 묻지도 않았는데 『아칸소 사람들은 아마 클린턴에게 99%의 지지를 보낼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19일 상오에 들른 민주당 선거운동본부는 아칸소 전역에 퍼져있는 승리분위기를 집약해 놓은 듯 했다. 선거본부는 마지막 TV토론을 준비중이었는데,걱정스런 기미는 전혀 없고 마치 백악관 입성을 위해 구두끈을 매는 분위기였다.

선전국 부책임자 앤 에드워드 여사는 11월3일 선거 당일에 있을 행사를 설명하면서 리틀록의 거리에 먹줄을 그어갔다. 에드워드 여사는 중심가인 포트햄로가 이날 승리축제의 대집회장이 될 것이라고 도표를 그려가며 설명했다.

승리축제는 포트햄로의 존 맥클리언 기념병원에서 시작되며 수많은 군중들이 이 도로를 꽉 메울 것이라고 부연했다.

클린턴과 그의 러닝메이트인 고어는 바로 포트햄로에 모여든 이 군중에게 첫 승리의 연설을 한뒤 계속 서쪽으로 행진,주청사 건너편의 컨벤션 센터에가 기자회견을 하게될 것이라고 선거본부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들 관계자들은 승리축제를 취재하기 위한 기자들은 비표를 신청해야 하고 『비표신청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두가 득의 만면한 표정이었다.

클린턴의 참모들은 클린턴의 선두가 결코 뒤집어지지 않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의 장담 이유는 올해의 유권자들이 부정적 캠페인(Negative Campaign)을 전혀 아랑곳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선거운동본부를 둘러보면서 클린턴이 왜 승승장구하는가에 대한 몇가지 답을 들으루 있었다.

첫째는 전국 현장지휘 본부장 크레이그 스미스가 추진한 「병아리작전」(Chicken Operation)의 성공이다.

크레이그는 선전국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부시 대통령이 거들떠보지 않는 군소 지방언론부터 장악해가기 시작했다.

부시 대통령에 대한 인터뷰신청이 3개월치나 밀려 있을때 클린턴은 이름없는 지방신문에 인터뷰기회를 허락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그 지방,그 독자가 바라는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해 지지층을 굳혔다.

둘째는 대화정치의 원칙을 쓴것이다. 워싱턴주의 올빼미서식지를 둘러싼 자연환경론자와 벌목 노조간의 대립을 조정한 대화정치가 대표적인 예였다.

자연환경론자는 점박이 올빼미의 서식처 보존을 위해 절대 벌목을 허가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노조는 직업보존을 위해 벌목사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었다. 부시행정부는 책상머리에서 그 해결책을 구했으나 클린턴은 양쪽 지도자를 한자리에 부르거나 직접 찾아가서 타협점을 모색해 결국 벌목업자와 환경보호주의 그룹으로부터 다같이 지지를 얻어냈다.

보건문제·사회보장·노동·수출 등 까다로운 문제에 대해서도 직접 부딪치는 방식을 써 신뢰감을 높였다.

셋째는 범죄추방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는 점이다. 지난 88년 선거당시 민주당 대통령후보였던 듀카키스가 범좌문제에 대해 느슨하다는 평을 받아 결국 패배하게 된 쓰라린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번에는 경찰,검찰,변호인단 등을 처음부터 포섭하기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국방문제 역시 윌리엄 크라우 전합참의장,던컨 전공군참모총장 등의 지지를 미리 얻어 이 문제에 대해 부시정부와 맞붙을 준비를 단단히 했다.

넷째는 전쟁상황실(War room Operation)운영.

대책본부 3층에 전쟁 상황실을 설치해 놓고 현장,조사,정치,선전,조직 등 5개분야의 정예요원이 상오 7시와 하오 7시에 각해당부서로부터 상황을 보고받아 어느분야가 부시로부터 공격을 받거나 밀린다 싶으면 즉각 반격을 가하고 집중 지원을 하는 기동전략을 펼쳤다.

부시 대통령이 국내경제의 악화로 도무지 무슨 변명을 할수 없는 지경이 된 대신 클린턴은 경제악화로 인한 불만의 가슴에 조금씩 조그씩 변화공세를 퍼부어 결국 대세를 장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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