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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혁·개방가속” 확정/14차 전국대표대회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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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혁·개방가속” 확정/14차 전국대표대회 결산

입력
1992.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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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폭적인 세대물갈이 「보수원로」 거세/행정­경제등에 밝은 실무형 대거 포진/사회주의 시장경제 토대 마련【북경=유동희특파원】 중국 공산당 14차 전국대표대회(14대)는 과거 14년간의 개혁·개방을 결산하고 21세기 중국을 향한 새로운 도약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같은 평가는 예상을 뛰어넘는 대폭적인 세대교체로 뒷받침되고 있다. 19일 개최된 14기 1중전회가 새로 구성한 정치국은 7명의 상무위원과 후보위원 2명을 포함,총 22명중 15명이 새 인물이다. 68%의 교체율을 기록한 것이다. 요의림·송평 등 2명의 원로세대와 교체된 상무위에 새로 진입한 3사람중 70대인 유화청을 제외하면 60대의 주용기,40대의 호금도 등으로 정치국 상무위가 한결 젊어졌다.

이같은 지도부의 물갈이는 중국 공산당의 권력중추인 중앙위원회 위원들의 세대교체로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에서 세대교체가 최고지도층에 국한됐던 과거처럼 취약하지 않고 든든한 기반을 갖추게 됐다. 중앙위원회의 교체율은 46.7%이다. 이번의 대폭적인 세대교체는 두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는 등소평,진운,양백빙,만리 등 이른바 제2세대로 지칭되는 「원로그룹」이 정치권으로부터 완전 배제됐다는 사실이다. 특히 중앙고문위의 폐지는 이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마저 없애버렸다는 것을 뜻한다. 세대교체가 갖는 또다른 의미는 「혁명」에서 「실무」로의 이행이다.

새로 구성된 정치국원들에는 성당위 서기 및 시당위 서기 등 지방행정실무에 밝은 인사들과 경제관계 각료 및 외교부장 등 테크너크랫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번에 새로 선출된 14기 중앙위원들의 상당수도 전문가 혹은 학자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대학교육을 받고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갖고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혁명세대로부터 테크너크랫 중심의 실무세대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것이다.

보혁의 차원에서 볼때 이번의 세대교체는 보혁균형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요의림·송평 등 보수파 상무위원 대신에 주용기,호금도,유화청 등 개혁파 및 측근들이 상무위로 진출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강택민­이붕체제가 유지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이는 정계개편 과정에서 급격한 혼란을 피하려는 「안전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원로들의 퇴진은 사실 중앙고문위를 신설한 82년 12전대회,87년 13전대회 등 80년대 들어 꾸준히 추진돼왔다. 이유는 중국의 정계·경제계·학계 등 주요부문 지도자들의 평균나이가 세계적으로 가장 고령인 탓이다.

그러나 이번 당대회를 통해 보수우위의 기존체제를 개혁우위로 전환시켜 개혁파가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은 분명하다.

특히 정치국에 사비,오방국 등 개혁·개방정책 추진과정에서 괄목할 업적을 이룩한 광동성,상해시 서기가 진출하고 귀주성·티베트 자치구 등이 서기를 역임한 호금도가 일약 상무위로 진출한 것은 전방위 개방 및 개혁에 대한 현 개혁지도부의 의지를 읽게한다.

정치국 상무위를 6인에서 7인으로 홀수로 한 것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89년 천안문사태로 조자양이 축출된 이후 정치국 상무위원의 수는 5명에서 6명으로 늘어났었다. 이는 중요정책을 두고 가부동수일 경우 최고실권자인 등소평과 원로세대들이 캐스팅보트 역을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었으며 남순강화 이후의 등 선풍에서 보듯이 이는 윈래 의도대로 구현됐다.

이번 14대를 통해 이를 다시 홀수로 함으로써 제3세대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도록 조치한 것이며 또한 개혁우위의 인적구성을 갖추어 보수적 정책결정의 가능성을 봉쇄했다. 이는 등이 자신의 사후를 대비한 포석으로 판단된다.

등소평은 이번에 대대적인 세대교체와 개혁파세력의 진출을 위해 자신의 측근세력을 희생시키는 과감성을 보였다. 한때 국가주석의 물망에 오르기까지 했던 전인대 상무위원장 만리와 국방부장 진기위 등 등의 측근들이 보수파원로 세대들을 끌어안고 「동반퇴진」함으로써 정치국에 「새로운 피」가 충분히 수혈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이른바 「태자당」을 통해 보수세의 온전을 꾀한 진운의 기도 역시 분쇄된 것으로 분석된다. 등소평의 장남 등박방과 등남을 당대회 대표로 선출했던 것은 진운의 아들 진원이 중앙위원으로 선출되는 것을 막기위한 포석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등박방,등남,진원 모두 중앙위 후보위원 명단에조차 올라 있지 않다.

이번 신임 상무위원중 유화청의 존재는 등소평이 군의 통제문제에 대해 얼마만큼 신경을 쓰고 있느냐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천안문사태 진압을 위해 양상곤­양백빙으로 이어지는 양가군을 이용했지만 양가군의 득세는 용납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되는 것이다. 양상곤이 「보가호항」이라는 기치아래 남순강화에 대한 군의 지지를 이끌어낸 일등공신임에도 불구하고 등은 군권을 양의 동생인 양백빙에게 넘기지 않고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유화청에게 넘긴 것이다.

이같은 인사는 또 한편으로는 등소평이 최후까지 유지한 공직이 당 및 군의 군사위 주석직이었던 사실에서 보듯 군권만큼은 여전히 제3세대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등의 의지의 표현이기도 한다.

이번 당대회가 제도적인 차원에서는 나무랄데 없는 세대교체를 이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89년 천안문사태 당시 당의 최고지도자였던 조자양은 이른바 원로세대들에 의해 축출됐다.

중국이 「인치의 사회」라는 점에서 이러한 제도적 세대교체가 모든 것의 끝일 수는 없다는 제3세대 지도부에게 던져진 하나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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