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쾌락」 「토털패션」 안팎치장/대부분 「8학군」 대학생·재수생/카페골목 왜색업소 3백여곳/“외국처럼 자유롭고 편하다” 젊은 열기 「해방구」압구정동에 몰리는 젊은 이들은 대부분 1970년 전후에 태어난 8학군 출신 부유층 자녀들이다. 이들은 씀씀이에 구애받지 않는 풍족함,철저한 개인주의,향락적 소비문화 등에 익숙하다.
남녀 구분없이 목걸이 팔찌 귀고리에 심지어 발찌까지 끼는 현란한 장식과 이색적인 헤어스타일,깔끔한 용모,짙은 화장 등 토털패션이 그들의 「상표」라면 「삶은 즐기는 것」이라는 생각과 가치관은 그들의 울타리이다.
고급 아파트단지,상류층을 위한 호화의상실이 늘어선 로데오거리,골프숍,스키숍과 체형미학원,성형외과,패스트푸드점,비디오케,로바다야키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압구정동에서 20세 전후의 젊은 층이 몰리는 곳은 갤러리아백화점 맞은편의 소위 「신압구정동」. 맥도널드햄버거를 중심으로 부채처럼 펼쳐진 속칭 카페골목에는 록카페·노래방 등 유흥업소 3백여곳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외국같이 편하고 좋아요. 술집 카페가 모두 분위기있고 오는 애들도 멋을 알거든요. 대한민국에서 이만한 데는 없어요』
로바다야키에서 만난 최모군(22·Y대 2)의 말처럼 마음놓고 즐길 수 있기때문에 젊은이들은 이곳에 몰린다.
고급아파트마다 총총히 박힌 위성수신안테나와 뮤직비디오,패션잡지에서 보았거나 해외유학·여행때 직접 접한 풍경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곳에선 귀고리한 남자의 묶은 머리,배꼽이 드러난 옷차림,몸에 착붙는 초미니스커트(똥꼬치마라고 부름) 차림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카페에서 술을 마시다 흥에 겨워 춤을 추고 짙은 애무를 하는 것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일본,서구의 향락적 문화의 세례를 받은 졸부 2세들의 과소비와 향락의 마당』이라는 비판에 아랑곳없이 「동자몽」 「아사」 「유끼」 「매화」 「NATO」 「나인하프위크」 「SPIN」 등 외국이름 일색인 술집과 노래방엔 젊은이들이 넘친다.
『그랜저나 쏘나타 수준은 오렌지,스쿠프는 낑깡,자가용이 없거나 프라이드 수준이면 갱족이라는 별명이 있어요. 세련된 용모 첨단패션 핸드폰이 수준을 재는 기준이지만 역시 차가 제일 중요해요. 흰색 그랜저 정도면 1백% 부킹(짝맞추기)이 되고 풀코스(동침까지 하는 것)까지 갑니다』
상류가정의 대학생 이모군(21·H대 2)의 흰색 쏘나타 차창엔 선정적인 외국가수의 스티커가 붙어있다. 자기 차임을 과시해 부킹을 쉽게 하기 위해서다.
8학군 출신인 이군의 아버지는 의사. 이군의 1주일 공식용돈은 20만원이지만 차량유지비 쇼핑비 술값 등 덩치가 큰 지출은 별도로 받기 때문에 한달에 얼마나 쓰는지는 이군 자신도 모른다.
이군과 같은 상류대학생들외에 이곳엔 재수생 학원생 유학귀국생 패션파 등이 유형별로 몰려다닌다. 남자는 70%이상이 8학군 출신의 대학생,재수생이며 여자중 오너드라이버는 강남출신이 대부분이나 강북에서 온 멋쟁이들도 많다.
이곳의 매력으로 꼽히는 「자유롭다」는 것을 기성세대의 시각으로 볼때는 왜색·서구 일색이다.
노래방과 비디오케에서는 일본어 자막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조용필보다 오토코 구미,니카야마 미호,구도 시즈카 등 일본의 젊은 가수노래가 더 많이 불려진다.
압구정동을 찾는 젊은이들이 하나같이 자가용을 몰고 자기앞수표나 카드를 갖고다니며 인스턴트식 하룻밤 사랑에 열을 내는 것은 아니다.
밤 10시면 어김없이 귀가하는 중산층 자녀들,물좋은 아이들과 분위기 좋은 술집을 둘러보며 눈요기만 즐기는 부류도 많다. 그러나 압구정동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틀림없는 상류층 향락파이다.
『외제차를 몰고 돈을 펑펑쓰며 돌아다니는 애들을 보면 솔직히 부러워요. 돈만 있으면 못하는게 없거든요』
한모양(22·학원생)의 말처럼 이곳에선 유학·해외연수에서 배운 영어를 쓰며 수준에 맞는 아이들끼리 어울려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선망의 대상이다.
압구정동은 편하고 싶고 자유롭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 「해방구」나 다름없다.<이동국·이진동기자>이동국·이진동기자>
◎동류의식과 행태/“남들과 뭔가 달라야” 차별욕구/일 패션잡지 즐기며 옷도 수입품/가면무도회등 특이한 행사 참가
강남에서 새로 개업하거나 내부단장을 바꾼 나이트클럽의 성수기는 6개월에서 길어야 1년을 넘지않는다.
더 강도높은 쾌락과 자극을 찾는 압구정동의 젊은이들이 새로운 장소를 찾아 철새처럼 이동하기 때문이다. 신사동 S나이트클럽은 최근 이들에게 가장 각광받는 업소이다.
호화로운 시설과 양주만 파는 「높은 수준」도 이들이 선호하는 이유지만 무엇보다 웨이터들이 출입구에서부터 몸매나 옷차림이 처지는 「수준미달」 손님들을 걸러줘 선남선녀들만 함께 자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일밤에도 이 나이트크럽에는 옷차림이나 용모가 모델 뺨치는 남녀 1백여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지난봄 이곳에서는 이른바 「똥꼬치마페스티벌」이 열려 화제가 됐었다. 치마길이가 불과 17㎝짜리를 입은 여성이 1위를 차지했으나 술취한 다른 여성이 무대에서 아예 미니스커트를 벗어버려 1등을 뺏어가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날 인근의 C나이트클럽에서는 업소측이 제공한 가면을 착용한채 가장 스타일이 빼어난 손님을 뽑는 가면무도회가 열렸다.
3백여명중 1등으로 뽑힌 20세 가량의 젊은이는 즉석에서 테이블마다 양주 1병씩 돌리고 7백여만원의 술값을 혼자 부담하는 호기를 부려 환호를 받았다.
자정영업이 끝난뒤 이들이 주변길을 완전히 메운 승용차를 빼내 떠날 때까지는 35분이나 걸렸다. 이들이 몰고온 승용차중에는 미국 젊은이들조차 한번 타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독일제 포르셰,일본 도요타의 MR2 등 최고급 스포츠카도 있었다.
차들이 대부분 빠져나간 뒤에도 그 차에 동행할 파트너를 구하지 못한 남녀들은 바쁘게 짝을 고르느라 돌아다녔다.
이런 곳을 찾는 젊은이들은 주변의 평범한 젊은이들과는 철저하게 차별화하려 애쓴다. 우선 춤부터가 다르다. 일반 나이트클럽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격렬한 춤동작이 보통이지만 이들은 고작해야 손을 움직이거나 조금씩 스텝을 떼는 정도이다.
『몸을 크게 흔드는 것은 촌스럽기 때문에 품위를 살리기위해 격조있는 춤을 춘다』는 것이다.
이들이 나이트클럽에서 쉽게 부킹(짝맞추기)을 하고 외국서도 보기힘든 희한한 행사에 거리낌없이 참여하는 것은 철저한 차별화를 통해 자기네끼리의 동질감이 깊고 자연스러위진 때문이다.
옷의 상표도 국산은 거의 없고 외제중에서도 실용적이고 투박한 미제보다는 색감과 디자인이 뛰어난 이탈리아 프랑스제가 주류이다. 이들이 모이는 카페나 미용실도 최고급으로 제한돼있다.
각 나이트클럽은 저마다 멤버십카드제를 표방,이들의 기호에 영합한다. 「부킹 1백% 보장」 「물 좋은 여성,매너좋은 남성 최대확보」 등 조잡한 문구가 적힌 카드나 명함은 웨이터들이 그냥 거리에서 나눠주는 것으로 본래 회원제와 거리가 멀지만 교묘하게 이들의 심리를 역이용하는 상술이다.
같은 또래들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이들에게는 금기이거나 최소한 촌스러운 것이다.
S나이트클럽서 만난 최모군(21·S대 3) 등 고교동창생 3명이 함께 즐기는 취미는 스키와 스포츠드라이브. 이들중 지하철 요금을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소위 물좋은 나이트크럽,분위기 짙은 카페,시설 좋은 전국의 콘도와 호텔,머리손질 솜씨가 좋은 미용실 이름들은 줄줄이 꿰고 있다.
중상류직업을 가진 부모밑의 명문대생이 많은 이곳의 젊은이들이 서점에서 사보는 책은 일본 패션잡지나 미국의 소설이다.
압구정동 D서점의 김모씨(29)는 『국내 잡지들중 이들이 찾는 것은 CD·자동차·골프잡지들 뿐이다』라고 말한다.
최고를 자부하는 이들에게 만원짜리 몇장 들고 자신들의 세계를 기웃거리는 젊은이들은 「갱족」이고 고작해야 프라이드 같은 소형차를 몰고 다니는 이는 오렌지도 못되는 「낑깡족」으로 보일뿐이며 사회문제나 학생운동에 관심을 갖는 학교친구들은 「가난한 집 애들」이다.
이들이 몰고다니는 승용차 유리는 거의 예외없이 안을 들여다볼 수 없을 만큼 짙게 선팅돼있다.
그들의 외부의 세계와 철처하게 담을 쌓은채 향락과 쾌락주의를 일류의식으로 착각하며 병들어가고 있다.<이동국·이진동기자>이동국·이진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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