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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이방지대 압구정르포(오렌지족의 세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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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이방지대 압구정르포(오렌지족의 세계:1)

입력
1992.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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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층 청소년 무분별 환락무대/고급차·풍부한 돈·뉴패션 “필수”/낯설고 빗나간 성문화도 즐겨/「커피→로바다야키→즉석데이트→나이트」 풀코스서울의 압구정동은 이방지대이다. 언제부터인가 그곳에는 부유층 자녀들이 모여 그들만의 독특한 행태로 기성세대는 물론 종전의 젊은이들과 전혀 다른 풍속도를 그려내고 있다. 부모세대가 이룩한 물질적 풍요를 바탕으로 그들만의 「자유롭고 편한 곳」에서 만들어낸 새롭고 낯선 성문화·소비문화는 점점 다른 지역에까지 번져간다. 「치들」 「오렌지」 「프린스」라는 은어로 통하는 그들을 오렌지족이라고 불러보자. 그리고 그들이 어떤 젊은이들 인가를 알기위해 만나 보자.<편집자주>

하오 4시께 커피전문점을 시작으로 문을 여는 압구정동 카페골목은 하오 8시면 토털패션의 젊은이들과 그들이 세워둔 승용차로 발디딜 틈이 없다.

2∼3명씩 차에서 내린 이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곳은 20여곳이나 몰려있는 로바다야키집. 일본 고급선술집을 본뜬 로바다야키집은 사무라이인형·일본민화 등의 장식으로 일본에 온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M로바다야키집에선 종업원들도 빨갛고 까만 일본식 옷으로 차려입고 주문을 받는다. 메뉴판에는 가격표시가 없다.

4명이 저녁식사를 곁들며 레몬소주 2∼3병을 마시는 가격은 8만∼10만원.

일본가요가 간간이 들리는 이곳엔 인공선탠으로 피부를 그을린 20여명의 미니스커트 여성과 뒷머리를 한껏 기른 맥가이버 머리의 청년 20여명으로 20여석이 꽉차있다.

계산대 옆에선 4∼5명이 대기표를 갖고 서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린다.

『하오 4시께 이곳에와 커피 한잔 마시고 로바다야키 집에서 갈증을 달랜 뒤 즉석부킹(짝 맞추기)이나 삐리삐리(차를 몰고 카페골목을 다니며 부킹하는 것)로 파트너를 맞추고 나이트클럽이나 노래방으로 갑니다』

흰 스쿠프승용차에 구치손목시계,게스청바지,순금 1냥쭝 목걸이,폴로재킷,모토롤라 핸드폰,루박구두,돌격형머리(스포츠형이지만 앞머리를 길게 기른형) 스타일로 「압구바리순찰」에 나선 김모군(21·K대 2년)은 사업을 하는 강남 부유층의 막내아들. 술값 8만2천원을 10만원권 자기앞수표로 치른 김군과 K고 동창생 2명은 하오 9시께 그랜저를 몰고온 박모군(21·Y대 2)의 차를 타고 카페골목을 한바퀴 돈다.

이곳에서는 한손으로 운전을 하는 것이 불문율. 능숙한 운전솜씨를 보여야 여자 유혹하기에 유리하다.

S록카페 앞에서 차를 세운 김군 등은 패션모델과 다를바 없는 김모양(19·재수생) 등 3명과 그랜저 스쿠프에 나누어 타고 N호텔 C나이트클럽으로 갔다. 국산양주 1병과 과일안주의 값이 10만원. 웨이터팁 2만원은 별도다.

『이름정도는 물어 보지만 전화번호는 묻는 경우가 없다. 서로 즐거우려고 만나 새벽이면 헤어지는데 부담스럽게 신상파악할 필요가 없다』는게 김군의 설명이다.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누군가가 나를 떠나버려야 한다는 그 사실을」­「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 그대로다.

거의 매일 압구정동에 오는 김군은 1주일에 한번 정도는 거리낌없이 파트너와 여관에 간다. 『이곳에 오는 여자들중 3분의 1이 적당히 즐기려는 애들』이라는 김군은 『마음이 맞으면 손잡듯이 잠도 잘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로바다야키집,가라오케,나이트클럽,거리 어디에서나 쉽게 이루어지는 부킹의 풀코스는 동침이다. 그 준비물은 토털패션,세련미,승용차와 넉넉한 주머니 등이다.

평일엔 새벽 3시께면 그대로 헤어지지만 주말엔 장흥 춘천 등 교외의 별장에 가는 경우도 많다.

김군 등이 만난 여성들은 「섹시한 외모를 무기로 괜찮은 남자 만나 공짜로 술마시고 춤추며 놀려는 갱족」이다.

『갤러리아 백화점앞 거리를 가족의 거리라고 했다는데 내가 보기엔 가족을 망치는 거리입니다』 잡지노점상 박모씨(38)는 『단골로 이곳에 오는 부류와 그냥 친구들과 한번 온 부류는 옷차림부터 다른데 하루에 5번 이상 눈에 띄는 젊은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귀국한 유학생들이 몰리는 여름철엔 핫팬티,배꼽이 보이는 셔츠,뒤집어 입은 바지,짝이 맞지 않는 양말을 신은 기이한 옷차림에서부터 온갖 괴상망측한 영어가 다 들립니다. 길거리에서 키스하는 것은 예사이지요. 여자들끼리도 뺨에 입을 맞추며 작별인사를 합니다』

◎종일 먹고 마시고 헌팅 “흥청망청”/21세 한모군의 하루/이곳 오면 스트레스 해소에 최고/대학진학 포기 “골프숍 차리겠다”

미국 유학생활을 2년여만에 중지하고 90년 가을 귀국한 한모군(21)은 상오 10시30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H아파트 집에서 늦잠을 깼다. 내신 8등급으로는 대학가기 틀렸다고 판단한 부모의 종용으로 관광비자를 발급받아 LA에 간 뒤 어학코스 과정을 전전하다 온 한군은 매일 이 시간에야 일어난다. 서둘러 세수를 마친 한군은 11시에 R호텔 사우나에서 만나기로한 친구들과의 약속에 맞추기 위해 서울3 오2ⅩXX호 흰색 쏘나타를 몰고 나섰다.

김모(21) 박모군(22) 등 미국에서 사귄 친구들은 이미 와 있었다.

샤워를 마친 이들은 그랜저,쏘나타를 타고 신사동의 프랑스 전문요리 레스토랑에서 1인당 1만7천원짜리 런치정식으로 요기한 뒤 커피를 마시며 전날밤 C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여자 3명과 놀았던 얘기를 나누었다.

이어 당구장에서 2시간 가량 술값 내기 당구를 친 이들이 압구정동 카페골목에 도착한 것은 하오 5시께. C카페에서 4천원짜리 커피를 주문한 한군은 핸드폰으로 고교동창 2∼3명에게 전화를 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로바다야키에서 소주를 마신 뒤 전날 갔던 C나이트클럽에 다시 가기로 한 한군 등은 삐리삐리로 부킹을 해보고 잘 안되면 나이트클럽의 단골웨이터 「주윤발」에게 조각(웨이터가 여성손님을 남자손님과 합석하도록 알선하는 것)하도록 하기로 하고 카페를 나섰다.

하오 6시30분께 M로바다야키에 들어간 한군 일행은 레몬소주,대구탕,양송이꼬치,닭날개,삼치구이 등을 안주로 술을 마시며 함께 놀 여자들을 탐색했다.

한동안 여자들을 지켜보던 한군은 『로바다야키가 물좋던 시절은 갔어. 베지밀가족(가정환경이 엉망인 집안)의 여자들밖에 없어. 빨리 나가자』며 6만2천원을 내고 쭉쭉이(늘씬한 몸매의 여성)들을 찾으러 나섰다.

김군의 흰색 그랜저에 탄 이들이 카페골목을 두바퀴 돌때 S카페 앞에서 늘씬한 여성 2명이 눈에 띄었다.

『친구 생일인데 같이 놀러가지 않겠어요』라는 한군의 능숙한 부킹제의에 여자들은 방금 스케일링한 것처럼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다가 『나이트 갈 것』이라는 말에 주저없이 동승했다.

김모양(21·S전문대 2년) 등과 파트너가 된 한군 등은 C나이트클럽에 도착,발레파킹(주차관리인이 차를 대신 세워주는 것)으로 차를 세우고 1백여석이 20대초반 손님들로 꽉찬 지하홀에 들어가 「주윤발」을 불렀다.

생머리스타일에 미모인 김양에게 이끌린 한군은 김양을 파트너로 잡기위해 능숙하게 주문을 했다.

『로열샐루트 1병,마른안주 1개,과일 1접시』

『짝이 맞지 않는다』는 한군의 말에 김양은 전화로 친구를 불러냈다.

술을 마시며 손과 다리만 조금씩 움직이는 하우징 댄스를 추던 이들이 나이트클럽에서 나온 것은 밤 12시께. 꽤 취한 상태였다. 술값 40여만원은 제일 나은 쭉쭉이를 차지한 한군이 수표로 냈다.

뜸을 들이거나 바람잡이(잠자리에 가기위해 유혹하는 것)를 할 필요가 없이 이들은 짝을 지어 차를 타고 헤어졌다. 한군과 김양이 간곳은 방배동의 장급 E여관. 새벽 2시께 나온 한군은 김양과 바로 헤어졌다. 평소대로 직업따위는 전혀 묻지 않았고 나중에 또 만나자는 애프터신청도 하지 않았다.

음주운전 단속에 아랑곳하지 않는 한군이 집에 돌아온 것은 새벽 3시께. 하루 일과가 끝났다.

한군은 강남에만 빌딩을 10개 이상 갖고있는 부유층의 2남1녀중 2남. 누나와 형은 모두 미국에 유학중이나 한군만이 적응을 못한채 귀국해 부모와 살고 있다.

『체육특기자로 골프를 배워라,미국에 유학가라는 엄마의 성화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아무 간섭도 없어요. 실컷 놀다가 2∼3년 뒤 엄마에게 말해 골프숍을 해볼 생각입니다』

일류대학이 인간의 평가기준이 되는 한국이 정말 싫지만 압구정동만큼은 모든 스트레스를 잊게 해줘 좋다는 한군의 용돈은 「필요한만큼 타쓰는 것」.

귀국 후 한동안 풀죽어 지내다가 친구들과 압구정동에 가끔 나왔던 한군은 『이제는 하루라도 이곳을 찾지 않으면 미칠것 같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이동국·현상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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