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미국 대선후보들의 2차 TV토론회가 열린 버지니아주 리치먼드대 회의장. 클린턴 민주당후보의 「방패」와 공화당 후보인 부시 대통령의 「창」이 맞붙었다.각종 여론조사에서 넉넉한 우세를 점하고 있는 클린턴은 부시의 공세에 막판굳히기 작전으로 나왔다. 반면 부시는 클린턴의 도덕적 흠집을 또다시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려던 참이었다.
바로 이때 방청석에 앉아있던 한 시민이 점잖은 주문을 던졌다.
『더 이상 상대방을 욕하는 소리는 듣기싫다. 미국의 재건을 위한 보다 구체적인 정책비전을 제시해달라』
클린턴의 징집기피와 자질문제를 사정없이 파헤치려던 부시가 움찔했고,부시의 이란 콘트라사건 개입을 쟁점화하려던 클린턴도 숙연해졌다.
이후의 토론은 정책대결로 일관됐다. 미국 대선기간중 가장 세련됐다는 미국 언론들의 평가가 뒤따랐다.
결과적으로 손해본 건 부시 진영이었다. 야구로치면 심판(방청객) 때문에 9회말 역전기회를 놓친 셈이다. 토론후 여론조사에서도 부시의 열세는 확연했다.
하지만 부시는 패자가 아니라는 견해도 강력히 대두되고 있다. 「유권자 대표참가」 토론방식이 자신에게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점을 알면서도 부시가 이에 응한 것은 승패를 떠난 그의 정치적 양식과 신념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다.
그는 유권자 대표가 후보에게 질문을 던지는 새로운 토론방식이 애당초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간파했었다.
4조달러에 달하는 연방적자,한해 6백억달러의 무역수지 적자 및 7% 내외의 인플레율 등 산적한 국내문제는 상대후보 및 유권자들의 손쉬운 공격목표가 될게 명약관화했기 때문이다. 집권당 후보 혼자서 2명의 적수를 상대해야 하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이 자리에 섰고 예상했던 유권자의 반응을 몸소 체험했다.
부시는 이번 토론회에서 클린턴에게 결정타를 가하지 못한 결과 11월3일 이후부터는 회고록을 써야하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번 대선에서 패배할지라도 「떳떳한 패자」가 될 것이다. 비록 등을 떼밀리는 처지가 되어 TV토론에 응하긴 했지만 결국 미국식 민주주의의 꽃인 TV토론의 맥을 지키면서 끝까지 분투했기 때문이다.
2백16년의 민주주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과 이제 40여년된 우리와의 극명한 차이는 여기서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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