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선 마라톤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대세는 민주당 틀린턴 후보쪽으로 굳어진 것 같다.어제(16일) 아침 워싱턴발 AP전(코리아타임스 1면)은 전문가들의 그런 분석을 전하고 있다. 컬럼비아 대학의 대통령사학자 헨리 그래프는 『미국은 이미 선택을 끝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36년이래의 갤럽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해 보면,미국 대선은 9월초 노동절 연휴무렵 대세가 굳어지며,9월중순이후의 조사결과는 거의 선거결과와 일치한다고 밝혔다. 지난 6월이래 지금까지의 여론조사에서 줄곧 10∼15%포인트 뒤져있는 현직 부시 대통령의 역전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결론이 된다.
이와같은 분석은,30년대이래 보편화되고,그뒤 60여년에 걸쳐 다듬어진 조사기법과 조사결과의 집적이 있음으로해서 가능하다. 그만큼 신빙성이 인정된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의문이다.
흔히 든는 예지만,48년 대선에서,여론조사 결과는 공화당 듀이 후보의 압승을 점쳤으나 선거결과는 트루먼 대통령의 역전승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오늘의 부시 대통령도 44년전과 같은 대역전을 장담하고 있다.
이번 대선기간중에 나온 여론조사 결과에도 종종 비판적인 언급이 들린다.
선거초반에 나타났던 페로 현상은 여론조사 결과가 부추겼다는 지적 따위다. 인기가 높다는 조사결과가 나오니까 인기가 더 올랐다는 분석이다.
걸프전직후 90%를 넘었던 부시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도에도 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전쟁직후 그에 대한 지지의 폭이 한 10리쯤이었다고 할때 그 깊이는 한치도 안됐다」는 것이다. 전쟁에 대한 지지,승전으로 고양된 여론이 부시 개인에게로 귀속되고 있지 않았다는 얘기다. 여론조사와 해석이 피상적 이었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이처럼 여론조사에는 한계가 있다. 여론조사의 모든 과정에서 오차가 생기게 마련이며,그 해석을 잘못할 수도 있다. 조사의 미숙과 불성실 등을 논외로 하더라도,여론조사는 틀릴 수가 있음을 생각해 두는 것이 좋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지난 3·24총선의 예상 투표율이 있다. 투표 직전까지의 여론조사 결과는 88%(중앙일보 3·18자) 86.2%(동아일보 3.13자) 77.3%(한국일보 3.·23자) 71%(조선일보 3·17자)로 보도되고 있으나,실제 투표율은 71%. 한 신문만이 투표율을 적중시킨 셈이다. 그나마 그 신문의 여론조사도 두어달뒤 6월 광역선거에서는 투표율를 74.4%로 예상,실제의 투표율 58.9%를 15%포인트나 헛짚고 있다.
그래서 의구심이 인다.
앞의 여론조사들은 오차요인을 다 제거할만큼 정밀했을까.
이 조사결과를 믿은 각당의 선거전략은 어떠했을까. 선거양상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 보다,여론조사 결과가 여론형성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그런 조사결과는 결과적으로,여론을 오도한 것이 아닐까.
이런 의구심은 근래 흔한 여론조사 보도를 보면서도 가시지를 않는다. 금방 생각나는 것은 다음 둘이다.
▼10월5일자 세계일보의 「풍향계」는 안기부가 적발한 대규모 간첩단에 대한 전화여론 조사에서,조사 대상자 44.4%가 사건보도에 회의적이나,94.5%는 간첩을 인지할 경우 즉각 신고하거나 자수를 권유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간첩단 전모의 발표는 이 보도가 있은 다음 날(6일)이다. 발표와 증거제시가 있기전에,수사와 보도의 신뢰도를 묻는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공연히 수사와 보도에 대한 불신감만 돋보이게 한 것 아닌가.
또 북한 공작원을 인지했을때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은,현행법상 중범인 불고지죄를 무릅쓰겠느냐고 묻는 것이나 같다. 그렇게 해서 나온 94.5%란 숫자는,이번 간첩단 사건에서 신고가 한건도 없었다는 대공경각심의 이완을 호도하는 결과로 되지 않겠는가.
▼10월13일자 중앙일보는 요즘 민자당 사태와 관련한 여론조사 결과,박태준 최고위원의 탈당에 대하여 42%가 「잘했다」고 대답했다고 보도했다. 그 한편 64%는 그의 탈당이 민자당에 불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조사에는 박 최고위원의 탈당을 왜 「잘했다」고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없다. 결과적으로,민자당이 불리할 것이니 「잘됐다」는 생각도 「잘했다」가 되고,노심·박심 살피기가 지겨웠던 나머지의 「그럴 바에는 차라리…」라는 심정도 논리적 합의가 담긴 「잘했다」로 포괄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조사결과가 공인의 좌고우면과 이합집산을 보는 국민정서를 제대로 반영했다고는 못할 것이 아닌가.
이상의 말들은 새삼스런 트집이 아니다. 조사 기법이 어떻고의 문제만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각종 사회조사가 정착단계에 있고,그것이 우리 사회의 기능이나 정치과정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그 조사가 잘못될 경우의 역작용도 생각함직 하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은,대외적으로 크게 발표가 되는 사회조사는 객관적으로 검증이 되어야겠다는 것이다. 정부시책이 항상 고득점을 얻는 정부의 여론조사 결과 발표를 볼적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더 아쉽기는 이들 조사결과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태도다. 한 나라의 살림을 좌우하겠다는 사람들이 신뢰도마저 확실치 않은 조사결과를 놓고 일희일비하며,그에따라 정국이 경직됐다,풀렸다 한다면,그 것은 넌센스나 다름이 없지 않겠는가.
분명한 것은,민주주의는 여론정치로되 여론조사 정치로 타락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정치 지도자들에게서 아쉬운 것도 여론조사의 숫자를 읽는 수재가 아니라,국민의 다음을 헤아리는 동찰력이라고 해야 옳다.<상임고문>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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