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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재평가/정달영(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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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재평가/정달영(화요칼럼)

입력
1992.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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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2일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기념일이다. 특히 올해는 그 5백주년이어서 대서양의 양쪽에서 떠들썩한 행사들이 잇달았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이나 세비야 박람회 등도 그런 기념행사의 성격이 있었고,올해 노벨문학상이 카리브 섬나라 출신의 흑인 혼혈 시인에게 돌아간 것도 콜럼버스 5백년의 해와 전혀 무관한 것 같지 않다.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지금 도미니카를 방문중인 것,중남미 국가들 전역에서 기독교 선교 5백년을 기념하는 것들이 모두 같은 행사의 일환이다.○반콜럼버스 시위

그런데 미주대륙에서의 콜럼버스 5백년 행사들을 전하는 오신은 거의 한 목소리로 「비판받는 콜럼버스」를 말하고 있다. 어제 하루동안 곳곳에서 5백년 행사에 대한 원주민들의 항의시위가 벌어졌다고 한다. 그들에 의하면 콜럼버스로 대표되는 백인세력은 신대륙에 「침입」해서 대량학살과 문화·생태계 파괴를 일삼은 「약탈자」들이다. 세계사의 일대 「영웅」에 대한 재평가치고는 가혹한 듯하지만,그것이 또한 역사적 진실이기도 하다. 유엔이 93년을 「세계원주민의 해」로 정한 것도 콜럼버스 5백년이 뜻하는 파괴적인 정복자들과 그들에 의해 소멸해간 원주민의 역사에 대해 한번쯤 「재평가」하자는 뜻을 함축한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인 평가란 때로는 가혹하고 또한 변전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중남미 대륙을 두고 말한다면 콜럼버스에 의한 「발견」을 기념하는 일이 문제가 아니다. 그로부터 비롯된 잘못된 역사전개와 오늘의 정치사회 부패가 훨씬 핍진하고 절실한 문제인 것이다.

지난달 하순과 이달초에 걸쳐서 필자는 때마침 반부패 열정으로 들끓고 있던 브라질 현지를 여행했다. 이 글이 콜럼버스로부터 시작된 연유가 그것이다. 불과 2년반전 「정직과 희망」의 상장으로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집권했던 43세의 「영웅」 콜로르 대통령이 「부패와 수치」의 상징으로 격하되어 권좌에서 추방되고 있었다. 그가 국민의 직접선거에서 의해 대통령이 된것은 브라질 현대사에서 29년만의 일이었는데,그가 탄핵이라는 합헌적 수단에 의해 평화적으로 쫓겨난 것은 중남미 역사에서 처음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인기절정의 민선대통령을 하루 아침에 「재평가」하도록 만든 것은 역시 부패의 고리를 스스로 끊는데 실패한 지도자였다. 난방장치가 된 잉어 연못을 갖춘 저택의 정원을 고치는데 뇌물로 받은 2백50만달러를 썼다는 사실보다 더 국민을 분노하게 한것은,그가 혐의를 인정하는 대신 자신을 자신만만 하게 변호한 장면이었다고 한다. 콜럼버스는 「달걀세우기」식 강변도 통할 수 없었던 막다른 상화이었던 듯하다. 콜로르의 탄핵을 통해 브라질의 시민 민주의의는 크게 전진했다고 평가된다.

○도마위 3당 합당

남의 대륙,남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의 민주주의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가. 우리 정치상황은 마치 해도 한장 없이 황천항해중인 난파선을 보듯 아슬아슬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놀라운 국면」이 벌어진다. 그 국면들은 대개 예측을 뛰어넘는 것들이다. 뛰어넘는 고원정의 정치소속이 오늘의 상황을 80%넘게 적중하고 있다는 것이 화제이지만,한국정치는 고원정처럼 「예언자」의 경지가 아니고는 내다볼 재주가 없는 것인지 모른다. 보통의 상상력과 직관력으로는 이 「천하대란」을 그냥 지켜보기도 힘들다고들 한다.

그러나 정치가 묘수풀이나 예언의 몫일 수는 없는 일이다. 복잡해야할 까닭이 없다. 콜럼버스가 달걀을 세우듯이 명백한 것일수록 정치답다.

돌이켜 보면 오늘 빚어지고 있는 정치권의 혼돈은 그 연원이 「3당합당」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김영삼 민자당총재가 지금맞이하고 있는 새로운은 그가 결행한 3당 합당에 대한 국면 역사의 재평가를 요구받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명백하게도 이 상황은 그가 자초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두달 앞으로 박두한 대선에서 그의 입지가 보다 위태롭게 될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과감한 개혁의지

김영삼총재가 선택할 일은 더욱 과감한 개혁의지가 아닌가 한다. 만약 그것이 없다면 그는 지금 그에게 닥칠 역사의 재평가에서 견디어내기가 힘들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정부 눈치까지 보아야할 여당의 입장을 벗어났기 때문에,그에게는 개혁의 선택지가 훨썬 더 여유있게 되었다. 김 총재는 그것을 움켜잡아 다시한번 결행해야 한다.

국민은 지금 확실히 혼란스럽다. 그러나 국민이 바라는 것은 「부산·경남의 김영삼」이나 「호남의 김대중」,또는 「중부·경북권의 누구」를 선택하자는 것이 아닐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 발전과 민족의 화해를 위해 누가 더 바람직한 지도자인가를 선택하자는 것이다.

정당은 이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정책대결만이 국민의 역사적 평가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더 이상의 지역할거주의는 역사에 죄짓는 일이다.<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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