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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제 개헌의 논쟁/이춘성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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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제 개헌의 논쟁/이춘성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2.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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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이 일어난지 56일이 지난 1960년 6월15일 상오. 태평로 국회의시당.5백여명의 방청객들이 자리를 꽉메운 가운데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33분간에 걸쳐 의원들의 기명투표가 끝나자 곽상훈의장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재적의원 2백18명중 출석 2백13명,찬성 2백8 반대 3표로 가결되었음을 선언한다』고 표결 결과를 발표했다.

내각책임제 개헌안이 통과된 것이다. 순간 의석에서는 「만세!」 소리와 박수가 터져나왔고 일부 고참의원들은 흐느껴 울었다. 같은 시간 의사당 밖에 운집한 시민들은 소식을 듣고 「만세」를 외쳤고 잠시후 나오는 의원들에게 『수고했습니다』고 악수를 청하는가 하면 몇몇의원들을 헹가래치기도 했다.

50년 3월9일 서상일의원 등이 내각제 개헌안을 냈다가 이승만대통령의 지지파들의 백지투표로 부결된후 10년 3개월만에 내각제를 실현시킨 것이 아닌가. 아닌 12년만이었다. 제헌국회 초기 헌법제정 특위는 당초 내각제헌법안을 완성했으나 당시 국민적 제1의 지도자로 인정되던 이 박사가 『그런 헌법하에서는 어떤 직위로 취임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아 하룻밤새에 권력구조가 대통령 중심제로 바뀐 것이다.

어쨌든 국민과 정치인들은 내각제 채택으로 다시는 이땅에 권력횡포의 독재와 장기집권이 없는 새로운 민주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런 기대속에 탄생한 장면정권이지만 겨우 혼란을 수습하며 국가개발 사업에 착수하려할 즈음 5·16군사 쿠데타에 의해 붕괴되고말았다.

5·16후 주체세력들은 내각제를 정치와 사회의 혼란·부패를 가져오는 몹쓸 제도로,우리나라 실정에 맞지않는 정치제도로 낙인 찍었고 5·16 3개월여후 발표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소위 「8·12 중대선언」에서도 장차 새정부는 대통령중심제가 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주체세력의 논리는 단순했다. 즉 확고한 안보체제와 경제개발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지만 진작부터 박 의장을 민정이향후의 대통령으로 구상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10·26이 날때까지,6공이전까지 내각제 개헌이 정식 제기된 적이 없다. 역시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은 3당 합당에 의한 민자당 출범때의 밀약부터라고 할 수 있다.

얼마전 5·16의 2인자였던 김종필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이 언제부터의 지론이었는지는 모르나 런던에서 장차 내각제 추진을 밝힌데 이어 최근에는 박태준 최고위원이 김영삼총재에 대해 내각제 및 국회의원의 중·대 선거구제 추진을 대통령 선거공약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고 거부되자 선거대책위원장 등 모든 당직의 사퇴는 물론 아예 탈당선언까지 함으로써 민자당이 크게 술렁이고 있다.

박 위원은 『현재와 같은 계속 집권과 지역패권주의로 인한 갖가지 폐단을 막기위해서는 내각제로 권력구조·정치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인 반면 김 총재는 『내각제의 기본요건인 지방자치제가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데다 대선이란 중대사가 있는 이 시점에서의 논의는 적절하지 못하다』고 거절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체로 이번 박 위원의 내각제 추진요구는 합당이후 민정계가 당초 주장해온 것이기는 하나 진자배경은 다른데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즉 노 대통령을 대신하여 합당이후 민정계를 관리해왔음에도 대통령 후보경선 과정에서의 혼선으로 민정계가 공중분해된데다 대통령의 탈당중립 선언때도 철저히 소외된데 대해 쌓였던 불만 등이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내각제가 당장의 긴급한 과제는 아니더라도 모든 정치인들과 정당이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해야할 것을 강조하고 싶다. 시대적 변화의 흐름과 두 김씨이후에 대한 새로운 정국운영의 바탕으로 내각제 문제가 언제든지 부상할 가능성이 다분히 있기 때문이다. 또 내각제가 때도없이 각가지 정치적 이해에 따라 불쑥불쑥 제기되어 국민들을 당혹하게 할 여지가 많은 것이다.

따라서 누가 집권하든 다음 정권에서는 국가발전과 국민 이익 차원에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국민적 토론과 민의수렴 과정 등을 통해 내각제의 채택여부를 판가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정부가 국민투표 방식 등으로 국민의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채택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이 논의는 국가의 백년대계와 민주정치의 안정기반 구축이라는 차원에서 진행돼야하며 어느 특정지도자나 정파의 이해에 따라 추진되어서는 안된다.

내각제 문제를 언제까지나 정치적 논쟁으로 시종하는 것은 엄청난 국력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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