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의지만이 도박 끊는다”/「단도박회」 84년 결성… 전국 5곳 활동/미 신부가 주도… 「꾼」들 7백여명 거쳐가/고백→격려등 과정 “새삶”/“주위 도움땐 완치빨라”/가족모임도 함께 열어『저는 영등포에 사는 박입니다. 도박을 시작한 것은 80년부터였고 마지막으로 한것은 90년 2월이었습니다. 지난주에도 별일없이(도박을 하지않고) 잘 지냈습니다』 8일 하오 서울 왕십리의 한 건물에서는 10여명이 둘러앉아 5분씩 자기고백을 하고 있었다. 죽기보다 힘든 도박끊기를 위해 결성된 단도박모임(GA=Gamblers Anonymous) 회원들의 정례 모임이다. 단도박 모임은 서울 왕십리 봉천동 사당동 창동 등 4군데와 광주에서 매주 월 수 목 금요일 4차례 열린다. 참석인원은 모임별로 12∼15명으로 84년이후 8년 동안 7백여명이 거쳐갔다.
하오 8시께부터 2시간여 동안 진행되는 모임에서 회원들은 자기고백을 통해 심리적 불안을 해소하고 서로를 격려한다. 자기고백이 끝나면 「우리는 도박행위에 무력했으며 그로인해 우리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게되었음을 시인합니다」 등의 「단도박 친목 12단계」를 기도문처럼 암송한 뒤 20개항의 자기진단법에 따라 도박증세가 얼마나 해소됐나 확인한다.
회원들의 익명은 철저히 보장된다. 서로 「신 성생님」 「김 선생님」으로 부를뿐 직업 경력따위는 묻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회원중에는 교수 의사 고급공무원도 있는데 거의가 상습도박으로 심한 내면적 갈등과 가정불화를 겪은 사람들이다.
86년부터 3년 동안 5천만원을 잃고 가정파탄 직전에 가입,왕십리회 총무직까지 맡고 있는 채모씨(36·서울 도봉구 방학동)는 『첫날 과거의 경험을 토로하자 신기하게도 막혔던 가슴이 확뚫리는 것처럼 시원했다』며 『모임을 통해 삶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도박병을 치유한 대표적인 경우가 최모씨(41·여·서울 마포구 합정동). 지금은 기업체 간부인 남편과 중학생 국민학생인 남매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한때 최씨는 상습도박으로 남편의 회사공금까지 날린 전력이 있다.
최씨는 우연히 「엄마가 밉다」. 차라리 이 세상에서 없어져 버리면 좋겠다」는 아들의 일기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성당에서 고백성사를 하고 단도박모임에 나오게 됐다.
단도박모임은 87년부터 가족모임을 병행하고 있다. 도박경력 30년인 남편을 모임에 참여시키고 자신도 가족모임에 열심히 나가는 박모씨(50·여·서울 관악구 봉천동)는 『남편의 완전치유를 위해 정신과치료도 병행하고 있다』며 『온 가족이 이해와 포용력으로 감싸주면 도박증 치료는 불가능한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단도박회원들은 모임참석 1백일과 1년이 되는 사람들을 위해 백일잔치 돌잔치를 연다. 서울시내의 4개 모임회원들이 모두 모이는 잔치에선 케이크와 떡 과일이 풍성하게 차려지며 「꼭 재기해 새삶을 살라」는 뜻으로 오뚝이를 선물한다.
도박을 완전히 끊은 사람에게는 해당연도가 새겨진 1백원짜리 동전을 함께 주며 모임참석 5년째인 회원에겐 금배지도 준다.
회원들은 회비를 내지 않는다. 다만 사무실관리비 잔치비용 유인물 제작비를 고려,모임이 끝날때 검정색 주머니를 돌리는데 빈털터리가 많아 헌금은 고작해야 1인당 1천원정도다.
차비가 없는 사람들은 이 주머니에서 적당히 꺼내가도록 하고 있다.
단도박은 1957년 미국인 짐 W씨가 LA에서 「GA12단계 프로그램」을 개발,첫 모임을 갖기 시작한 것. 우리나라에선 그 자신도 상습도박자였던 미국인 자모신부(61)가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한 농부의 음독자살사건에 충격을 받아 84년 6월 경기 부천의 심곡성당에서 활동을 하기시작했다.
백 신부는 『도박병 치유의 가장 큰 무기는 도박을 끊겠다는 강한 의지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손가정이 「꾼」 낳는다/한탕주의 세태도 한몫/“처벌법규 강화만이 확산막아”/건전한 오락거리 발굴 아쉬워
도박은 난치병이다. 뽀족한 치료법이나 특효약이 없다.
「손이 잘리면 발로 친다」는 섬뜩한 속어가 웅변하듯 도박에 한번 손대면 끊기 어렵다.
정신과 전문의와 심리학자들은 상습도박을 개인적·사회적 원인이 함께 맞물려 빚어진 사회병리적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상습도박자는 대개 15세 이전에 부모가 사망·이혼한 결손가정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자랐거나 경쟁만을 강요하는 부모의 가혹한 교육열로 심한 스트레스나 우울증에 시달렸던 이들에게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
서울대 차재호교수(심리학)에 의하면 최근 외국학계의 조사결과 남성 상습도박자의 80% 이상이 어려서부터 배척을 당하거나 외로움에 살았으나 특히 아버지에 대해 분노와 공포를 느끼는 이른바 오이디푸스콤플렉스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사회병리연구소 백상창소장(58·신경정신과박사)은 『누구에겐가 실컷 얻어 맞고 싶다거나 자기가 소유한 모든것을 상실하고 싶은 깊은 절망감에 빠지는 자학증세가 강한 사람들은 존재의미를 확인하기 위해 도박에 빠져들기 쉽다』고 경고했다.
상습도박은 이같은 개인적 성향외에 황금만능주의와 허무주의 따위의 사회세태가 상습작용을 일으켜 확산되는게 통례이다.
성공만을 최고가치로 여기는 교육풍토에서 자란 사람들이 물질과 능력·학벌만이 존재수단으로 여겨지는 사회풍토에 내던져지면 우울증이나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쉽고 상습도박·알코올중독·마약복용 등 극단적인 탈출구를 찾아가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고려대 의대 신경정신과 서광윤교수는 『60,70년대의 급속한 산업화과정에서 경제적 부는 이룩했으나 이로인해 찰나주의·한탕주의·쾌락주의가 만연,도박 등 현대인의 정신을 좀먹는 사회병리 현상이 돌출했다』며 『내부적 갈등과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건전한 오락거리가 없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감안할때 도박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피력했다.
그러나 관련학자들은 상습도박자 자신들이 도박을 끊겠다는 의지력을 키울 때 전혀 방법이 없는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사회병리연구소 백 소장에 의하면 도박치료 방법으로는 집단치료법,항불안제·항정신병성 약품 등에 의한 약물치료법 두가지가 이용되고 있다.
도박에 빠졌던 이들이 소집단을 형성,자신의 과거를 솔직히 토로해 심적불안을 해소토록하고 등산 낚시 음악감상 독서 등 건강한 취미를 함께 즐기도록 하는게 현재로선 가장 적절한 치료법으로 인정되고 있다.
병리적 현상으로서의 도박치료뿐 아니라 법규강화 등 일시적인 제도적 강압장치의 발동도 도박막연현상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 된다.
현재 단순도박의 경우 형법 246조 1항은 재물로 도박한 자에대해 1백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를 물리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일시 오락정도에 불과할 때는 예외라는 단서조항을 두고 있다.
이때문에 도박자가 검거되더라도 사회적 신분이나 재산정도에 따라 담당경찰관 및 검사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처벌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습도박의 경우도 3년 이하 징역이나 2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법규정에 명시돼 있지만 상습의 한도와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고 법적용을 뒷받침할 시행령이 없는 실정이다.
한양대 강신표교수(문화인류학)는 『인류역사의 발달과정이 광의적 개념의 도박사라고 볼때 인간 개개인의 의지력 향상으로 도박을 근절키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합법적인 도박공간 확대는 우리사회 구조와 체제상 어려우므로 법제도 강화에 의한 주기적 단속만이 도박만연의 확대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특별취재반>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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