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대 국회의 첫 9월 정기국회가 예산국회 노릇을 제대로 해낼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부정적인 답변이 앞선다. 통상의 예산국회에서도 제대로 법이 규정한 「권리와 의무」를 이행한 일이 없다. 본과제인 예산은 옆으로 미루어두고 정쟁으로 시간과 땀이 소모됐다. 이싱하게도 예산이 정쟁의 원인이 아니라 담보가 됐다.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의 정치파행이었다. 올해 정기국회는 특히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두고 열려 그 입김은 고사하고 그 콧김에까지 좌우되게 됐다. 14대 국회는 햇볕을 보면서부터 대선의 태풍을 받았다.정부·여당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연기에 따른 민주·국민당의 개원거부로 공전하다가 노태우대통령의 「9·18조치」 로 정상화가 됐으나 대선으로 예산 국회일정의 단축이 불가피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목청만큼 졸속심사가 예상된다.
예산이 잘못하면 대선의 회오리에 미아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특히 이번 국회에서 예산심의·통과를 주도해갈 상임위원장들의 인선을 보면 불안하다. 민자·민주·국민 등 3당이 「나눠먹기」식으로 의석비율로 안배한데다가 3당의 인선이 당지도부의 임의대로 원칙없이 이루어졌다. 국회의 불문율인 다선우 대원칙도 불분명해졌다. 능률을 높이자면,국회의 위상을 제고하려면 당연히 고려돼야하는 능력과 경험이 별로 감안되지 않은 것 같다. 특히 경제부처 관련 상임위원장들에게는 더욱 그런것 같다. 경제과학,재무,상공,농림·수산,건설,동력자원 교체통신,노동 등 8개 경제관계 상임위원장 가운데 소위 「전국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지명정치인이 없다. 또한 관련된 경력이나 경험이 있는 인사도 재무위원장 노인환의원과 농립·수산자원장 정시채의원 등 2명 정도다. 나머지 위원장들은 정치에는 우등생인지 몰라도 전혀 생소할 분야를 맡은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꼭 전문화될 칠요가 있느냐 없느냐는 충분한 논쟁거리가 된다. 그러나 미국과 같이 정치가 안정되고 국회의석의 교체가 극히 적은 나라에서는 전문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유명 상·하의원들은 소속위원회의 터줏대담으로 「왕국」을 세우다시피 하고 있다. 상원의 소위 3대 위원회라 할 수 있는 군사위원회의 샘 넌 위원장(민),재무위원회의 로이드 벤슨위원장(민)은 막강한 권위다.
특히 샘 넌과 로이드 벤슨 위원장은 상원의 스타플레이어들이다. 국민총생산액(GNP)의 약 6%를 차지하는 국방예산이 샘 넌 위원장의 군사위에서 요리된다. 예산을 잡고 있으니 정책도 잡혀있다. 주한미군의 철수계획도 군사위의 작품이다. 또한 벤슨 위원장의 재무위는 행정부의 시장개방 정책 등 통상정책을 감독한다. 막후에서 개방정책이 수위를 조절한다고도 하겠다.
각 위원장이 관련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들인 것은 물론이다. 또한 강력한 전문스태프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 학원에서는 댄 로스첸코 위스키 세입위원장(민)이 대표적 스타다. 예산에 관한한 하원에서 그는 제1인자다. 이래서 미국을 움직이는 10대 인물의 하나로 손꼽힌다. 의회의 이러한 거물들이 예산심의 등을 통한 「견제와 균형」으로 국정의 또다른 기둥이 되고 있다. 행정부와 당이 각각 대통령이나 지도부 중심의 권위주의 체제를 탈피치 못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국회에 대해 미국 의회의 능률,전문성,권위를 기대하는 것은 현단계에서는 어불성설이다. 한국 국회는 국회로서의 기반조성이 전혀돼 있지 않다. 제대로 국회노릇을 할 생각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우리 국회에도 우수한 인력들이 있다. 그러나 기용되지 못하고 있다. 기업으로 말한다면 불실화를 자초하고 있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변혁과 개혁을 내걸고 12월의 대선에 나서고 있는 민자,민주,국민 등 3당의 대통령 후보들이다. 구태는 국회운영에서부터 혁파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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