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례 남파… 출생·성장과정 “베일”/79년 김정일 발탁 해외첩보 총괄/민중당 창당 지원… 재야선 「독지가 할머니」안기부에 의해 북한공작지도부 총책으로 확인된 이선실(여·70세 가량)은 현재 북한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최고인민회의 대의원·한민전 부위원장 등 요직을 두루 맡고 있으며 지난달 9일 북한정권수립 44돌 기념행사에서 서열 22위로 공식발표된 초거물급이다.
안기부는 이의 서열이 현 사회단체 담당비서 김중린(23위) 대남사업담당비서 윤기복(24위) 부총리 김달현(32위) 보다 상위인 세계 첩보사상 최고위급 공작원이라고 밝혔다.
이의 출생과 성장과정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서울에서 출생,이화여전을 중퇴하고 해방후 남로당에 가입했다가 제주 4·3사태때 지하활동후 6·25전쟁중에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그후 노동당 중앙당 금강학원을 수료하고 당경공업위원회 과장,황해도 여맹간부,평양시 여맹부위원장을 거쳐 63년 대남공작원으로 선발돼 「695 정치대학」에서 본격적인 간첩교육을 받았다.
이는 66∼71년,73∼75년 등 두차례 남파돼 암약한 뒤 일본에서 조총련과 함께 대남공작활동을 했으며 이 공로를 인정받아 79년 김정일에 의해 노동당 통일선전부 부부장으로 발탁돼 해외를 통한 침투공작의 총지휘를 맡았다.
80년 10월 제6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발탁된 이는 80년초 조총련 모국방문 단원으로 위장,다시 남파돼 90년 10월 경기 강화도를 통해 복귀할때까지 10년동안 남한내 간첩망을 총지휘해왔다.
이는 도일후 북송된 신순녀(74·여)의 신원을 도용,78년 6월 모국방문단에 끼여 잠시 입국한 뒤 80년초 같은 방법으로 다시 침투해 신순녀 이름으로 전주시 평화동에 주민등록을 내고 영주정착 형식으로 합법적 신분을 확보했다.
이는 이후 곧바로 상경,서울 동작구 대방동 344의 5 주택을 사들여 6년여동안 거주했으며 신길동과 경기 안양시 비산동에도 집을 구입해 아지트로 사용하면서 「신순녀」 「이선화」 「이옥녀」 등의 가명으로 암약해왔다.
이는 나이가 많아 별 의심을 받지 않는 점을 이용,재야운동가 등에게 『일제때 독립운동을 했으며 제주 4·3사태 희생자 유족으로 아들이 통혁당사건에 연루됐다가 행방불명 됐다』고 자신을 소개한 뒤 『평생 홀로 지내며 삯바느질과 식당일로 모은 돈을 민주화운동에 쓰고싶다』는 식으로 접근했다.
이는 87년부터 문익한목사의 가족들과도 친교를 맺어 89년 1월 문 목사가 밀입북하기 전 상당액의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으며 90년 5월 민중당에 복사기 등 2천5백여만원의 금품을 제공하는 등 민중당 창당에 깊숙히 개입,그해 11월 창당대회때 「창당유공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는 또 민가협 회원 등과도 폭넓게 교류해 재야운동계에서는 「독지가 할머니」로 알려져 있다.
지난 90년 10월17일 이와 함께 입북한 황인오씨는 『당시 헬기로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했을때 장관급인 사회문화부장 이창선 등 고위인물 수십명이 도열해 이를 극진히 영접했으며 만경대 김일성생가 방문때도 모든 행사가 이 중심으로 진행돼 놀라웠다』고 진술했다는 것.
안기부는 당시 이창선이 『할머니,이제 쉬셔야죠』라고 말하자 이가 『또 내려가야지』라고 말했다고 황이 증언했으나 재남파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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