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갈등이 신앙의 차원을 넘어 충동범죄의 동기가 되었음은 큰 충격을 던져준다. 주일예배를 보던 교회에 방화라니,차마 이런 참변이 있을 수 있을까. 아무리 막 가는 세태라도 이럴수가 있는 것인가,어지럽기만 하다.원주의 기독교 「여호와의 증인」 교회에서 술에 취한 남편이 아내를 내놓으라고 소리치다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졸지에 날벼락처럼 14명의 신도가 숨졌다. 희생자중엔 교리에 따라 수혈을 거부한 사람도 있어 사망자가 늘었다고 한다. 홧김에 불을 질렀다는 방화범의 자백과 진술을 들어보면 동기는 단순하다. 남편은 불교신자인데 아내는 몇달전부터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되면서 이질적인 신앙의 대립이 끝내 가정불화로 번지게 된것이다. 아내가 가정을 돌보지 않고 교회에 몰두한데서 대뜸 살의가 번득이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충동적이고 성급한 세태의 반영이다.
그러나 이번 방화살인을 이렇게만 보는 것은 피상적인 안목임을 쉽게 알만하다. 우리네 종교열은 하늘을 찌를듯 과열상태를 빚어내고 있다. 양적인 교세의 확장은 기하급수적이다. 어찌보면 축복이고 기적과도 같다. 하지만 내면을 보면 병적인 측면이 금방 드러난다. 무엇보다 앞서 지적될 것은 건전한 신앙과 맹신의 구별이 흐릿하다는 사실이다. 종교의 과열을 굳이 탓할 까닭이 없으니 정도를 넘어선 광신은 반드시 부작용과 화를 부르게 마련이다. 신앙은 생활의 한 단면이지 전부는 아닐 것이다. 생활을 등지거나 버린 신앙은 환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부질없는 종말론이나 휴거론 같은 것은 종교의 본질을 오히려 훼손함과 마찬가지다.
다음으로 현대가 다원화 사회이듯,종교도 다원화 함을 깨끗이 인정해야 건전한 신앙생활이 영위된다. 종교와 종파사이의 배타주의는 거꾸로 종교간에 반목을 일으켜 증오를 잉태시킨다. 사랑의 신앙이 미움의 종교를 지향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모순에 불과하다. 자기의 종교와 신앙이 존귀할수록 타인의 그것도 존중할줄 알아야 정사이고 마땅한 일이다. 특징 종교의 절대주의는 위험하고 독선일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일상생활의 기틀인 신앙생활이 맹신과 광신 또는 편협한 독존주의에 빠지면 가정과 사회의 갈등을 빚어내게 된다.
일상과 가정을 돌보지 않고 등한시하는 종교는 삶의 포기와 다름없다. 그렇다면 삶을 포기한 신앙이 과연 올바른 신앙일까. 지나친 세확장에 골몰하는 우리의 종교가 반성할바가 바로 이런 점이다. 신앙과 생활의 전건한 접목이 요구되고 있다.
삶을 뒷받침하는 종교가 세속의 혼란을 불러 일으키는 오류는 배제되어야 한다. 종교인들은 이 기회에 구도의 질이 무엇인가를 깊이새겨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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