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외무 “이젠 진정돼야”【런던·본 외신=종합】 영국과 독일은 1일 파운드화 폭락을 둘러싼 책임공방으로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양국관계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판단,적극적인 사태수습에 나섰다.
존 메이저 영국총리는 이날 영국 유선방송인 SKY TV와의 회견에서 『이제 독일과 벌여온 말다툼에 선을 그을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측이 이번 사태에 대한 유감의 뜻을 표명해와 이를 받아들였다고 덧붙였다.
클라우스 킨켈 독일 외부장관도 독일 브레멘에서 열린 자민당 집회에서 『독·영관계는 이제 진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독일 분데스방크 관계자는 영국측에 유감을 표명한바 없다고 밝혔으며 킨켈 장관 역시 직접적인 유감표명을 하지않아 사태의 악화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유럽 외교관게자들은 『양국 갈등이 유럽공동체내의 편싸움으로 비화될 우려마저 있다』고 분석하며 상호 비방전이 재개될 경우 유럽통합노력은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오는 16일의 EC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따라 향후 유럽통합의 방향이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영의 「반통합」 분위기에 정면 도전/독 「통화문서」 배포배경/영 여론충격 노려 “통합대세 가닥잡기”/독 언론도 “영 경계심은 왜곡된 것” 공세
【베를린=강병태특파원】 영국의 유럽환율체제(ERM) 탈퇴배경을 밝힌 독일 분데스방크의 해명문서 배포로 고조된 독·영간 갈등은 ERM 위기와 유럽통합 조약비준을 둘러싼 양국간 다툼에서 결정적 고비가 될 것 같다.
양국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있는 이 해명문서 논쟁에 대해 콜 총리 등 독일정부 지도자들은 대체로 『중대사건이 못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사자격인 슐레징거 분데스방크 총재는 『이 문서는 내부 브리핑용』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주목되는 것은 킨켈 외무장관이 『분데스방크와 협의를 거쳐 배포했다』고 밝힌 사실이다. 양국관계가 극도로 미묘한 상황에서 영국정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문서를 영국언론에 배포하고,이를 주저없이 긍정한 것은 영국측에 정면대결을 선언한 것으로 이해된다.
영국정부는 그동안 『이탈리아의 리라화 평가절하 직후 슐레징거 총재가 파운드화의 평가절하 가능성을 발설해 파운드화 가치폭락을 초래했다』고 비난해왔다.
그리고 『ERM 의무규정에 따른 독일측의 파운드화 지원매입이 미흡,가치폭락을 막을 수 없어 ERM 잠정탈퇴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영국정부의 주장에 영국 대중언론은 나치과거까지 거론하며 분데스방크와 독일정부를 강력히 비난했다. 집권 보수당내 유럽통합 회의론자들은 이를 독일주도의 유럽통합을 반대하는 명분강화에 동원했다.
그러나 파운드화 폭락의 근본원인은 영국의 경제상황과 화폐정책 자체에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독일측 뿐만 아니라 영국에 호의적인 헤럴드 트리뷴지나 민간전문가들도 『영국은 ERM의 혜택은 누리면서 파운드화 안정노력 등 대가는 치르지 않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영국은 긴급 소집된 유럽공동체(EC) 12개국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11개국의 집중비판을 받았다.
헤럴드 트리뷴에 의하면 국내에서 독일비판에 앞장섰던 라몬트 영국 재무장관은 독일측의 강력한 항의에 「사과성 발언」을 했다. 그러나 영국정부는 여전히 ERM의 「결함」시정을 전제조건으로 조기복귀를 거부했다. 이에 대해 영국 최고위원은 이코노미스트지도 『영국은 그동안 ERM의 중심인 분데스방크의 완고한 인플레 억제책 덕분에 자력으로는 불가능한 인플레 억제와 화폐안정을 이룰 수 있었다』며 정부를 신랄히 비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분데스방크가 『4백80억마르크를 퍼부어 파운드화 지원 매입을 했다』고 밝힌 것은 단순히 영국 대중언론에 사실관계를 해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독일은 「반유럽통합」쪽으로 떠 밀려가고 있는 메이저 정부에 외교적 고려를 무시한 정면 공격을 가해 대세를 되돌리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이같은 의도는 이번 사태에 대한 독일언론의 보도자세에서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다. 독일언론은 이 사태를 전하면서 최근 V2로켓 발사 50주년 기념행사에 대한 영국언론의 대대적인 「나치악몽」 상기공세와 지난 5월에 있었던 독일도시 폭격전 지휘자 해리스 영국 공군원수의 동상건립을 둘러싼 갈등까지 거론했다. 독일언론들은 영국측이 뒤늦게 해리스 원수의 동상을 런던 한복판에 세운 것을 통일독일에 대한 경계심의 왜곡된 표현으로 분석했었다.
V2로켓 기념행사는 독일언론에서도 비판을 받아 취소됐으나 언론들은 『영국은 냉전종식과 독일통일후 유럽의 세력균형 붕괴와 독일의 자기주장에 불안감을 갖고 있다』며 영국의 과민반응의 배경을 지적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호에서 『영국은 미국과 유럽사이에서 다시 고민하고 있다』고 영국이 처한 상황을 적절히 지적했다. 그리고 『ERM 위기는 이 기로에서의 결단시기를 앞당겼다』고 분석했다. 독일의 전면공격은 그 결단을 강요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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