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낳는 「정신적마약」/배후엔 폭력조직… 점차 흉포화/「노름빚」 살인·유괴 “밥먹듯”/부유층·유력인사등 표적/「꽃뱀」 통해 먹이 유인까지도박이 우리사회를 망쳐가고 있다. 80년대 초반부터 정치적 허무주의와 불안심리에서 번지기 시작한 고스톱 등 각종 도박은 유한·불로소득 계층의 증가와 함께 급속도로 퍼져 이제는 고질적인 사회병으로 커졌다.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패가망신하거나 각종 강력범죄의 가해자·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더욱이 일확천금의 도박심리는 건전한 국민근로정신을 좀먹고 있다. 『대한민국은 도박공화국인가』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도박의 폐해는 심각하다. 한국일보사는 특별취재반을 구성,도박추방을 위한 집중보도를 시작한다.<편집자주>편집자주>
『강력범죄 뒤에는 도박이 있다』 강력범죄 뒤에 여자와 돈이 있다는 말은 이제 맞지 않는다.
불과 몇년전만 해도 노름빚으로 인한 자살이나 도박장에서의 불륜관계를 미끼로 한 공갈·협박이 도박의 부수범죄로 저질러졌으나 이제는 살인 유괴 강도 강간에 이르기까지 도박때문에 일어나는 범죄가 더욱 다양해졌고 수법도 훨씬 흉포해졌다. 노름빚을 갚으려고 어린이를 유괴 살해하고 백주 대낮에 살인강도극을 벌이는 범죄자들이 늘고 있다.
포커판에서 잃은 돈을 갚으려고 여덟살난 어린이를 유괴 살해한 수원의 문모(34)는 노름빚 7백만원을 갚을 방법이 없자 지난해 10월 이모군(8)을 유괴,1천5백만원을 요구하다 어린생명을 죽이기까지 했다.
택시운전사 안모씨(30)는 지난해 11월 5백여만원의 노름빚을 지자 불법개조한 엽총을 들고 모녀만 있는 가정집에 뛰어들어 강도살인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포장마차로 생계를 이어가는 박모씨(21·폭력전과 1범)는 형(25)이 포커도박으로 30만원을 잃자 지난 5월26일 밤 형과 함께 도박을 한 강경태씨(23)를 찾아가 과도로 찔러 숨지게 했다.
노름빚 때문에 궁지에 몰려 가족까지 살해하는 끔찍한 범죄도 발생한다. 6천만원의 전재산을 탕진해 가정이 파탄상태가 돼버린 유만봉씨(31·무직·서울 구로구 시흥1동 한양아파트)는 지난 2월12일 잠자고 있는 부인(35)과 아들(9)를 과도로 찔러 살해하고 자살을 기도했다.
도박으로 인한 범죄뿐만 아니라 범죄를 위해 도박을 수단화하는 경우도 많다. 이른바 「꽃뱀학교」가 전형적인 경우이다.
꽃뱀은 빼어난 미모와 화술,「학교」에서 익힌 도박술로 부유층 남성을 사기도박판에 끌어들이는 여성. 얼핏 보기에 부유한 집안의 여대생같은 꽃뱀들은 아파트촌에 마련된 「학교」에서 고스톱은 물론 아도사키 하이로 등 온갖 종류의 도박과 속임수를 배운다. 영어 일어 등의 회화와 상식 교양도 갖춘 이들에 걸려들면 별수없이 호선생(호구와 같은 말)이나 짐짝(돈많고 어리석은 사람 또는 점찍어 물먹일 사람)이 되게 마련이다. 한두번 잃어주는데 속아 빠져들어갔다가는 영락없이 황씨(물먹고 누렇게 뜬 사람)가 돼버리고 만다.
한 경찰관은 『요즘은 꽃뱀들이 골프장에 나와 사회 유력인사들을 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경찰에 붙잡힌 꽃뱀학교장 조모씨(47·여)는 지난 8월부터 강남의 「학교」에 도박판을 열어 자리세와 이자명목으로만 두달새 12억여원을 챙겼다.
도박 뒤에는 폭력조직이 도사리고 있다. 도박과 폭력은 동전의 양면이나 다름없으며 도박조직과 폭력조직은 악의 공생관계이다.
대부분의 전문도박은 「꽁지」(노름판의 뒷돈을 대는 사람)가 대출해준 자금이나 딱지로 개강(노름을 시작함)하는데 잃은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아내는 일은 해결사들의 몫이다.
도박의 새로운 추세로 남녀가 한조(동패)를 이루는 두엣도박이 늘어남에 따라 강간 화간의 위험성도 더욱 커졌다. 도박판에서의 성범죄는 피해자·가해자 모두 조사 과정에서 숨기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한번 도박에 빠진 주부들은 하우스장이나 꽁지들과의 불륜관계 때문에 도박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도박심리는 개인과 사회를 파탄에 이르게 하는 정신적 마약과 다름없다.<특별취재반>특별취재반>
◎때·장소 안가리고 “한판”/아파트촌 곳곳에 전문 「하우스」/고스톱서 마작·아도사키까지/「노름 잘하기」 안내서도 20여종
밤 9시30분. 서울 서초구 서초동 S아파트 A동 앞에 10여분 사이에 차창을 짙게 선팅한 그랜저승용차 5대가 잇달아 도착했다. 제일 먼저 도착한 차에서 내린 귀부인 3명은 밤인데도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마중나온 40대 남자가 안내를 받아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60평형 아파트 거실에 모인 사람은 모두 15명. 「반받으라 도리짓고땡」과 「아도사키」중 어느 것을 할 것이냐로 한동안 말다툼하던 이들은 「꽁지」의 권유로 「반받으라…」를 시작했다.
이튿날 아침 7시. 이번이 세번째인 이모씨(45)는 8천만원짜리 지불각서를 꽁지에게 써주고 충혈된 눈으로 아파트를 나왔다. 이씨는 택시 오기를 기다리며 『오늘은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지난 2월19일 서울시 경찰청이 적발한 혜경이파 도박단의 적발직전 도박양상을 검거된 도박꾼들의 진술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때 경찰에 적발된 이씨는 도박병 환자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이씨만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도박병이 널리 번져있고 회사대표 공무원 경찰 군인 연예인 등은 물론 심지어 국민학생들까지 도박을 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문상객들의 하투놀이는 애교로 봐줄 수 있고 초상집의 풍속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공항에서 연발하는 비행기를 기다릴때나 막히는 귀성길의 고속도로 변에서 고스톱을 치는 모습은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요즘 도박은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벌어진다. 사우나 여관 안마시술소 기원 골프장 복덕방은 고전적인 장소이며 아파트를 세내 전문 도박장으로 사용하는 하우스가 곳곳에 늘어나고 있다.
도박의 종류도 다양하다. 일본 야쿠자 도박인 아도사키,포커 마작 빠찡꼬 사설경마 내기골프 내기당구 사설카지노 삼봉 월남뽕 도리짓고땡 고스톱 심지어 거리의 야바위 꾼들이 벌이는 「박포장기」까지.
가정주부들은 이중 도리짓고땡과 고스톱을 주로 한다.
이들이 도박판을 벌이는 곳은 전문 도박장인 일명 「하우스」. 서울 서초구 잠원동과 서초동 일대의 아파트촌에 하루 20만∼30만원의 세를 내고 마련된 하우스장 모집책인 바람잡이,1할의 고리를 떼고 자금을 빌려주는 꽁지가 가정주부의 탈선을 부추긴다.
일단 하우스에 간 유한 주부들은 이곳에서 몸 버리고 돈 잃고 꿈에도 생각못했던 전문 도박꾼이 돼간다.
경찰의 단속이 강화된 요즘엔 제1장소에 개인적으로 집결해 모집책이 마련한 고급 승용차를 타고 하우스로 이동하는 수법까지 등장했다.
가정주부들이 벌이는 도박중 최고수준으로 야쿠자 도박인 아도사키. 참여인권과 도박액수가 거의 무한대(공간적 제한만 받는다)인 아도사키 도박은 하루 판돈이 쉽게 억대를 넘어선다.
보통 10평크기의 대형 방에 군용담요를 펴고 「○」표와 「X」로 편을 둘로 갈라 ○표와 그룹과 X표그룹 대표가 하루 2장으로 패를 겨루는 일종의 그룹 도박이다.
이미 지난 89년 구모씨(38) 등 사장부인 10여명이 대구 달서구의 아파트촌에 마련된 하우스에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돈표를 이용,아도사키판을 벌이다 구속된바 있다.
최근 인천에서 백화점을 하는 황모씨(59)가 점당 1백만원짜리 고스톱과 한타에 1천만원짜리 내기골프로 진 빚 20여억원에 대한 근저당권설정 등기말소 철구소송을 낸 사건은 요즘 거액화한 사기도박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특별한 경우는 아니지만 고스톱과 카드 등 도박은 국민의 생활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한 기업체가 낸 「고스톱백서」에 의하면 응답자의 16.7%가 고스톱판에 끼지 못할때 「소외감을 느낀다」고 응답했을 정도다.
국내 최대서점인 교보문고에는 각종 도박 안내서가 200여종이나 나와있다. 교보문고 직원에 의하면 「고스톱백과」 등 이들 「취미·오락서적」은 요즘도 하루에 2∼3권씩 꾸준히 팔리고 있다.
경찰청에 의하면 90년 8월부터 91년 7월말까지 적발된 도박사범은 5천5백46건 2만1천7백94명,91년 8월부터 올해 7월말까지 적발된 사범은 7천3백건 2만8천8백33명으로 건수는 27%,검거인원은 26%가 늘어났다.
적발건수중 상습도박으로 분류된 것은 전체의 11% 남짓하지만 도박의 단속기준과 상습도박의 개념도 실제로는 불분명하고 모호해 적발될때마다 다툼이 벌어지고 유력인사들은 처벌하지 않는 자의적 법집행이 가능해 단속의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특별취재반>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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