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상/정립회관 황연대관장/1백만 지체부자유자 대모노릇 27년올해 서울시민대상 본상 수상자로 선정된 정립회관 황연대관장(54·여)은 1백만 장애인의 대모이자 우리나라 지체부자유자들의 「입」이다.
자신도 3세때 소아마비를 앓아 불구가 된 장애인이지만 이를 극복하고 지난 63년 이화여대 의대를 졸업,의사가 된뒤 65년부터 줄곧 장애인들을 위해 살아온 인간승리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몸은 비록 불구지만 사회로부터 차별받거나 소외되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도록 한평생을 바쳐온게 황 관장이 걸어온 삶의 자취다.
27세가 되던 해 세브란스병원 소아재활원에서 일하면서 장애인들을 위한 활동에 헌신하게 돈 황 관장은 66년 한국소아마비협회를 만들어 당시 해마다 입시철이면 장애인들을 낙담시켰던 입학시험에서의 장애인 차별의 벽을 허물려 시도한게 황 관장의 첫 활동이었다.
가장 먼저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단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불합격」 처리되는 잘못된 제도를 없애려 뛰어다녔고 다음에는 고교입시,그 다음에는 대학입시에서 이같은 차별을 없애는데 발벗고 나섰다. 당시 문교부는 물론 전국의 대학치고 그녀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뛴 결과 마침내 지난 86년 대학입시에서도 장애자 차별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가 장애인에 대한 교육차별 문제해결을 위해 활동을 시작한지 20년만의 결실이었다.
교육문제가 해결되자 황 관장이 또다시 시작한 일은 장애인의 취업문제. 배울 기회가 주어진 만큼 일할 기회도 마땅히 주어져야 한다는게 황 관장의 신념이다. 맹렬여성소리를 들으며 각계를 설득한 끝에 90년 국회에서 장애인고용촉진법이 제정됐고 그해 9월에는 노동부 산하에 장애인 고용촉진공단까지 설립돼 이사로 일하고 있다.
이같은 사회활동과 함께 75년에는 장애인전용 복지시설로는 처음으로 정립회관을 개관했다. 여성의 몸으로,더구나 사회의 편견과 싸우며 장애자의 요람을 건설해냈다. 체육활동을 위해 세워진 정립회관은 말 그대로 장애자가 이곳을 거쳐 바로 설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장애자들을 대하면서 아직도 그들의 문제라고 치부하는 사회의 그릇된 인식이 남아있는한 장애인은 소외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장애인들이 겪는 고통을 나의 문제로 느끼는 사회에서만 장애인은 바로 설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한 황 관장은 그러나 자신이 처음 장애자운동을 시작했을 때에 비해 지금은 「상전벽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우리 사회의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나 제도가 많이 나아졌다며 어려웠던 시절을 되살렸다.<박정태기자>박정태기자>
◎본상/우성원 최병문원장/독창적 구화교육법 개발 농아자에 새삶
서울 강동구 고덕2동 289에 있는 사회복지법인 「우성원」에서는 어른들의 음모나 욕망,시기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곳에는 티없이 맑은 10대 어린이서부터 수염이 텁수룩한 40대 어른까지 온 식구들이 가을햇살 아래서 오직 「아버지」인 최병문원장(70)만을 따르며 마냥 행복한 모습이었다.
『훌륭한 교사가 아무리 좋은 여건속에서 교육시켜봐야 장애인들을 구제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가급적 이들을 정상인이 생활하는 사회속으로 끌어들여 사회전체가 따뜻한 마음으로 이들을 돌봐줄때 비로소 장애인들도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사와 서울시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제4회 서울시민대상 본상을 수상할 최 원장은 장애자교육에 대한 자신의 신념으로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스무살때 일경에 쫓겨 맹아학교로 숨어들었던 것이 인연이 돼 농·맹아자 교육에 뛰어든 최 원장은 그후 칠순에 접어든 지금까지 청각장애·언어장애·자폐·정신지체자들을 돌봐오면서 우리나라 장애자교육의 산 역사로 자타의 공인을 받고 있다.
1922년 평남에서 출생한 최 원장은 일제치하에서 일본말 쓰기를 거부,국민학교에서 퇴학당한뒤 독학으로 한글공부를 해오던중 일본 형무소에서 죽어간 독립투사였던 형님 최병무열사 때문에 쫓겨다니다 평양고아원에서 선교사 G·S 홀여사로부터 구화교육을 전수받았다.
여기에다 한글연구를 접목시켜 독특한 구화교육방법을 개발한 최 원장은 광복후 서울국립맹아학교서 「농아자 말문트기교육」을 시작했고 이후 6·25 피란시절 제주와 부산 맹아학교 설립,62년 한국 최초의 농아유치원인 한국구화학교 설립,66년 정박아교육과정 도입,74년 자폐아교육과정 도입 등 47년간을 장애인교육을 위해 몸바쳐왔다.
또 서울대·연세대·이화여대를 졸업한 1남5녀의 자녀들에게도 모두 장애인을 위한 헌신을 강조,장남 참도씨(46)가 구화학교 교장으로,며느리 강순옥씨(42)가 교사로 재직하는 등 자녀들과 며느리·사위 등 11명 모두가 특수교육분야에서 일하고 있으며 특히 4녀인 하람씨(36)는 구화학교 출신의 언어장애자로 이곳을 거쳐 서울대 대학원(건축)을 졸업한 건축사 박창권씨와 결혼했다.<홍윤오기자>홍윤오기자>
◎장려상/한종섭씨/하남 위례성 발굴등 묻혀진 민족사 복원
『고대국가중 한강유역에서 강력한 세력을 바탕으로 가장 활발한 해외진출을 꾀했던 백제는 과거사로 묻어두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우리 민족의 자랑입니다. 더욱이 오는 94년 서울정도 6백주년을 앞두고 백제유적지의 고증작업은 그 결과에 따라 고대·중세사를 재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우리 후손들의 과제입니다』
서울향토 사학자로 백제사에 몰두해 제4회 서울시민대상 장려상 수상자로 결정된 한종섭씨(49)는 『서울시민의 한사람으로서 한 작은 일이 인정을 받았는데 기쁨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히면서 우리 민족의 뿌리가 의외로 소홀히 다뤄지고 왜곡 평가되는게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서울 타지역에 비해 유적지나 문화재가 제대로 전수되지 않은 한강 서쪽지역의 옛 지명을 고증해나가는 과정에서 백제 도읍지로 알려진 하남 위례성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토성을 찾아냄으로써 백제문화와 인연을 맺게 된 한씨는 주변에 묻혀있는 사료발굴작업을 통해 묻힌 한민족의 역사를 복원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양천구 신정3동에서 80여m에 이르는 토성발굴을 계기로 역사책에 백제 도읍지로만 알려져왔던 하남 위례성의 위치를 규명하는데 결정적 근거를 마련한 한씨는 현재 작업중인 금단산 제단과 40여만평에 달하는 성터·궁궐지 확인이 끝나는 11월께 백제건국에 대한 논문을 발표할 계획도 갖고 있다.
『송서 등 중국사서에 여러번 언급된 백제의 요동정략설이 허구가 아님을 고증작업을 통해 확신하게 됐다』는 한씨는 『이번 기회에 일제 식민사관에서 유래된 백제사가 전면 재검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암 허준기념사업회 위원으로 강서구 가양동 허준이 탄생한 유적지 보전에 앞장서 구암공원 조성에도 한몫을 한 한씨는 『앞으로 능력이 닿는대로 백제 건국사 정립과 고대문화 전파의 주체인 백제문화 복원에 관한 책자도 발간하겠다』고 밝혔다.<황유석기자>황유석기자>
◎장려상/윤희정씨/이웃위해 묵묵히 봉사하는 교사상 제시
서울시민대상 장려상 수상자로 결정된 윤희정선생님(51·선일여고)의 추천서는 다른 후보자들과 사뭇 다르다. 서울 은평구 갈현2동 한마을 사람들이 또박또박 서명,날인한 점이 눈에 띈다. 마을의 큰 일꾼이기 때문이다. 윤 선생님은 교직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쪼개 이웃을 살펴 도움을 받아야할 사람을 찾아 돕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자선을 묵묵히 해오고 있다. 『오직 혼자만 느낄 수 있는 뿌듯한 보람에 작은 힘이지만 이웃을 돕고 있다』는 윤 선생님은 89년에는 이웃에 혼자사는 80세 할머니가 뺑소니 오토바이에 치여 의식을 잃고 인근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친자식처럼 정성껏 한달여를 돌봐 목숨을 건지게 했다.
같은해 혼자 몸으로 어린 자녀들과 옥수수 노점상을 하며 어렵게 살아가던 45세된 이웃사람의 얘기를 전해들은 윤 선생님은 그 자리서 달려가 성금을 전하고 위로했다.
그는 이웃을 돕는 일외에도 5년전부터는 은평천사원과 나환자촌에 매월 후원금을 보내고 있고 제자중에도 가정사정으로 윤 선생님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불우한 처지에 놓인 이웃이 너무나 많은 것에 놀라 이웃사랑실천에 나섰다』는 윤 선생님은 『아직도 온정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웃이 많은데 힘이 못미친다』며 안타까워했다.
윤씨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신에게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과 두자녀에게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며 『서울시민대상 수상을 이웃사랑실천에 대한 채찍질로 알고 앞으로도 힘닿는대로 불이웃과 함께 더욱 열심히 살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박원식기자>박원식기자>
◎특별상/고 김홍기씨/과학기술 장학기금으로 110억 쾌척
고인으로 올해 서울시민대상 특별상 수상자가 된 홍산 김홍기씨(향년 71세)는 지난 2월 간암으로 타계하면서 유언으로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장학기금으로 써달라』며 현금 10억원,채권 30억원,70억원 상당의 부동산 등 모두 1백10억원을 쾌척한 자랑스런 서울시민이었다.
1921년 함남 원산에서 태어난 김씨는 만주 신경공업 시립학교를 졸업하고 1·4 후퇴때 단신 월남,자수성가한 사업인이다.
부두막노동·연탄배달 등을 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어렵게 모은 돈으로 60년대초 플라스틱공장인 유신화학을 창업한 이후 건축자재·특수인쇄·무역 등 분야에 7개 기업을 이끌었다.
김씨는 회사를 경영하는 동안 인쇄기 등 필요한 기계를 일본 등에서 도입하면서 「과학기술만이 우리나라가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진리를 터득했고 이 깨달음을 마지막으로 실천한 것. 김씨는 생전에도 틈틈이 강원·충남 등 벽지국교에 과학기자재·VTR 등을 기증했고 서울대에 간암치료연구에 써달라고 8천만원을 기탁해왔다.
지난 80년대에는 성실한 기업경영으로 재무부장관 표창 등 3개 표창장을 받기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엄순녀씨(64)와 2남2녀가 있으나 기업경영은 친·인척을 일체 배제하고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유지에 따라 장남 상우씨(34)만이 칠보물산 이사로 재직중이다.
상우씨는 선친의 뜻을 받들어 「홍산 장학재단」을 설립,앞으로 연간 7억∼8억원의 장학금을 실업계고·과학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지급할 계획이다.<곽영승기자>곽영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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