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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홀가분할까/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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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홀가분할까/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2.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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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당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결심한뒤,대통령은 나라 밖에 체재중이던 야당 총재에게 『나는 이제 여도 야도 아니다. 홀가분하다』고 전화를 했더라고 한다. 다음날 그는 3번째 유엔 연설을 위해 훌쩍 출국하면서,다시 한번 홀가분하다는 말을 했다. 충격을 받았을 여당 대표 역시 차라리 홀가분하다고 했다. 공항까지 전송나온 야당 대표들이 홀가분한 승리감을 맛보았을 것은 틀림이 없다.모두가 홀가분한 세상 같다.

그러나 정작의 국민 감정은 어떨까. 그들도 홀가분할까.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지를 못하다. 이른다. 「9·18단안」이 있은뒤에 오히려 세상 걱정하는 말을 더 자주 듣는다.

왜 그럴까.

만사가 더욱 불투명,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중립내각과 탈당이라는 두 겹 결심의 속뜻과 경위가 모호하다. 그 느닷없음에 비추어서는 그 결심이 무슨 성산이 있어서 나온 것 같지도 않다.

이런 「특단의 조치」가 대통령제·정당정치에 합당한 것이냐는 접어 두더라도,그 중립내각이란 것이 무엇인지,어떻게 구성한다는 것인지,그 구성 자체가 가능할 것인지조차 분명치가 않다. 총리 한 사람,장관 몇사람을 바꾼다고 해서 공명선거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면,이 중립내각의 실효 또한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런 내각을 책임지겠다고 나설 사람,더구나 3당이 합의할만한 총리감이 어디 있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그래서,우여곡절 끝에,대통령이 중립내각을 지명하게 된다면,그야말로 도루묵이다. 그 틈에서 대통령의 권위와 권력기반이 무녀져 내린다. 중심이 사라진 정치판은 노골적인 정략과 정쟁이 판을 친다. 3·24 관권선거 시비,단체장 선거 등의 문제가 되살아 나온다. 남은 것은 일과성 충격의 뒷맛뿐이다. 이 뒤의 대선은 어떤 꼴로 전개가 될 것인가.

이 물음 앞의 국민들은 홀가분할 수가 없다. 지금 형편이 불분명하고 앞으로의 전망이 불투명해서,국민들의 불만이 더해가는 것이다.

물론 세상 돌아감새를 이토록 비관적으로만 볼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의 우울한 전망은 현실성이 있다. 「9·18단안」이후 1주사이,3당 사이에 벌어진 두서없는 교섭이 그런 전망을 더 어둡게 한다. 대통령의 태도도 3당이 잘해 보라는 것 이상 분명한 것이 없다.

그래서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그려보게 된다. 시나리오의 원본은 몇달전 민자당이 벌였던 대통령 후보의 자유경선극이다. 당총재인 대통령의 중립선언과 중립적인 당선거 기구를 뼈대로 했던 그 자유경선은,처음부터 끝까지 「노심」 탐색으로 시종하다가,끝내 「노심」은 속다르고 겉다르다는 비난과 함께 파투가 났다.

이 선례를 지금 상황에 대입하면 어떤가. 당분간은 「노심」 탐색이 계속되고,「9·18을 칭송하는 소리도 들리겠지만,그 뒤에는 더 요란한 파투가 온다. 더구나 이 경우의 파투는 대통려의 임기말 권력누수를 권력공백으로까지 증폭시킬 수가 있다. 이 시나리오를 최악이라고 하는 까닭이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9·18단안」은 정답이 아니다. 대통령의 국정파악력을 더욱 강화해야 할 판국에,대통령이 홀가분한 자리로 물러나는듯한 모양새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의 정답은 무엇인가.

그 요체는 정말 「단안」을 내리는 것이다. 그것도 정치판을 향한 「단넘」이 아니라 국민을 향한 「단안」이어야 한다. 「단안」을 위해서 국민의 뜻을 살피고,국민을 참여시커야 한다.

그런 「단안」의 첫째는 지자단체장 선거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국민이 납득하지 않는한,장선거 실시의 방편을 찾아야 한다.

다음,중립내각을 할 것이면 그 실효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중립내각의 성격을 먼저 확고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생각컨대 중립내각은 선거관리 내각이 아닌 선거 개혁내각이라야 옳다. 총리 한 사람,장관 몇 사람의 인격만으로는 관권전체의 중립확보가 안될 것이므로,관권중립 등 공명선거를 위한 제도개혁을 이들에게 맡겨야 하리란 것이다.

이 경우 중립내각은 정치판보다는 학계 시민대표 등 폭넓은 여론을 주축으로 한 개혁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기회에 국민이 참여하는 개혁위를 상설해도 좋을 것이다. 정략을 떠난 선거제도가 아쉽기 때문이다.

이렇게해서 마련한 개혁의 안목은 여럿이겠으나 다음 3가지는 꼭 있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선관위의 권능과 능력을 강화하며 그 중립성을 더욱 보장하는 것이다.

다음은 내부고발자,이른바 「호루라기 부는 사람」(whistle blower)을 보호하는 입법이다. 이것이 관권선거의 제동장치로 유효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선거 사무에 대한 간섭,선거에 관한 허위고발·허위 사실 유포로부터 관계 공무원을 보호하는 장치도 있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할 일은 이런 개혁이 가능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그 다음 선거관리는 중립내각이 있든 없든,그 최종 책임이 대통령에게 귀속됨에는 변함이 없다.

이쯤의 결의가 있고,이쯤의 일만 할 수가 있다면,대통령만이 아닌,모든 사람이 홀가분할 수가 있다. 탈당이나 중립내각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다. 공연히 내각 총사퇴요구 등의 수모를 당할 것도 없고,대통령이 몸을 빼쳤다는 푸념을 들을 까닭도 없는 것이다.<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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