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공부해도 졸업” 기류/교수부터 잦은 휴강·눈가림 수업 지양/학생도 “강의 안받고 학점” 생각버려야/졸업반 취업위한 「출석·성적 봐주기」 관행도 자제를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를 지탱해주는 것은 높은 교육열과 대학이 배출해내는 우수한 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서 배출하는 고급인력의 질이 높을수록 국가발전은 가속화될 수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교육기관인 대학은 이같은 소임을 다하고 있으며 구성원인 교수와 학생들도 그들의 책무를 온전히 수행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우리나라 대학의 교수·학습체계와 학생들의 전공관련 학습량이 외국의 유수한 대학에 비해 어떠한지를 비교해보면 자연히 나온다.
먼저 원로교수의 푸념부터 들어보자.
『대학의 휴강이 다반사로 너무 잦다. 교내 행사로 빠지고 학생들이 졸라 쉬고 교수들의 국내외 세미나 참석 등 출장으로 휴강하기 일쑤이다. 학기초의 한주는 교재준비 등으로 어물어물 없어지고 축제와 체육대회 등을 하느라 한주가 그냥 지나가는가 하면 덥다,춥다해서 학기말 한두주를 두루뭉실하게 넘긴다. 실습이나 여행간다해서 또 빠지고 공휴일 사이에 끼여있는 날은 샌드위치데이라 해서 쉰다. 이렇게 하다보면 학기당 법정 이수기간 16주를 제대로 채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국내 20개 대학을 표본으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대만 등 6개국 대학과 비교한 「대학생 학습량 국제비교」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교수중 법정 수업일수를 모두 채운 경우는 1학기에 23%,2학기에 13%에 불과했다.
개강초와 학기중 틈틈이 대학게시판에 「○○교수 강좌는 △△사정으로 휴강합니다」라는 휴강 안내문이 붙으면 대부분 학생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놀고 먹어도 후한 학점」 풍토는 대학사회에서 어제 오늘의 현상은 아니지만 80년대들어 각 대학의 입학정원이 급격히 늘고 대학생들이 고액과외 등으로 「한눈」을 파는 사이 급속도로 만연되기 시작했다.
대학생들의 수강신청 양태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대학생활을 쉽게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다.
명문대 경영학과 졸업반인 이모군(22)은 자신의 학점관리 요령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수강신청을 하기전에 선배나 친구들을 통해 어느 교수가 출석을 잘 부르지 않고 과제물을 적게 내주는지는 알아본다. 출석을 부를 수도 없고 시험도 기말에 한차례만 보는 대형강의는 당연히 1순위다. 6개 과목중 2∼3개 과목을 이러한 요령으로 택하면 한학기 보내기는 누워서 떡먹기다. 리포트는 두세명것을 빌려 조합해 베끼기만 하면 되고 시험전에 평소 필기를 꼼꼼하게 해둔 친구의 노트를 빌려 복사해서 공부하면 어김없이 A학점을 받을 수 있다』
S대 P교수 강의는 2시간 연강 등 주당 3시간으로 잡혀있으나 실제로는 주당 1백20분 정도만 강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시험은 기말에 한번만 치르고 있어 매학기 1천명 이상의 수강생들로 강의실이 초만원이 된다.
Y대 H교수는 워낙 학점이 후해 수강신청만 해놓으면 A학점은 따논 당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대 문과의 경우 교양과목 시험문제가 해마다 거의 비슷하게 출제되고 있어 다른 강좌에 비해 수강생들이 몰리고 있으며 시험때가 되면 선배들로부터 출제가 예상되는 「족보」를 입수하느라 여념이 없다.
서울대·서강대 등 명문대 주변에서도 영문 불문 독문학과생들의 원서교재를 우리말로 번역한 「언해본」과 교양영어 교재의 국문번역판을 쉽게 구할 수 있어 많은 학생들이 정규 교재는 거들떠 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일부 학생들은 시험때만 되면 힘 안들이고 커닝으로 좋은 성적으로 받으려 한다. 연세대 대학신문인 연세춘추사가 지난 21일 재학생 6백3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결과 응답자의 65%가 커닝을 해보았다고 했으며 「자주한다」는 학생도 15%나 됐다.
대형강의 시험시간에는 조교의 눈을 피해 모범답안을 돌리거나 미리 강의실 벽이나 책상 등에 커닝용 암기사항을 깨알같이 적어 놓기도 한다.
학생들의 이같은 편법도 문제지만 일부 교수들의 소신부족과 인기만을 노려 강의를 소홀히 하는 경향도 대학사회의 폐단으로 지적받고 있다.
실력이 없는 교수일수록 후한 학점으로 인기를 꾸려나가기도 하고 기회있을 때마다 선심 휴강으로 학생들에게 영합하려 한다. 강의 계획서 조차 내지 않거나 이를 무시하고 강의하기 일쑤다.
학생들이 교수들의 강의수준을 따라가지 못해 강의의 질이 떨어지고 학점평가의 엄격이 흐트러지는 경우도 있다.
S여대 강사 이모씨(35)는 『강의를 맡은 초기엔 의욕을 가지고 새로운 이론 등을 열정적으로 강의했지만 학생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아 지금의 강의수준을 개론차원으로 낮췄다』면서 『이론을 현실에 적용시키거나 다양한 이론을 종합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출하는 시도는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점 인플레현상은 최근 가중되고 있는 취업난과 맞물려 더욱 심화되고 있다. 졸업반 학생들에게 특히 학점이 후하고 잦은 결석은 물론 대리시험까지도 어느정도 묵인되고 있다.
부산 D대학 강모교수는 『대다수 학생들이 취직난에 시달리고 있는 마당에 학점마저 박하게 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개중에는 은근히 좋은 학점을 요구하거나 협박성 언행을 하는 학생도 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10월 모기업체에 취직한 S양(24·S대졸)은 『졸업전에 취직이 되는 바람에 더 이상의 학점관리가 필요없을 것 같아 마지막 기말고사는 친구에게 대리시험을 부탁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대학학점에 대한 신뢰도는 국내외에서 모두 떨어져 있다. 웬만한 기업체의 인사담당자들은 학점이 후한 특정대학의 몇몇 학과를 꼽고 있을 정도이다. 외국의 명문대학들도 한국 유학생들의 학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으려 한다. 평점 평균에 마이너스 0.5∼1.5 정도로 계산해 평가한다는 것이다.
숭실대 김홍진교수(독문학)는 『대학에서 교양 및 전인교육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취업을 위한 직업교육만을 주입시키고 있는 현실은 하루빨리 바로잡아져야 한다』고 지적,『공부하는 대학을 만들려면 학생과 교수 모두에게 학문의 열정을 부추기는 적절한 동기부여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대 박영근교수(불문학)는 『입시위주의 교육에 신물이 나서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에게 학문을 연구하는 자세와 지적 욕구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며 『교육전반에 걸친 정상화와 함께 대학의 커리큘럼을 다양화하는 등 일대 개혁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대학생/대학교육협 공부량 조사/과목별 개인학습 주당 1∼4시간/참고문헌 활용 한학기에 평균 3권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48.6%는 1개 강좌를 위해 주당 1∼2시간,22.6%는 3∼4시간을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49.2%가 주당 5시간 이상을 투입하고 있는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 외국의 대학생들과 큰 대조를 보이고 있다.
한 강좌에 대한 최대 학습시간도 한국의 경우 주당 평균 4.23시간으로 추산된 반면 외국대학은 주당 평균 7.6시간이나 돼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얼마나 공부를 하지 않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지난 89년초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한 「대학의 교수·학습체제 분석과 학습량 적정화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아 관심을 모았었다. 대학 관계자들은 지금의 상황이 그 당시보다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어 대학인 모두의 자기 성찰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조사결과 한국대학생들은 교재와 노트에만 의존해 학습하거나(30.2%),시험때만 소나기식 학습(44.0%),시험문제 위주의 암기학습(6.4%)을 하는 편이나 외국대학생들은 각종 참고문헌 등을 활용해서 학습하는 경우가 67.7%가 됐다. 한국학생들의 40%가 주당 2시간이하 학습하고 있는 반면 외국은 2시간 이하가 3%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74%가 한 강좌를 위해 한학기에 평균 2.92권의 교재이외의 도서를 보고 있는데 비해 외국에서는 10권이상의 관련도서를 활용하는 경우가 32%에 달했으며 최대 독서량은 평균 5.59권과 9.84권으로 비교가 되지 않았다.
외국대학에서는 32.4%가 강좌당 5편이상의 리포트 제출을 요구한 반면 한국은 9.1%에 머물렀다.
외국의 경우 대부분의 리포트는 교수들의 검토와 논평을 거쳐 해당 학생들에게 되돌려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85% 이상이 그렇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과제물 처리에 대한 배려가 아쉬운 것으로 지적됐다.
주당 2.53회 꼴로 도서관을 찾는 한국대학생의 대부분은 「학습할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도서관을 이용한다.
그러나 주당 평균 3.9회 도서관을 이용하는 외국대학생들은 95% 이상이 「전공과 관련된 학습자료를 구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대학생들의 47%만이 도서관에서 전공관련 도서를 학기당 1∼4권 대출받아 학습하는 것이 고작이나 외국에서는 72.3%가 무려 11권 이상을 빌려보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조사팀은 우리나라의 교수·학습방법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대학,교수,학생들이 공동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사팀은 학문분야별로 적절한 교수 학습방법을 연구개발할 수 있도록 정부의 재정투자가 확대돼야 하며 교수들도 백묵과 목청에만 의지하는 교수방법에서 탈피,다양한 교육 공학적 매체이용을 서두를 것을 촉구했다.
조사팀은 이와 함께 각 대학이 교수·학습방법 개선을 위한 위원회를 설치,학점관리를 철저히 하고 학생들의 학습량 증대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유승우·김현수·장현규·남대희·이성철·김병주·이진동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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