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노태우대통령의 민자당 탈당선언으로 한동안 활로를 찾는듯하던 정국이 다시 혼미상태에 빠지고 있는듯한 인상이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실시 연기시비로 꼼짝달싹 못하던 상황에 비하면 큰 매듭은 풀린 셈이지만 해결방안으로 던져진 중립내각을 놓고 거듭 여야가 대립양상을 보이자 국민들은 다시 불안감으로 어리둥절하고 있다.현직 대통령이 임기중에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되어왔던 여당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전례없는 일이고,집권 여당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초당 중립인사로 내각을 새로 구성하겠다는 것 또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희귀한 일이라 이를 구체화하는데 잡음이 생기고 다소 혼란이 일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했었다.
그러나 지금 돌아가는 양상을 보면 문제가 간단치 않은 것 같다. 중립내각을 탄생시킬 모체에서부터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야당은 노 대통령에 3당 대표가 참여하는 4자회담에서 내각구성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노 대통령은 3당 대표의 의견조정이 선행된뒤 초연한 입장에서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립내각의 성격과 개각폭에 대해서도 여야간의 의견이 다르다. 야당은 청장들까지 갈아치우는 개각이 아닌 새로운 조각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김대중 민주당 대표는 현 내각의 총사퇴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당은 선거관련 분야만의 일부 개각만 얘기하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이견만해도 간단히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거기에 앞으로 나올만한 견해차도 적지않다.
여당이 내세우는 3자회담이나 야당이 요구하는 4자회담에서 인선기준이나 원칙 등 윤곽만 결정할 것인지 아니면 어느 부처장관엔 누구하는 식으로 아예 사실상의 임명절차까지 끝내버릴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직은 논의가 없지만 앞으로 이견의 소지가 많은 대목이다. 사실 개각의 기준과 윤곽이 합의된다 하더라도 구체적인 인선작업 과정에서 각 정파의 임명권자간에 벌어질 마찰은 매우 클 것 같다.
중립내각으로 가는 길이 그만큼 험하고 멀 것이라는 예상이다. 때마침 임명권자인 노 대통령이 자신의 탈당과 중립내각안을 제시한뒤 유엔으로 중국으로 연쇄 순방길에 나서고 있어 진통이 더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일이 복잡하고 어렵다고 생각될수록 우리는 언제나 원칙론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노 대통령의 중립내각안은 연기선거 후유증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연기시비에서 비롯된 관권선거를 사전 예방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볼때 지금 논의되고 있는 중립내각의 성격은 앞으로 있을 대통령선거의 공정성을 보장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현 내각의 총사퇴와 아울러 국세청장까지 갈아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은 대여 정치공세는 될지 모르나 현실적으로 무리가 많다. 안정된 국정운영속에서 공정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다. 그것은 대통령선거가 끝나 정권이 바뀔 때에나 나올 수 있는 조치이다. 중립내각의 성격을 너무 확대해석해서는 안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