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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국회의 공전/이재승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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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국회의 공전/이재승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2.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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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공전이 장기화되고 있다. 14대 국회는 개원된지 4개월이 지나도 원구성을 못하더니 첫번째 맞은 정기국회도 14일 개점 즉시 휴업상태로 들어갔다. 민자·민주·국민 등 3당은 정기국회 의사일정에 합의를 보지 못했다. 민주당은 『지방자치단체장선거 연내실시에 대한 확답이 없으면 원구성과 의사일정 협의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했고 민자당은 그들대로 「장선거」와 국회정상화의 연계에 대해 단절을 계속 요구했다. 국민당은 장선거와 국회정상화와의 분리원칙을 주장,민주당과의 차이를 나타냈다. 민주당측은 한준수 전 연기군수의 폭로에서 나타난 「관권선거」에 대한 납득할만한 조치를 국회정상화의 조건에 추가하고 있는 것 같다. 민주당이 요구하는 것은 ▲4·24총선 당시 관계 책임자의 문책과 사법조치 ▲노태우대통령 및 김영삼총재의 사과라는 것. 정부·여당은 어느것 하나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한씨사건 처리문제를 놓고 김 총재는 강도있는 수습책을 요구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민주당의 김대중후보는 12월 대선을 겨냥,이 양이슈에서 정책적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시도하고 있고 반면에 민자당의 김영삼후보는 정략적 손실을 극소화하려는데 진력하고 있다. 국민당의 정주영후보는 「국회정상화」의 독자노선으로 온건·합리화의 부각을 의도하고 있는 것 같다. 정당은 집권을 목적으로하는 집단이므로 쟁점의 정략화는 본능적인 속성이라 하겠다. 그러나 집권의 당리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나라와 국민의 이익이 희생될 수 있다. 우리는 먼 과거뿐 아니라 최근 과거에서도 이러한 사례를 적지않게 봐왔다.14대 국회에 대해서는 정치상황의 변화로 과거 어느때보다 큰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우리의 의정도 개혁과 변화를 보여줘야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14대 국회가 출발부터 보이고 있는 파행에 대해서 실망치 않을 수 없다. 국회가 지금까지 종종 정쟁의 속죄양이나 담보가 돼왔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아래에서 수적으로 절대열세인 야당이 여당의 압도적인 우위에 대항하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행사해온 배수의 저항수단이었다. 국민 대다수는 이해하고 양해했다. 이제는 정치기상이 바뀌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나마 민주정치가 착근해가고 있다. 공작정치가 살아있기는 하나 위세는 옛날과 비할바 아니다. 의정의 정상화와 발전에 힘을 쏟아볼만한때가 왔다. 정치는 아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낙후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치인에게만 책임있는 것이 아니다. 유권자에게도 문제가 있다. 제일 큰 책임은 우리의 정치사와 정치문화에 있다.

정치의 선진화가 뭣인가를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민주주의의 양대 정치체제인 대통령 중심제와 의원내각제의 원조라 할수 있는 미국과 영국의 정치도 기능면에서는 이상적이 아니다. 그러나 의회의 회기 그 자체를 정쟁의 수단으로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미·영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적어도 민주주의 정치아래에서는 의회의 최대 힘은 아마 예산심의 결정권과 결산감독권이다. 미 의회의 경우 1년내내 예산심의를 하고 이를 통해 행정부에 대해 안보,외교에서부터 경제,마약문제에 이르기까지 넓고 깊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우리나라의 정기국회는 사실상 예산국회다. 지금까지 우리 국회는 여·야가 정치적 쟁점에만 주력하고 정작 예산은 뒷전으로 미루어놓다가 회기말에 가서 근로소득세 면제점를 다소 인상해놓고는 황급히 통과시키는 것이 관행이었다. 선진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부실심의」다. 그나마 올해는 대선으로 회기 1백일이 사실상 60일로 단축되게 돼 있다. 예산은 법적으로 적어도 11월말까지는 통과시켜주게 돼 있다. 또한 민생 등과 관련된 상당수의 법도 승인해줘야 한다. 오늘날은 경제시대라 한다. 국회가 예산심의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인식했으면 인식한대로 행동화해 줬으면 한다.

예산심의와 정쟁을 병행할 수가 있을 것이다. 국회의 공전이 멎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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