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나라 어느 시대에도 정치 지도자들은 마음을 비웠다는 말을 자주한다. 자신의 개인적 욕심뿐 아니라 정치적 욕망까지도 나라의 장래와 민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버리겠다고 외친다.그러나 역사상의 몇몇 위대한 정치가를 제외하면 이같은 의욕이나 약속은 현실정치에 부딪치면서 대개 구두선,더 나아가 위선으로 변질되고 만다.
지난 13일 총선실시와 함께 물러난 아난 판아랴 춘 태국 전 총리는 지난 60여년간 쿠데타로 얼룩진 태국정치에 민주화의 씨앗을 틔우는 어려운 일을 해내고 조용히 물러나 마음을 비운 정치인이라는 평을 듣는다.
지난해 2월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사 정권이 「얼굴총리」로 임명했던 순수기업인 출신의 아난은 자신을 등용한 막강한 군부세력을 정치무대에서 밀어내는 「선거혁명」의 사실상 최대 공로자이다.
그는 비록 군부에 의해 임명되었지만 옳고 그름을 가리는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합리를 추구했다. 그 같은 자세가 높이 평가돼 지난 3월 총선실시후 물러났던 아난은 5월의 유혈민주화 시위와 수친다 총리의 퇴진으로 야기된 정국 공백을 메우는 과도내각 수반이 되었다. 그는 과감하게,때로는 설득을 통해 유혈사태를 야기한 군부실세를 무리없이 한직으로 보내는 힘겨운 작업을 수행했다.
지난주 정치군인으로 지목된 일선 지휘관들을 대거교체하고 태국 항공을 공군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하는 등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에 대한 국민들의 인기는 상당히 높다. 총선에 출마했다면 총리 자리도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치에는 소질이 없다』면서 이제 총리가 되기전에 일하던 기업으로 돌아갔다.
총선투표장에서 한표를 던지는 그의 주변에는 아무런 화려함이 없이,한 아주머니와 나누는 환담속의 너털웃음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에 대해서 이미 국내외적으로 『태국정치사에 가장 존경할만한 총리로 기록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아난 자신은 『나를 잊어주기를 바란다』고 겸손해한다.
사심없이 소신껏 일하고 난뒤 최고 정치지도자 자리를 마다하고 떠날줄 아는 겸손한 정치인,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멋진 정치인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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