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보상등 요구 논란/“단순 접촉에도 처벌 억울한 희생”/“암울한 과거일뿐” 정치권은 냉담【베를린=강병태특파원】 50∼60년대 서독의 완고한 반공법에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좌익주의자들이 통일후 복권과 손해보상을 요구하고 나서 논란을 벌이고 있다.
서독이 동서냉전이 전초기지로 치닫던 지난 51년 서독의회는 공산주의자들의 체제전복 활동 봉쇄를 목적으로한 제1차 형법수정 법률을 서둘러 제정했다. 「정치형법」으로 불리는 37개 조항으로 된 이 특별법은 우리의 반공법과 같은 성격이다. 당시에도 이 법은 법조문 자체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아 자의적 적용소지가 많았고,『냉전승리를 위한 무기』라 비판돼 결국 68년 전면 개정됐다.
이 법률에 따라 15만여명이 국가 위해혐의로 수사대상이 됐고,수천명이 처벌을 받았다. 후일 슈미트 사민당 정부에서 내무장관을 지낸 헌법학자 마이호퍼는 당시 상황을 『경찰국가나 다름 없었다』고 규정했다. 정치사찰 경찰과 사법기구가 실제 체제위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수십만명의 국민들의 사생활과 직업적 경력을 침탈했다는 비판이다.
이 법률시행 당시 동독과 단순히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혐의를 받았다. 교회 문화 스포츠 교류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동독 공산당원과 감자값 얘기를 나눴다는 이유만으로 국가 기밀누설 혐의를 받는 경우마저 있었다.
특히 반나치 활동으로 박해를 받았던 골수공산주의자들은 전쟁직후 「나치피해자」로 연금혜택 등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으면서도 가장 심한 감시의 대상이 됐고,공산주의자란 이유만으로 처벌받았다.
그러난 최초의 사민당 출신 연방대통령(69년∼70년) 구스타프 하이네만은 59년 『공산주의자뿐만 아니라,공산당 근처에 가지 않은 사람들까지 피해가 확돼될 것』이라고 경고했었고,이는 그대로 현실로 나타났었다.
엘프리데 카우츠(84·여)는 54년부터 「즐거운 어린이 여행모임」이란 단체에서 일했다. 이 단체는 동서독 정부의 협조아래 서독 어린이들을 위한 2주일간의 동독 수학여행을 조직했다. 서독 연방 철도가 특별열차를 제공하고 동독측은 체재비용을 부담한 이 수학여행은 거의 무료여서 호응이 높아 매년 수천명의 어린이들이 참가했다.
그러나 61년 7월 서독정부는 이 단체를 「헌법 위해단체」 즉,반국가단체로 규정해 불법화하고 카우츠 여인 등을 간첩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검찰이 내세운 혐의의 내용은 『동독여행 어린이들의 인적사항을 동독정부에 알려주었다』는 것이었다. 이들에 대한 기소장에는 『동서독 어린이들간에 우표교환을 주선한 것은 어린이들의 우표에 대한 관심을 이용,서독 어린이들에게 정치적 이념침투를 기도한 것』』이란 내용도 있다.
결국 카우츠 여인은 유죄를 선고받고 1년간 복역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난해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을 규합,복권요구 운동에 나섰다.
이 복권요구에는 단지 공산주의자란 이유만으로 형사처벌 등 불이익을 당한 이들이 대거 가담하고 있다. 이중 나치치하에서 「반역활동」으로 15년간 복역했던 쿠르트 바움가르테(80)는 66년 「헌법위해 목적의 비밀단체 조직」 혐의로 2년형을 받고 복역했다. 그는 이 때문에 「나치피해자」 연금헤택을 박탈 당했다.
역시 공산주의자인 제프마이어(64)는 공산당 금지령 위반 및 반역 예비음모 혐의로 구속돼 2년4개월간 재판을 받다가 68년 정치형법 개정으로 면소처분을 받았다. 그는 이 구속기간이 연금산정에 포함되지 않아 받고 있는 손해의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구동독 공산당의 후신 민사당(PDS)을 제외한 정치 세력들은 이들의 복권요구에 냉담하거나 소극적이다. 우파기민당은 『이들의 요구자체가 법치국가 질서에 대한 도전』이라고 반박했다. 좌파사민당(SPD)은 『50년대의 정치적 형법은 독일사법의 어두운 부분』이라고 논평했을뿐,지원자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따라 지난 7월 민사당이 발의,이달말 의회에서 심의할 예정인 「정치형법희생자 복권에 관한 법률」이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포세르 전 장관 등 정치형법 전문가들은 『사법부와 의회가 모두 과거의 과오를 인정하는 사상적 독립이 필요하다』며 진정한 냉전청산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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