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4도 문제 둘러싸고/「엔화외교」·「러 자존심」 충돌/일 정부 큰 타격·러시아도 신용 추락/양국 냉각관계속 “일 적극 경원” 전망【동경=이상호특파원】 「옐친 쇼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일방적 방일 연기는 엔화를 앞세운 무조건 밀어붙이기식 일본 외교와 소련연방 해체후 새롭게 대두되는 러시아 민족주의가 충돌한 결과다.
일본정부는 소련연방 해체후 시장경제로 전환을 모색하며 경제적 시련을 겪고 있는 현재의 러시아 정부를 상대하는 것이 북방4도 반환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적절한 때,적절한 협상파트너를 맞았다는 판단이었다.
유일한 흑자대국 일본은 그동안 「정경불하분」 「확대균형」이란 원칙을 앞세워 엔화를 미끼로 외자에 목마른 러시아 정부를 몰아붙이며 옐친 대통령의 「영단」을 끌어낸다는 기본 전략이었다.
미야자와(궁택희일) 일본 총리는 지난 1월 뉴욕에서 옐친 대통령과 회담한 이후 이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지난 4∼5월 미야자와 총리는 영국과 독일을 방문,지원을 얻어냈으며 와타나베 외무장관은 모스크바로 날아가 경제지원을 앞세워 반환을 강하게 요구했다.
지난 7월의 선진 7개국(G7) 정상회담에서는 「정치선언」에 북방영토 문제를 삽입시키는데 성공했다. 옐친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는 병원에서 막 퇴원한 와타나베 외무장관이 다시 모스크바를 방문,옐친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이 문제의 사전조정을 시도했다.
일본정부가 이처럼 북방4도 문제에 집착하는 것은 정치대국화를 지향하는 일본에 가장 큰 걸림돌인 「전후청산」이 일왕의 방중과 북방영토문제의 해결로 완결될 수 있을 「역사적 과업」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강압적 태도는 러시아에는 「모욕」으로까지 느껴지면서 「대국의 자존심」을 건드린 결과를 가져왔다.
이번 방일 연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루츠코이 부대통령과 스코코프 안전보장회의 서기는 유명한 민족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북방4도 반환이 러시아 앞날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이 문제를 최대 정치문제화 했다.
이에따라 경제난 등으로 점차 그 기반이 취약해지고 있는 옐친 정권은 결국 방일로 기대되는 이점보다는 잃은 것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로 일본과 러시아가 모두 큰 타격을 입었고,양국 관계는 경색을 면치못할 것이다. 당분간 양국은 「감정 가라앉히기」에 주력하며 눈에 띄는 접촉은 피할 것으로 보인다.
방일연기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정계에는 러시아에 대한 불신과 실망감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으로서는 과격한 대응을 할 수 없다는데 딜레마가 있다. 러시아의 안정은 세계가 모두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오는 10월말 동경에서 열리는 구 소련 지원 국제회의에서 일본은 오히려 강력한 러시아 지원을 들고 나오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전망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내년 동경에서 개최되는 G7 정상회담에 러시아를 초청,「G7+1」 회담이 되기를 바라고 있으나 참석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역시 러시아라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국제적으로 신용도가 크게 떨어진 러시아도 당분간은 내정에 전념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오는 9월 하순부터는 최고회의가 시작된다.
이에따라 양국간 관계는 당분간 냉각기를 갖겠지만 일본정부가 입은 타격은 상당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일본정부의 강압적이고 융통성 없는 정책은 결국 대러시아 외교의 큰 좌절을 가져왔으며 이는 현 정권에도 국내외적으로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점차 확산되고 있는 사가와규빈(좌천급편) 스캔들에 경기침체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미야자와 정권으로서는 일왕의 방중과 함께 옐친 대통령의 방일로 돌파구를 찾겠다는 당초 계획이 무산돼 대안을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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