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 본격 영토분쟁 주변정세 긴장요인/러 대외정책 불안감… 경협증진에 장애러시아가 다음주중으로 예정됐던 옐친 대통령의 방일 및 방한 계획을 돌연 연기한 것은 그동안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돼오던 동북아질서 재편과정에 상당한 긴장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옐친 대통령의 방일 연기는 북방 4개섬 반환문제를 둘러싼 일·러 양국의 마찰과 러시아의 복잡한 국내 사정 때문이며 이와 맞물려 방한까지도 연기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일본은 그동안 북방 영토문제 해결과 대러 경협문제를 연계시킨 「정경 불가분의 원칙」을 고수해왔다. 즉 막대한 대러 경협을 대가로 북방영토 반환문제를 마무리짓는다는 정책이다.
일본의 이러한 정경연계전략은 옐친 대통령이 추진중인 러시아의 경제개혁에 일본의 경제협력이 불가피하다는 사정과 맞아 떨어지면서 최근 일·러 양국간 협상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전돼왔으며 이번 옐친 대통령의 방일에 커다란 기대가 모아졌던 것이 사실.
그러나 경협을 대가로 북방 영토문제를 매듭지으려던 일본정부의 계획은 러시아 군부 등 강경보수세력의 큰 반발에 부닥치게 되었고 결국 옐친 대통령의 방일 일정까지도 연기되는 사태를 빚게 됐다.
이번 옐친 대통령의 방일 연기가 북방영토를 둘러싼 일·러 양국의 단순한 신경전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번 방일 연기가 일·러 양국간 북방영토 마찰이 본격적인 분쟁단계로 접어드는 징조라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이같은 일·러 양국간 영토분쟁의 심화는 탈냉전이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긴장완화 및 평화정착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긴장요인이 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최근 한중수교에 이어 옐친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한·러 기본관계조약을 체결,동북아지역의 질서재편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한 기반구축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외무부 관계자들은 이번 옐친 대통령의 갑작스런 방한 연기결정에 당혹과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한·러 기본관계조약이 다분히 선언적·상징적 의미여서 체결이 늦어진다고해서 당장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또 시베리아 가스관사업 등은 아직 타당성 조사단계이고 실무선에서 어느정도 협의가 진행되고 있어 옐친 대통령의 방한 연기로 별다른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옐친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가속화될 수 있었던 양국간의 협력증진 방안이 상당기간 추진력을 얻지 못하게 된다는 점은 부인키 어렵게 됐다.
러시아측도 우리측 경협차관의 조속재개 등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는 부담을 안게 됐다.
옐친 대통령의 방한 연기로 우리측이 안게 될 가장 큰 부담은 러시아의 불안정한 대외정책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불안감이다. 정부는 구 소련에 30억달러의 경협자금을 제공키로 한 것에 대해 국민들로부터 「외교과소비」라는 따가운 질책을 받고 있는 실정이며 앞으로 대러시아 협력방안에 대해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내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와함께 일본방문과 관계없이 옐친 대통령의 한국 단독방문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함으로써 자주적인 외교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외무부 관계자들은 러시아측이 일본과 한국을 별개의 외교적 상대국이라는 점을 고려,한국 단독방문을 결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주변정세의 큰 변화가 없는한 옐친 대통령의 방한은 어렵지 않게 성사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옐친 대통령의 방한 일정이 다시 언제로 잡힐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옐친 대통령은 지난 9일밤 노태우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방한연기 통보를 하면서 『적절하고 가까운 시기에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밝힌데 이어 10일에도 또다시 전화로 조기 방한의사를 재확인했다.
이에 따라 양국 정부는 옐친 대통령의 연내 방한을 목표로 구체적인 일정협의에 들어갔다.
옐친 대통령은 또 자신의 방한시기에 지난 83년 사할린 상공서 격추된 KAL 007기 비행기록과 자료를 꼭 가져오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방한연기에 따른 부담을 다소나마 해소해 보려는 의도로 보인다.
옐친 대통령이 방한 연기 결정을 내린뒤 두차례에 걸쳐 노 대통령과 직접 전화통화를 통해 양해를 구하고 조기 방한의사를 거듭 확인한 것은 그간 한·러간에 구축된 신뢰관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한·러관계에 일·러 마찰의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의지로 평가된다.<이계성기자>이계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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