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제체제 가운데 낙후된 것이 하나,둘이 아니겠지만 제일 뒤처진 분야의 하나가 증시와 금융이라는데는 별로 이의가 없을 것이다. 증시(증권회사)와 금융(은행·단자·보험회사)은 글자 그대로 경제의 혈액으로 비유되는 돈(자금)의 공급원. 경제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이들 핵심기관들이 전 근대적인한 우리 경제가 매끈하게 돌아갈 것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증시건 금융권이건 현대화를 하자면 자율권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증시는 뭣보다 시장기능의 자율화에 최대의 역점을 둬야하고 금융권에는 금융의 자율화와 금리의 자유화가 실시돼야 한다. 이것은 정부,관련업계,재계,학계 등 모두가 다 아는 교과서적인 처방이다. 정부는 사실상 단계적으로 이를 추진해가고 있다. 문제는 현대화의 속도와 폭이다. 현재의 추진상황으로 봐서는 백년가청일 것 같다. 정부가 최근 단행한 8·24증시 부양책은 우니나라 증시·금융후진성의 또하나의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증시기 그 자체는 8·24조처이후 주가가 급등하다가 예상대로 물량이 집중포진하고 있는 종합주가지수 5백60선에서 다시 급락,급반 등의 기복을 나타냈다. 일단 조정을 거쳤다고 하겠다. 다시 종합주가지수 6백선을 향해 상승하리라는 관측이다. 증시에의 자금유입 측정치가 되는 고객예탁금도 1조1천억원 수준에서 1조7천억 수준으로 크게 늘었다. 지수 5백60선에서의 반락·반등은 주가의 상승기반을 다져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주가상승 국면에서의 바람직한 과정이라는 것이다.8·24조처는 현재로서는 일단 주가를 정부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하겠다. 그러나 8·24조처 자체가 인위적인 부양책이기 때문에 증시부양의 폭과 속도에 대해서 자신있는 예측이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재무부로서는 8·24조처에 따라 증시가 1차로 뜨고 난뒤에 「개미군단」이라는 일반 투자자와 큰손·중손들을 끌어들여 주가를 떠받쳐 증시를 착실한 상승궤도 위에 올려놓자는 것이다. 일반 투자자들의 회귀가 어느 수준인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눈에 띄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말하자면 8·24조처는 어떤 의미에서는 일반 투자자들을 증시로 몰려들게 하기 위한 「떡밥」이라 할 수 있다. 8·24조처는 강력한 부양책이다.
은행에 대해 신탁계정 수탁고 증가분의 25%(1조5천억원),보험회사에 대해 수지차익 20%(7천억원),연·기금에 대해서 여유자금의 10%이상(1조2천억원) 등 금융기관별로 주식투자 규모를 할당한 것은 한국과 같은 권위주의형 금융체제 아래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금융기관들에 대해서 매일 주식매입 금액이 매출금액보다 많도록 하게 했다. 소위 주식매입 수위 유지의무화다. 재무부는 실제로 매일같이 해당 금융기관의 주식매매 상황을 점검했다. 8·24조처 직후의 주가 수직상승 현상은 바로 이 독려의 힘에 크게 덕본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상 재무부가 주식매매에 직접 관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이런 직접 개입형의 부양책이 가져오는 폐단을 봤다. 재무부는 89년 12월12일 증시부양을 위해 대한투신 등 3개 투신사에 대해 주식매입 자금 무제한 재원책을 내놓았다. 주가의 하락을 막지도 못하채 3개 투신사는 약 3조원의 빚을 지게됐다.
투신사의 이에따른 채무는 5조원으로 불어나 자본잠식 등 부실화를 결과했고 정부는 세계잉여금,한은특융 등의 이례적 조처로 원리금 상환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12·12조처와 8·24조처는 시기가 다르다. 지금은 주가에 대한 바닥권의 인식이 공감대를 이루고 있고 경제도 안정화가 정착의 기미를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해도 정부의 직접적인 주가지지 개입은 증시의 시장 기능 그 자체를 왜곡시키고 잠재하고 있는 투기성향을 조장한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은 결제자금 지원등 간접부양으로 끝난다.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는 『주식시장에 대한 자의적인 조작으로 주가를 회복시키고 또 상승시키려는 시도는 한낱 미봉책에 불과하며 중·장기적으로 바람직스럽지 못하거나 무의미하다…』고 자매지 서울경제신문(6일자) 기고에서 경종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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