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운동가 가장 적화혁명 활동”/북 거물공작원 3차례 서울체류 「현지지도」/집뒤뜰 장독대 밑에서 미화 백만달러 발견▷직파간첩공작◁
안기부에 의하면 김낙중씨(57)에게 공작금 등을 건네주기 위해 모두 3차례나 북한의 거물급 공작원이 서울을 다녀갔고 3번 모두 서울에 전세방 등을 얻어 4∼5개월씩이나 장기체류했다.
맨처음으로는 90년 2월 북한 사회문화부소속 최모(35) 이모(27) 등 2명이 강화군 양도면 해안을 통해 잠입,김낙중씨와 최초로 접촉을 갖고 미화 30만달러를 전달했다.
90년 10월에는 북한공작지도책 임모가 1차 침투조였던 최모의 안내로 역시 강화를 통해 침입,김씨에게 『민중당 창당에 참여해 당권을 장악,합법정당을 통한 혁명사업을 추진하라』고 지시하고 미화 30만달러를 전달했다.
마지막으로는 91년 10월 하순 역시 공작책 임모와 이모 등 2명이 잠입,서울 관악구 봉천6동 산81 임모씨 소유 방 1칸을 보증금 2백만원 월세 12만원에 계약,활동하면서 미화 1백50달러와 권총 등을 김씨와 구속된 심금섭씨 등에게 전달했다.
▷공작금◁
김씨는 지난 90년 3월 및 11월 두차례에 걸쳐 남파된 공작원 「최모」 및 공작지도책 「임모」로부터 공작 활동비조로 미화 30만달러씩 모두 60만달러를 받았으며 지난해 12월에는 공작지도책 「임모」가 김씨의 하부책임 심금섭씨(63·구속)와 함께 강화군 양도면 돌곶이산에 설치한 「드보크」(장비은닉장소)에서 가져온 「민중당 후보 총선 지원자금」 미화 1백50만달러를 받았다.
김씨는 그중 1백10만달러를 남대문시장 등지의 암달러상을 통해 한화로 바꾼 뒤 민중당 서울 구로을 지구당위원장 이우재씨(52),동작갑 지구당위원장 장기표씨(47),인천 북을 지구당위원장 송경평씨(35),강원 태백 지구당위원장 배진씨(34) 등 14대 총선 당시 민중당 후보로 출마한 18명에게 모두 7천9백만원을 선거자금으로 제공했다.
김씨는 또 민중당 대변인 정태윤씨(38) 및 노동위원장 김문수씨(41) 등의 활동비,특별당비 및 김씨 자신의 전국구후보 등록비,「노문협」 의장 김영곤씨(41) 인천 노동상담소장,양재덕씨(44) 등의 활동비 등 자신의 공작비로 4천3백만원을 사용했으며 「평화통일연구회」 설립기금에 5천만원,자신의 하부책인 심금섭씨의 활동비로 7천만원을 지원했다.
김씨는 앞으로 자금지원이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 ▲사채놀이(1억2천만원) ▲은행예치(7천만원) ▲부동산 매입(3억3천8백만원) 등에 모두 5억3천만원을 투자했으며 미화 1백만달러를 자신의 집 뒤뜰에 있는 장독대 밑에 숨겨두었다 안기부에 압수됐다.
▷김낙중◁
경기 파주군 탄현면 법흥리에서 출생,서울중·고를 졸업한 뒤 53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김씨는 55년 6월25일 북한 당국자와 통일론에 관해 담판하기 위해 고향부근인 파주군 탄현면 오금리 앞 임진강을 넘어 월북했으나 북한 당국에 포섭돼 줄곧 간첩활동에 해왔다.
김씨는 56년 6월 송환형식으로 판문점을 통해 귀환,「김강천」이란 가명으로 근로대중주축의 지하조직결성과 동조자 입북을 추진했다.
57년 고려대 경제과 2학년으로 편입한 김씨는 지하조직인 「협진회」 등을 결성,사회주의사상을 보급하다 61년 8월 고대 후배 정금암씨(58·현 평화통일연구회 운영위원) 등을 월북시킨 혐의로 63년 검거돼 징역 3년6월을 복역했다.
김씨는 석방후 고대 노동문제연구소 사무국장으로 들어가 일해오다 73년 수배되자 서독을 통해 입북하려다 붙잡혀 징역 7년을 선고받고 80년 만기출소했다.
김씨는 80년 출소후 「굽이치는 임진강」 「민족통일을 위한 설계」 등의 책을 펴내는 등 통일운동을 가장한 간첩활동을 해왔다고 안기부는 밝혔다.
김씨는 특히 지난 88년과 90년 두차례 북경사회과학원 이상문교수를 통해 북한에 메시지를 전한후 90년 2월 자기 집으로 찾아온 북한공작원과 접촉,공작금 등을 건네받으면서 본격 활동을 해온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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