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땅에 민주헌정이 도입된후 근 50여차례의 대소각급 선거를 치러오는 동안 숱한 부정선거 수법이 등장했지만 가장 질이 나쁜 것은 관권개입이다. 관공무원의 선거간여는 공정한 분위기를 멍들게하고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사실 관이 선거에 개입하면 그 선거는 하나마나다. 축구경기에서 심판이 한쪽편을 들때 그게 어디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도 선진국을 뺨칠정도로 제도는 기막히게 되어있다. 국가 및 지방공무원법과 선거법 정당법 등에서 공무원의 정당가입 정치활동 선거운동을 엄금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선거만 치렀다하면 관권개입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참으로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이러니 민주화 민주정치가 제대로 되겠는가.
공무원 스스로가 선거에 관이 개입했다고 폭로한 첫 케이스는 박재표순경. 1956년 8월13일에 실시된 제2대 지방의원(도의원) 선거때 정읍군 소성면 투표함을 이송도중 관련 공무원들이 자유당 후보를 당선시키려 투표함을 뜯고 표를 바꿔치기 했다고 폭로한것. 당시 치안국장은 허위사실 유포죄로 박 순경을 구속했으나 나중 대법원 판결로 사실임이 드러났다. 한편 지난 63년 11월 6대 국회의원 선거때는 목표서 정보반장인 나승원경사,윤태원 파주군청직원,윤선홍 평택서 순경 등이 『여당후보를 당선시키라는 비밀지령을 받고 선거운동을 했다』고 잇달아 폭로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공무원이 대대적으로 선거에 관여하여 최악의 부정선거를 연출한 예는 3·15 정·부통령선거였다. 선거 1년전인 59년 3월19일 최인규가 교통장관에서 내무장관이 되면서 그의 탈법 파행 광란이 시작됐다. 국민들은 최의 취임사를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모든 공무원은 내년 선거에 이승만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게 가족들과 함께 대통령의 업적과 시책을 국민에게 선전하는 선거운동을 해야하며 이것이 싫다면 스스로 물러나야할 것이다. 과거 경찰관이 선거에 간섭했으나 앞으로는 못하게 할 것이다…』 그야말로 제멋대로였다.
그뒤 최는 전국기관을 돌며 이를 되풀이 했고 선거한달전 회견에서는 『이 대통령과 이기붕의장의 당선만이 나라와 민주주의를 구하는 길』이라고 억지를 부렸다. 3·15선거가 어떤 규모의 부정선거였는가는 긴설명이 필요없다. 선거가 아니라 관이 개입하고 주도한 전국적인 부정의 잔치였다. 최의 장담과는 반대로 나라도 이 박사도 민주주의도 모두 망치고만 것이다.
그로부터 32년,최근 14대 총선때 관권이 동원·개입했다는 한준수 전 연기군수의 폭로는 지극히 충격적이다.
여당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도지사가 거액의 돈을 보내고 군은 자체 자금까지 합쳐 각 마을에 살포했다는 것도,공무원들을 읍면동리에 파견했다는 것도,또 도지사가 보낸 선거지침서 등 15건의 문건 등은 놀랍기만 하다.
물론 조사를 해봐야 하겠지만 이에대한 여당과 검찰의 태도는 문제가 많다.
민자당이 처음의 『인사불만에 의한 조작극』 운운에서 나중 김영삼총재의 지시로 『철저한 조사』로 방침을 바꾼 것은 대여당다운 태도라고 볼 수 없다. 김 총재가 「도덕정치」 「깨끗한 정치」를 내건지가 바로 어제인만큼 떳떳한 대선을 위해서도 야당보다 먼저 『국회의 국정조사권을 발동해서라도 철저히 조사하여 진부와 책임을 가리자』고 했어야만 했다.
검찰의 당초 소극적인 자세는 국민을 답답하고 석연치 않게 하기에 충분했다. 선거사범에 대한 공소시한이 오는 23일인 것은 사실이지만 『시일이 짧다』는 타령만 했어야 하는가. 뒤늦게 여당의 「철저수사」 의지에 발맞추어 수사에 적극성을 보인 것은 다행이지만 이래가지고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겠는가.
검찰에 각별히 당부하고자 한다. 관련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소환조사하여 밤을 새워 수사한다면 「시일촉박」이 문제될 수 없다. 또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관의 선거간여를 차제에 끝장낸다는 자세로 관련자는 모두 엄정조치해야할 것이다. 그렇게해서 군정보사터 사건수사 등으로 검찰을 불신하고 또 사시하는 국민의 시각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한씨도 자신이 폭로한 것이 바르게 규명되고 그런 일이 재발되지 않게 하기위해서도 즉각 검찰에 출두하여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자신도 관권개입에 중요역할을 했다면 응분의 책임을 져야한다. 지금 국민은 정부여당과 검찰의 사건규명을 위한 실천의지를 지켜보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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