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권선거」 공감 바탕 대여 밀어부치기/협상력 배가 초첨… 국회정상화 덮어둬4일 열린 김대중 민주·정주영 국민당 대표의 회담은 종전의 양당대표회담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종전의 회담이 암중모색의 상황에서 야당간의 조율을 시도하거나 대화의 모양을 갖추는 자리였다면 이날 회담은 이미 표출된 두 야당의 명확한 입장을 재확인하고 이를 하나로 모음으로써 대여 협상력을 배가시키는 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
이날 공동발표된 합의내용이 예상수준을 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대표가 회담후 상당한 만족감을 표시한 것은 이같은 회담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
김 민주 대표는 회담직후 『모든 것이 잘돼서 만족한다』면서 『이로써 정기국회에 임하는 민주·국민 양당간의 공조체제가 확립됐다』고 회동결과를 긍정 평가했다.
정 국민 대표는 『서로 존중해서 회담에 임하니 얘기가 잘 되더라』면서 『의견차이가 하나도 없었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1시간 40여분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두대표가 도출해낸 합의의 주축은 단체장선거 연내 실시 관철로 요약된다. 오는 13일 3당 수뇌회담을 앞두고 김영삼 민자 총재에 결정적인 압력을 행사하겠다는 두 야당 대표의 의지가 쉽게 접합된 것이다.
지난달 임시굴회를 둘러싼 여야 대화과정에서 야당측의 신축적 태도에 불구,김 민자 총재의 완강한 반대입장에 따라 퇴색하는 듯했던 단체장선거 논의가 이날 회담에서 다시 힘을 얻게 된 것은 물론 한준수 전 연기군수의 관권선거 폭로로 인한 상황변화에서 기인한다.
야당측은 그동안 단체장선거 실시 필요성의 주된 근거로 제시했던 대선에서의 관권선거 가능성을 이번 폭로를 통해 사실로 확인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단체장선거 요구가 단순한 정치공세 차원을 넘어 대선 공정성 보장을 위한 현실적 전제조건임이 확인된 이상 여당측의 반대논리가 궁색해졌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단체장선거=관권선거 방지」라는 논리를 강하게 제기했던 민주당으로선 이번 한 전 군수 폭로를 단체장선거 국면의 결정적 반전계기로 판단,파상적 밑어붙이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김 민주 대표는 연기 관권선거 사건에 독자적인 공세를 펴가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국민당과의 공고한 연대를 유지함으로써 여권에 빠져나갈 틈새를 주지 않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듯하다. 김 민주 대표가 3당 수뇌회담 합의이후 정 대표측에 사전 양당 대표회담을 제의한 것 등은 이같은 포석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국민당측도 최근들어 단체장선거 관철에 부쩍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민당은 그동안 국회정상화 문제에 매달려 단체장선거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하는 것이 아니냐는 일부 지적에 펄쩍 뛰며 이를 강하게 부인해왔다.
정 대표 자신도 필리핀과 멕시코 방문을 통해 현지의 지방자치체를 거론하며 단체장선거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함으로써 이같은 입장을 과시해왔다.
따라서 이날 회담서 두 야당 대표가 단체장선거에 어느 때보다 무게를 실어 합의를 도출한 것은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연기 관권선거 폭로로 조성된 유리한 여건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점서 완벽한 이해의 일치를 본 셈이다.
두 대표는 그러나 13일 3당 수뇌회담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함으로써 이날의 합의가 국회정상화에 대한 「연대」까지를 담보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했다. 즉 김 민자 총재가 단체장선거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의 「행동지침」은 합의되지 않은 셈이다.
이에 대해 양당은 이날 의제 자체에 국회정상화 문제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현 단계에서 「총공세」이외의 다음 상황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두 대표는 이날 회담에서 여당이 단체장선거에 대한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경우 다시 회담을 갖고 국회정상화 문제를 논의키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두 대표는 단체장선거에 관한 이날의 회담결과가 13일 수뇌회담 이후의 어떠한 상황에서도 야당에 불리하지 않다는 인식을 공유한 것으로 관측된다. 즉 여당의 입장변화가 없을 경우에도 국회정상화 여부에 관계없이 대여관계를 주도적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듯하다.
이날 회담에서 연기 관권선거 폭로의 실질적 조사를 위한 합의가 나오지 않은 점도 주목할만하다. 이는 이번 사건을 초반부터 주도적으로 끌고온 민주당과 사건의 당사자격인 국민당의 이해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사소한 입장차이에도 불구,양당 대표의 이날 회담은 단체장선거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견고한 「야당공조」와 여야의 「1대 1 구도」가 불가피할 것임을 예고했다고 할 수 있다.<정광철기자>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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