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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까워진 2백만동포의 어제와 오늘(중국 조선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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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까워진 2백만동포의 어제와 오늘(중국 조선족:2)

입력
1992.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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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중 정체성/겉은 한족 속은 한민족 “줄타기 생활”/「텃세」에 능력있어도 “승진·사업 불익”/대화때 은연중 우리말대신 한어 사용/2세들 민족사교육도 한계… 일부 젊은이 “우린 중국인” 공공연히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92·7·26∼8·10)이 열리는 동안 중국동포들은 내내 즐거웠다. 중국이 금16 은22 동16개를 획득,세계 4위로 뛰어오르고 한국이 금12·은5·동12개로 7위,북한이 금4·동5개로 16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태어나고 자란 나라 중국의 쾌거를 한족과 함께 기뻐하고 남·북한의 분전을 조선족끼리 자랑스러워했다. 그들은 특히 한족이 금메달 자랑을 하면 『남·북한을 합해보라. 금메달숫자가 너희와 똑같다』고 기죽지 않으려 했고,『아무리 그래봐야 은메달 동메달은 중국이 더 많지 않느냐』고 계속 뻐기면 12억대 6천만이라는 인구차이를 지적,『너희들은 우리보다 못한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91년 5월 일본 동경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이 중국을 격파했을때 동포들은 오랜만에 조선족으로서의 벅찬 자부심과 감격을 느꼈다고 한다. 연변대의 한 여학생은 『너무나 기뻐 눈물이 났다. 그날밤 조선족친구들과 잘 마시지 못하는 술을 밤늦도록 마셨다. 남조선과 북조선이 힘을 합치면 우리는 그만큼 강해진다』고 말했다.

중국 조선족은 누구나 예외없이 자신들이 조선족임을 자랑스러워하며 민족의 경사가 있을때마다 어깨춤이 절로나는 신명을 간직하고 산다. 그들의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은 다른 어느 해외동포들보다 더 각별하다.

중국 조선족은 중국내의 어느 민족보다 민족적 특색을 잘 간직해온 사람들이다. 추석 설날 등 명절에는 줄다리기 그네뛰기 등 고유의 민속놀이를 즐기며 자전거를 탄 한복차림의 아낙네를 흔히 볼수 있을 만큼 전통에의 집착이 강하다. 특히 조선족은 노래와 춤을 즐기는 민족으로 통한다. 다른 민족과의 구별을 쉽게 해주는 이런 풍습과 전통은 민족의 동질성 유지에 기여해왔다.

12억 중국인구중 겨우 0.16%밖에 안되는 조선족의 언어가 한어 티베트­장족어,위구르어,몽고어와 함께 5종언어의 하나로 지정된 것만 보더라도 한족의 동화정책에 꿋꿋이 맞서온 조선족의 강인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알수 있다.

경주에서 태어나 일제탄압을 피해 11세때 부모와 함께 이주,용정시 조양촌에서 살고있는 오진택씨(62)는 『돈벌러 태평양을 건너간 재미동포와 일제탄압,배고픔때문에 고국을 떠나와 되돌아갈 꿈을 갖고 살아온 우리들의 민족심이 같을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민족의식에도 개인차는 분명히 있다. 1년전부터 북경에서 파견근무중인 연변의 조선족 공무원 이모씨(40)는 『나는 중국이 이겨도 좋고 한국이 이겨도 기분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남북한이 통일돼야만 조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한국에 친금감이 쏠리기를 삼가는 이씨는 태어나고 자란 중국을 조국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런 갈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중국 조선족은 우리와 한 핏줄이면서도 엄연히 중국국민이다. 그들의 의식에는 조선족으로서의 민족의식과 중국국민으로서의 국민의식이 혼재하며 이같은 2중정체성으로 혼란이나 고통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많다.

중국 조선족중 3·4대치고 우리말을 한어만큼 능숙하게 하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한글을 읽고 자연스럽게 쓸줄 아는 젊은이들은 더욱 드물다. 대부분이 『조선말로 하려면 더듬게 되고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한어를 쓴다』고 털어놓고 있다. 의식이 언어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온전하게 조선족이라는 민족의식을 갖기를 기대하는 것부터 무리일것이다.

연변대 출신인 허광수씨(28)는 『햄버거를 먹고 영어로 말하면서 자라온 재미동포 2·3세도 몸에는 한국피가 흐르겠지만 의식은 더이상 한국인이 아닐것』이라고 자신들의 처지와 재미동포들을 비교해 설명했다.

조선족이라는 의식은 또 지역차를 보인다. 동포들이 모여사는 연변에서 북경 등 산재지구로 멀어질수록 급격히 희박해져 간다. 북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젊은 세대는 외모나 언어에서 전혀 한족과 구별할수 없다. 한 외국인 회사에서 근무하는 회계사 김홍화씨(26·여)는 우리말을 아주 힘들게 한다. 북경에서 태어나 성장한 김씨는 한족과 결혼했는데 집에서 우리말을 쓰지 않아 자식도 우리말을 전혀 배우지 못한채 자라고 있다.

우리민족의 역사에 대한 인식은 더욱 낮다. 젊은 세대의 절대 다수가 한민족의 역사를 전혀 모르고 있으며 학교에서 배운 경우라도 중국사의 일부로 배운 정도이다. 자신들이 살고있는 연변지역이 고구려의 강토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놀라울 정도로 드물며 읽고 쓰는 한글을 누가 창제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정부는 소수민족에 많은 배려를 하고 있고 고유의 언어와 문자·문화를 발전시키도록 장려하고 있으나 그들의 역사책에는 고구려영토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고작해야 고구려와 삼국이라는 단어가언급돼있는 정도이다.

단군왕검을 겨레의 시조로 아는 이주민 1세대와 중국사의 범위에서 한반도역사를 배워온 세대의 민족의식은 서로 다를수밖에 없다. 조선족이라는 민족의식이 엷어지는 반면 중국국민이라는 국민의식은 강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조선족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우리 중국인』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며 조선족끼리도 말하기 쉬운 중국어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 조선족은 일상생활에서 중국이나 중국인들에 의한 차별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연길의 한 대학교수(54)는 『중국 만큼 소수민족정책이 잘 돼있는 나라는 없으며 이런점은 다른 나라가 배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길의 한 여기자(42)도 『완전한 평등은 있을수 없으나 중국만큼 차별이 없는 곳도 없다』고 단언했다.

아주 소수이긴 하지만 차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인사에서의 문제점을 주로 지적한다. 북경에서 한국기업에 다니는 곽경원씨(32)는 일상생활에서 소수민족으로서의 따돌림이나 울분은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조선족은 능력이 있더라도 장이나 주석,주임이 되지 못하고 부장,부주석,부주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고 큰 사업을 하려다보니 한계를 느껴 자신이 조선족이라는 점을 절감하게 된다고 한다.

또 길림시의 맥주공장 직원인 정평씨(22)는 중국이 교육투자면에서 조선족을 차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길에서 가라오케를 경영하는 김모씨(34)는 『동포들이 한국에 다녀온뒤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가라오케를 중심으로 한국가요가 걷잡을수 없이 번지자 중국정부는 친한주의와 민족주의가 번질까봐 처음엔 상당히 경계를 했다』고 귀띔한다.

조선어학교를 운영중인 황모씨(49)는 미주의 한인화같은 순수한 민족적 색채를 띤 조직은 중국정부의 인준을 받지못하는 점을 지적,소수민족정책의 한계를 설명했다. 자신의 뿌리에 대한 탐색은 고유성의 강조,궁극적으로는 독립의지로 이어지고 다민족국가인 중국이 가장 경계하는 분파주의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중국 조선족은 완전한 중국인도,그렇다고 조선인으로만 머물수도 없는 곤경에 처해 있다. 하얼빈에서 유수한 민족기업의 간부로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김모씨(47)는 그래서 「반발짝」논을 편다.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려면 조선족사회에서 더도 덜도 말고 반발짝 정도는 한족사회로 넘어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족인 것만 내세우면 출세나 일을 제대로 할수가 없고 그렇다고 한족과 똑같이 행동하면 조선족 사회에서 매도·배척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곤경을 장기적으로는 자기를 잃게하고 한족으로의 동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연길의 한 중견언론인(53)은 한때 중원을 지배했던 만주족이 고유한 언어와 풍습을 포기한채 한족을 추종했다가 역사의 무대에서 밀려난 사실을 지적,『장기적으로 조선족의 장래도 결코 낙관할 수만은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따라서 대부분의 중국 조선족은 자립·자존·자강의 길을 모색하고 있으며 민족경제발전이 2중 정체성으로 인한 혼란과 고통을 덜어줄 방도라고 믿고 있다.

한국 정신문화연구원이 91년 9월 개최한 제1회 세계 한민족 학술회의에서 연변대의 김승철교수는 「중국 조선족의 민족의식」에 관한 토론을 통해 중국 조선족의 장점으로 귀속의식,친화의식,존엄의식,경쟁의식,애국의식이 강한 점을 들고 단점으로는 의뢰심,지나친 체면치레,허영심,독창성 미약,단결심 미약 등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중국에서 살수밖에 없는 조선족이 나아갈 길로 ▲민족경제의 시급한 발전 ▲다른 민족의 장점을 따라 배울것 ▲민족사 학습 ▲민족교육과 민족문화의 발전 ▲세계무대에 진출할 것 등을 제시했다.

◎길림·흑룡강·요령성 등에 2백만명 거주/중국동포 현황

외무부에 의하면 91년 6월30일 현재 해외동포는 4백83만2천4백14명. 교민과 체류자를 합산한 이 숫자는 남한인구의 10% 규모의 인구가 해외에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10년전인 82년과 비교하면 3백10만명 이상 늘어난 것이다.

현재 1백여개국에 퍼져 살고있는 해외동포중 중국교포는 가장 비율이 높아 39.8%인 1백92만2천97명으로 공식 집계돼있다. 중국정부가 90년 11월 실시한 인구조사통계이다.

그로부터 2년 가까이 지난 지금 중국 조선족은 2백만명을 넘었을 것으로 추산돼 흔히 2백만 동포로 통칭되고 있다.

이들은 집거지구인 길림성 1백20만여명,흑룡강성 45만여명,요령성 23만여명,기타 산재지구 4만여명 등으로 분포돼 만주,간도지역인 동북삼성에 집중돼 있다.

이중 길림성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는 전체인구 2백7만9천9백2명중 39.5%인 82만1천4백79명이 조선족으로 일반인이 흔히 아는것처럼 조선족의 비율이 높지는 않은 실정이며 한족의 유입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연변 자치주는 당초 52년 9월 자치구로 설립됐다가 3년뒤인 55년 자치주로 변경됐는데 현재의 행정구역은 연길 돈화 도문 용정 훈춘 등 5개 시와 3개 현(안도 화룡 왕청) 39개 진 70개 향이다.

□특별 취재반

임철순차장(사회부) 강진순기자(사회부) 조상욱기자(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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