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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품」/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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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품」/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2.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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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인품이 있다면,나라에는 국품이 있을 터이다. 나라도 품격과 품위가 있어야 남의 존경을 받는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오늘 우리나라의 품은 어느정도일까. 국제사회의 용일까,지렁이일까. 유엔에도 들어가고,소련·중국과도 수교했으니,그 품이 얼마나 올랐을까.

이 물음 앞에서 묵은 기억을 하나 떠올린다.

85년 3월 서해에서 선상반란을 일으킨 중국 어뢰정이 우리나라에 예인됐다. 어뢰선을 찾던 중국 해군함정 여럿이 우리 영해를 침범했다.

사건은 나흘뒤 중국의 사과,어뢰정과 승무원 전원의 송환으로 매듭지어졌다. 정부는 중국과의 직접교섭으로 사과를 받아 냈음을 크게 평가했다. 대중관계 개선이 점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의 사건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처벌받을 것이 확실한 반란주모자들을 송환해버린 인도상의 문제가 제기된다. 그들의 망명허용을 요청했던 대만과의 관계는 더욱 미묘하다. 그때문에 화교들의 침묵시위마저 있었다. 우리 사법주권이 상처를 입었다고 할 수도 있다.

정부는 이 모든 문제를 덮어 버렸다. 중국의 환심사기가 으뜸인 듯 했다. 여론도 침묵을 강요당했다. 문제를 꼬집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예외가 있었다. 그해 5월치 「신동아」에 실린 전 국민대학장 서임수씨의 수필이다. 중국 어뢰정 사건의 문제점을 다 짚은 이글의 제목은 『3등인물』. 그 제목의 내력이 사뭇 실랄했다.

72년 9월 중·일 수교조약의 조인을 마친 접중일본 수상이 주은래 중국 수상에게 휘호를 청했다. 주 수상은 「언필행 행필과」라 썼다. 언행에 어김이 없으라는 뜻이다. 약정을 새로하는 계제에 있음직한 말인 것도 같다.

그런데 이 말의 전거는 「논어」 자로 제13에 보인 공자님 말씀에서 찾을 수가 있다. 자공이 인물을 물은데 대하여,3등급의 인물로 「언필언행필과」를 꼽은 것이다. 이런 사람은 「돌처럼 융통성이 없는 사람」(경경연소인)이라 인물로는 3등급이라는 얘기였다.

이 내력에서 필자는,대일 전후처리에 관대했던 국민당 정부와의 의리를 끊은 일본 수상,그리고 그를 내려다 보는 「주은래의 미소짓는 눈매」를 본다. 중국이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중국사람들이 신랄한 인간관찰자」임을 실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뢰정사건과 중·일수교를 비교하면서,「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것인가」를 묻는다. 얄팍한 우리속을 드러내지 말고,사건 처리를 당당하게 했어야 함과 아울러,사후에 성과를 자찬하는 따위는 개인끼리의 장상흥정에서도 삼가야할 어리석은 것임을 정면으로 꼬집고 있다.

이처럼 묵은 일을 들먹이는 까닭은,그때 『3등인물』의 지적이 대중수교·북방외교를 마무리한다는 오늘에 더욱 절실하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20년전 일본 수상을 3등인물이라 웃을 수가 있는가. 오늘의 3등인물은 누구인가. 국품이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품이 3등급 아니라고 장담할 수가 있는가.

새삼 대중수교 경위를 물을 것은 없다. 외교는 현실임도 백번 수긍한다. 그러나 외교도,그 결과만이 아니라,과정 역시 중요함을 지적해야 옳다. 왜 한·중수교로 가장 다급할 북한은 자중하는가,올 것이 왔다고 생각할 대만은 왜 그토록 격앙하는가­를 한번 더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필시 사전의 설명과 설득,신의를 생각하는 교섭태도 등과 관련이 있다. 당장 생각나는 것이 작년 10월 중공 총서기 강택민의 방북,지난 4월 국가주석 양상곤의 김일성 생일축하 방북이다. 우리는 대만을 향해 그만한 뜸을 들인 적이 없다.

결과만 놓고 보아도 이번 수교는 불균형이 심하다. 그 단적인 표현이 「하나의 중국」과 「두개의 조선」이다. 중국은 명분과 실리를 다 챙겼다. 우리는 명분에 흠집을 냈다. 그것은 상해임시정부의 법통과도 관계가 된다. 이쪽에서만 대통령이 텔레비전 카메라앞에 나선 것도 국품에 관계되는 불균형이다.

우리는 북방외교라는 말이 귀에 익은 나머지,우리가 무슨 외교대국이나 된듯이 착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 우리의 주요한 외교상대국중의 어떤 나라처럼 교활하지도 못하고,어떤 나라처럼 실용적이지도 못하고,어떤 나라처럼 노회하지도 못하다. 게다가 대만 단교때 미국처럼 대만 관계법 하나 만들어낼만한 의회의 정치력이 없다. 일본처럼 여당 실력자 한사람(죽하등)은 베이징통,다른 한사람(김환신)은 타이베이통으로 양쪽을 어루만지는 융통도 못하다. 그래서 대만에 특사를 보내자는데 사람이 없다. 대만과의 신의를 아끼는 국민정서를 읽을줄도 모르고,그것을 협상의 지렛대로 삼을줄도 모른다.

이렇게 꼽아서,남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외교대국이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교훈이다. 한·중수교가 북방외교의 마무리라면,북방외교 백서나 한권내되,그안에 북방차관 총액과 이번의 교훈을 적어둘 필요가 있다.

그보다 현실과 기정사실은 그리되었다 하더라도,상처를 어루만지는 일이 더 급하다. 그중 가장 끽긴한 것이 재한화교의 권익보호를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다운 신의감정에 합당할 뿐 아니라,대만과의 관계를 최상급으로 수복하는 첫걸음이 된다. 적어도 화교문제로 중국과 대만사이 분쟁에 말려들지 않는 슬기가 있어야 한다.

역시 외교는 결과만이 아니라 그 과정이 중요하다. 대중수교 이후의 수순과 과정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 과정이 바로 국품에 보탬이 되게해야 하는 것이다. 이점 경제대국이면서,정치대국,나아가 세계의 지도국이지를 못하는 어떤 나라가 우리의 반면교사일 수 있다.<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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