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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살신성인(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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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살신성인(사설)

입력
1992.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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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있는 삶과 마찬가지로 가치있는 죽음은 숭고하다. 생과 사는 한번 뿐이지만 가치는 영원하기 때문이다. 사망이 있기에 생명의 존엄성을 한층 귀중하게 떠받든다. 누구나 운명 앞에선 숙연하게 머리를 숙인다. 공익을 위해 육신을 던질때 더욱 그러하다.우리는 한 의학자의 감동적인 운명을 지켜보며 생사의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생각에 깊이 젖어들게 된다. 서울대 의대학장을 지낸 한 교수는 암이라는 죽음에 이르는 절망의 병과 싸우면서 최후의 순간을 내다보고 뜻있는 결단을 내렸다. 자신의 안구는 기증하고 죽은 육신은 해부하라는 유언을 남겨둔 것이다. 후학과 가족은 유지를 받들었다.

평생을 기초의학인 해부학 연구에 받친 이 교수는 생명이 떠난 육체까가지 의학연구에 내던진 것이다. 살신성의의 뜻이 조금도 과장스럽지가 않다. 의학을 향한 일생의 의지와 정열을 마지막까지 태워버린 셈이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하나 그 결단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네 오랜 풍습과 정서로는 사체를 훼손함은 고인에 대한 불경은 물론이고 죄악으로 여기고 있다. 생전 가족의 눈물겨운 반대는 오히려 당연할 따름이다. 그래도 고인은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전공학문을 삶과 죽음으로 합일케 한 뜻은 그래서 더욱 숭고하게 받아들여진다. 학문에 대한 사랑과 묵숨에 대한 사랑의 일치가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우리 의학연구는 해부용 사체가 모자라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작고한 교수는 이런 딱할 현실에 직면해 지난달 동료 교수들과 더불어 「신체기증서」 작성을 주도한바 있다고 한다. 이 뜻을 그대로 실천했으나 그의 학문애와 인간애에 다시금 머리를 숙이게 된다.

그의 생명은 이 세상을 떠났어도 의학교육에 남긴 발자취와 함께 그의 육신은 암 연구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게 후학들의 위안이 되고 있다. 이러한 유지가 우리 의학발전의 촉매제가 된다면 그 뜻은 한층 빗나리라 확신한다.

숭고한 의학자의 최후는 학문연구에만 교훈이 국한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분야에서 이런 의지와 정열과 결단이 필요하다. 살신성인의 본뜻이 그렇다. 하고자 하는 일엔 전력을 쏟아붓고 몸을 던져야 창조와 발전의 불꽃이 타오르고 계속 이어진다. 솔선수범은 남에게 기대할 일이 아니다. 자기가 먼저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아쉬운 것이 이런 정신이다.

실천이 없는 공론은 허황하고 가치가 없다. 가치 있는 생명의 의학과 더불어 생명의 철학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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