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대학신문/토론·정보의 장 다양성 회복을(대학을 살리자:23)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대학신문/토론·정보의 장 다양성 회복을(대학을 살리자:23)

입력
1992.08.27 00:00
0 0

◎주체·역할싸고 교­생 극한대립/잇단 발행중단… 방향잃고 표류/민주화위한 비판기능 우선/학생/「편향」 탈피 전체목소리 대변/학교지난 6월 광주시내 한 호텔에서는 전국 1백20여개 대학신문 주간교수들이 모여 「다변화 시대의 대학신문의 위상과 역할」이란 세미나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사실의 균형보도와 학내 여론수렴기능을 상실한채 운동권 학생들의 논리만을 대변하고 있는 대학언론의 현실윽 개탄하면서 『대학신문의 변질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으며 교육적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도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

지난 7월 부산 동의대에서는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전대기련) 제11기 출범식이 열렸다. 학생기자들은 이날 『교육부와 학교당국이 12월 대선을 앞두고 대학언론을 탄압하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며 대대적인 연대투쟁을 결의했다.

한달사이 열린 이 두모임에서 내려진 교수·학생들의 이같은 상반된 결론은 2학기 대학신문이 겪게될 진통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1946년 「중대신문」이 효시인 우리나라 대학신문은 대학인 특유의 정열과 저항정신으로 학원의 자유와 사회민주화를 위해 「양심의 소리」임을 자부해왔다.

4·19와 반유신투쟁,87년 6월 항쟁 등 민주화의 고비마다 대학신문은 기성언론의 벽을 뛰어넘으면서 개혁운동의 진원지로 자리잡아왔다.

양적으로도 팽창을 거듭,「1교1신문」 형태로 현재 1백42개 대학에서 주간 또는 격주간으로 한번에 2백50여만부가 발행되고 있다. 각종 학내 단체의 소식지·동아리회보 등까지 합치면 1천4백여종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대학언론은 급변하는 사회적 소용돌이 속에서 역할과 방향감각을 잃은채 대학 구성원간에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발행중단사태가 잇달고 있다. 최근의 한 통계에 의하면 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89년이후 20여개 대학에서 30여번이나 발행이 중단됐다.

지난 1학기에만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홍익대 등 10개 대학에서 대학신문 분규를 겪었다. 더욱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각 대학의 신문들은 「민중운동진영의 선전역할」을 준비하고 있어 대학신문의 논조·편집방향 등을 둘러싸고 가장 큰 불씨가 될 것으로 보인다.

40년 전통의 「연세춘추」는 지난 1학기 개강초부터 3주동안 발행되지 못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학교측이 현대그룹에서 학교발전기금으로 30억원을 기부했다는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취급하려하자 학생기자들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학교측이 현행 학부생 중심의 발행체제를 대학원생 중심으로 바꾸려하고 학생기자들은 이에 적극 반대하고 있어 불협화음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올해초부터 4개월간 제작이 중단됐던 「고대신문」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주간교수가 성적이 불량한 학생기자를 해고하고 ▲대학원생 위주의 학보사운영 ▲학부생의 편집국장·부장 임명금지 ▲학생들에 의한 수습기자 선발불허 등을 골자로 학보사체제를 개편하려 했다.

그러나 학생기자들은 대학언론의 자유를 탄압한다며 제작을 거부했다.

「서강학보」도 2차례에 걸친 발행중단 끝에 지난 1학기 동안 신문을 4회밖에 발행하지 못했다. 주간교수가 3·26 총선을 앞두고 재야단체소속 외부필자의 원고게재를 불허하면서 시작된 학보분규는 대립의 골만 깊어지면서 현재까지도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학신문 분규는 편집의 주체,편집권뿐만 아니라 광고를 둘러싼 학교측과 학생기자간의 갈등으로도 자주 빚어지고 있다.

학교는 광고수익을 통해 지면의 질적 향상을 도모해야한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학생들은 소비성 상품광고를 추방하고 건전광고 대행사를 지정하는 등 광고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실리와 명분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양자는 대학신문의 주체·역할·방향 등 본질적인 문제에서부터 시각을 달리한다.

전대기련은 최근 발간한 자료에서 『대학언론은 학생운동의 대중적 토대구축을 위한 선전선동의 매개체이며 기자들은 선전활동가』라고 밝히고 있다.

이들은 현실모순의 타개와 진보적 의식화를 위한 장인 대학신문의 편집권은 당연히 학생의 몫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도교수들은 『대학신문의 비판적 기능을 인정한다해도 대학신문은 대학구성원 전체의 목소리를 담아야 할뿐 아니라 학문공동체적 틀을 벗어나서는 안된다』며 『특히 학문적 검증과정 없이 특정집단의 의견만을 대변해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서강학보」의 김순기 주간교수(경영학)는 『학생기자들은 수석입학·졸업자의 인터뷰,정년퇴임 교수와의 대담,교내 행정사항과 인사,미담사례 등 상식수준의 기사조차 싣지 않으려 한다』며 『학내 구성원간의 정보교환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대학언론은 존재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연세춘추」 전주간 김영석교수(신문방송학)는 『수습기자때부터 취재와 기사작성요령을 배우려들지 않고 운동권 논리를 익히기 바쁘다』고 지적,『질 높은 정보를 서비스하려면 교수와 대학생들의 참여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국민대 배규한교수는 『과거 독재정권때 학원탄압으로 형성된 학생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감이 대학언론의 편향성과 획일성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신문은 이같은 갈등과 알력이 심화되면서 일반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최대 대학내 라디오 및 유선TV방송 등 각종 매체가 늘어나면서 정보제공의 독점적 위상이 흔들이고 있다.

지난 3월 서울S대 학보사가 재학생 7백9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보의 관심도와 만족도」에 관한 설문조사결과는 이같은 최근의 현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모든 기사를 빠짐없이 읽는다」는 학생은 9.3%에 불과했으며 「학보가 전체학생의 의사를 대변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8.5%에 지나지 않았다.

47%의 응답자는 행정 또는 공지사항 전달부족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으며 46%는 논조가 편파적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대학신문기사의 다양성과 공정성에 만족하다는 응답자는 10% 미만이었다.

학생들은 ▲취업 및 진학안내 ▲유학정보 ▲교수 동문 등 선배들의 근황 등을 학보를 통해 알고 싶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따라 대부분의 학생기자들은 매체혁신을 통한 대중성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고대신문」 편집장 배진석군(정외 3)은 『학생대중의 호응을 받기 위해 의견·투고란을 신설하고 서로 다른 입장을 균형있게 소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군은 그러나 『대학신문의 대중성이란 흥미위주의 기사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를 위한 대중의식을 개혁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학생들과 마찰을 빚어온 학교측이 아예 별도의 학보를 제작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서강대는 학보발행 중단사태가 장기화되자 교수들이 직접 별도의 「서강학보」 제작을 서둘러 지난 18일 첫선을 보였다.

이 대학 김순기 주간교수는 『진보와 혁신이라는 구실로 다양한 대학문화발전을 저해하는 현재의 학보를 더이상 방치할 수 없었다』면서 『새 학보는 구성원 전체의 학문토론과 정보제공의 마당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외대 정진석교수(신문방송학)는 『갈수록 관심과 욕구가 다양화되는 대학사회에서 더이상 학보발행의 주체와 논조를 놓고 소모적 논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신문제작의 다원화를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한편 대학신문의 향후 방향성을 놓고 더이상 학교신문으로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대학주변 생활권을 대상으로 「공동체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성균관대 이효성교수(신문방송학)는 『대학주변이 점차 대학촌으로 형성돼가는 만큼 편협한 학내기사만을 실을것이 아니라 인근 주민들이 참여하는 지역관련 기사중심으로 신문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미시간대의 경우 대학인근의 주민들을 독자층으로 삼아 5만여부의 「미시간 스테이트뉴스」를 발행,연간 50여만달러의 소득을 올려 대학재정에 도움을 줄 뿐아니라 지역문화 창달에도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외대 정진석교수는 『대학신문은 학문공동체의 규범과 틀속에서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을 조화시켜야하며 비판과 저항의 소리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표현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서진영교수(정치학)는 『여론수렴과 정보제공이라는 신문의 1차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면서 대학구성원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려면 학교와 학생간에 신뢰를 회복,대학언론의 역할과 방향 등에 대해 합의를 도출해 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신문 주간협의회 세미나 지상녹음/“「균형」 상실한 선동일변도 적극대처/1교1신문체제 탈피도 검토해볼때”

전국대학신문 주간교수들은 정기·부정기적으로 모여 대학언론의 위상과 체질개선 등에 대해 논의한다.

주간교수협의회(회장 최순열·동국대)가 지난 6월말 개최한 세미나에서 개진된 교수들의 토의내용을 녹음해본다.

▲한국 외대 정진석교수=대학신문의 본질은 대학특유의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조화에 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부터 학교측은 아카데미즘의 테두리안에서 교내외 홍보매체적 기능을 강조해왔고 학생들은 저널리즘의 전제위에서 현실참여와 대중 선동적목표를 부각시키고 있어 대학신문의 주체논쟁으로까지 번지면서 대학언론이 표류하고 있다.

사회의 전문화와 기능화추세에 따라 대학신문을 학생들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학교측도 별도의 신문을 제작하는 등 1교1신문체제에서 탈피할때가 됐다.

▲고려대 홍기선교수=지난 20여년간 대학신문은 현실비판과 도전으로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80년이후 대학신문은 언론이 지녀야할 최소한의 조건인 「균형감과 정확성」을 도외시한채 선동일변도로 치닫고 있다. 대학신문은 교육적임무의 테두리안에서 학내 구성원간의 정보교류,상이한 견해의 소개와 토론,여론수렴,학생기자의 자체훈련 등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이날 세미나에 초청된 전남일보 최종수사장은 『진보·혁신의 시각자체가 그릇된 것이 아니라 전체구성원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표출해야할 대학신문이 한가지 주의·주장에 독점된채 예정된 틀에 따라 객관적사실을 선별,윤색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특히 대학신문이 편집권 독립,언론자유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공정과 균형」의 한계내에서만 보호되는 것이며 어떠한 이유로도 타인의 의견과 인격을 도외시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유승우·김철훈·고태성·남대희·이성철·이태희기자(사회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