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두보 확보… 북방외교 대미/한/경제활성화·한반도 영향력 확대/중/대미·일 접근 가속… 개혁 돌파구/북/중·일 지역패권 다툼속 실리외교 요구… 비동맹국 관계강화 계기돼야한중 국교수립의 의미와 파장은 「동북아의 대지각변동」에 비유된다.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이후에도 더디게만 집행돼온 동북아 냉전대립 구도의 청산이 이제 현실로 다가왔다.
분단이후 40여년을 계속해온 적대관계의 청산은 우리의 국제적 위상제고와 함께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의 외교·안보구도의 근본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중국문제 전문가인 박두복교수(외교안보연구원 중국부장),김하룡교수(고대 정치학)와 정경희 본사 논설위원의 좌담을 통해 한중수교의 의미와 전망을 정리해본다.<편집자주>편집자주>
□참석자
▲박두복교수(외교안보연구원 중국부장)
▲김하룡교수(고대 정치학)
▲정경희 논설위원(한국일보)
▲정리=윤석민기자(국제부)
▲정경희위원=이 시기에 왜 어떻게 한중수교가 단행됐는지에 우선 관심이 갑니다. 양국의 대내외적 상황,즉 동북아를 둘러싼 국제환경변화와 각국의 국내 상황이 합치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우선 중국의 내외적 여건이 성숙된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89년 천안문사태이후 소원해진 대서방 관계진전이 지지부진한데다 오는 10월로 예정된 일왕의 중국방문에 앞서 한국관계를 정립,돌파구를 마련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또한 대대적인 체제개편이 예상되는 14차 공산당대회에서 등소평의 「보수파 밀어내기」와 연관된 정책결정의 일환이라 봅니다.
▲박두복교수=말씀하신대로 중국은 다시 개혁 고조기에 들어서 있습니다. 특히 올봄 등소평의 남순강화이후 이 현상은 두드러집니다.
현재 중국이 표방하는 개혁은 과거와는 비교가 안될 혁명적인 것입니다.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경제 독려는 소유제에 큰 변화를 가하지는 않지만 서구경제체제를 도입시킨다는 엄청난 변혁입니다.
이런 개혁추세에서 이데올로기 탈피는 불가피하고 중국은 이를 강조해왔습니다. 다만 중국은 ▲북한과의 오랜 친선관계 ▲자국이 「분단국」으로서 표방해온 「하나의 중국」 정책 등 두가지 이유로 수교를 주저해왔습니다. 남한정부의 정치실체 인정,즉 「두개의 한국」 정책은 후자인 자신들의 논리에 위배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91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으로 그 기본적 의미는 없어진채 한중수교는 시간문제인 현실적 요구로 받아들여지게 됐습니다. 단지 북한의 고립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상황을 고려해 왔다고 봅니다.
○일본팽창 견제
▲김하룡교수=외부적 요인으로서 경제력을 발판으로 한 일본의 정치대국화를 지적해 볼 수 있습니다. 냉전구도의 퇴조와 함께 약화되는 미국의 영향력을 대체하고 있는 일본의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스스로 이념적 속박을 풀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세계경제블록화 추세속에 최근 대두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우리나 일본 못지않게 중국에도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의 중국 영향력을 확고히 하는 한편 경제적 파트너로서 한국이 적합하다는 현실적 요구가 뒷받침했다고 봅니다.
이러한 전제는 호혜라는 측면을 고려할 때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하겠습니다.
▲박 교수=수교결정이 이뤄진 타이밍(시기)상의 요인을 몇가지 덧붙이겠습니다. 하나는 올 11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빌 클린턴 미 민주당 후보의 급부상입니다. 천안문사건이후 소원해진 대미관계가 아직 정상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 정권의 수립은 양국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또 하나는 대만의 경제력을 무기로 한 「탄성」외교 공세에 말려 중국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시점입니다.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고를 앞세운 대만이 55개 미수교국에 무역대표부를 설치하고 최근에는 니제르와 국교회복을 하는 등 외교공세가 계속돼 왔습니다.
때문에 한중수교로 인한 대만의 대한 단교조치는 이러한 실리외교 공세에 쐐기를 박으며 대만 외교정책 전반에 충격을 가하는 「카드」라 보겠습니다.
▲정 위원=시기상의 문제와 관련,너무 서두르지 않았느냐는 여론이 없지 않습니다. 사실 양국수교는 88서울올림픽,유엔 동시가입을 거치며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 채 택일만 남은 상태였는데 6공화국의 북방정책 완결,연말의 대선 등 국내 정치일정과 맞물려 이런 지적이 나오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 교수=이미 3차에 걸친 양국간 외무장관 회동,올해 57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교역량,상호 무역대표부 설치 등 실질적으로 수교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마치고 있던 셈입니다. 이에 덧붙여 답보상태에 있는 남북대화와 침체국면의 국내경제에 활력을 주려는 의도가 6공의 「북방외교 대미」와 맞물렸다고 봅니다.
○대만소홀 아쉬워
▲박 교수=동감입니다. 수교를 위한 양측의 기본조건들은 이미 성숙돼있고 이에 대한 우리의 입장도 정리돼 있습니다. 문제점은 앞서 지적한대로 중국쪽에 있었습니다. 개혁을 위한 중국의 이념탈피가 빗장을 푸는 열쇠였습니다.
▲김 교수=대만을 너무 소홀히 하면서 수교를 서두르지 않았느냐는 논란도 일부 제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 교수=대만의 국내 정치일정을 고려치 않은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앞으로 2∼3년이 대만에 있어 민주화 헌정변화의 중대한 시기입니다. 대한 단교조치가 대만 국내정치에 미칠 파장은 클 것으로 봅니다. 대륙과의 분리,독립주의자의 입장을 강화시키는 계기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감정을 고려한 단교에서 오는 충격은 중장기적으로 볼때 극소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미·일 등이 다투어 등을 돌린 10년전만 하더라도 우리와 국민당 정부는 「반공 운명공동체」였습니다. 하지만 원로 대륙 정치인들이 퇴진하는 전면 세대교체와 함께 실용주의 테크너크랫의 등장으로 이성적 대응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향후 한국·대만관계는 호혜의 원칙하에 현실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봅니다.
또한 이번 수교로 중국이 스스로 인정한 「2개의 한국」 방식은 대만이 대대륙 정책과 실질외교를 추진하는데 있어서도 운신의 폭을 넓히는 유리한 논리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정 위원=한중수교는 북한에도 엄청난 충격일 것입니다. 1세대 지도자의 혁명적 유대감,6·25 참전 혈맹,한중 상호 원조조약 등 전통적 우호관계를 무릅쓴 중국의 결정으로 북한이 입는 내부적 혼란은 지대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북한 일시적 고립
▲김 교수=일시적으로는 북한의 고립과 폐쇄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교차승인 차원에서 대일·미 접근을 가속시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경제적 위기를 헤쳐나갈 미일 등의 재원을 마련,체제유지와 함께 중국식의 개혁모델을 밟을 수 있느냐 급진적 개혁·개방으로 나갈 것이냐는 이제 북한이 택해야할 과제입니다.
▲박 교수=북한과 중국의 특수한 관계에 비춰 이번 수교는 양국의 컨센서스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봅니다. 중국이 양국관계의 불변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김일성 북한주석과 김정일 당서기를 각각 초청할 것이라는 보도가 이를 입증합니다.
따라서 북한측에 근본적인 태도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가 대미·일 관계 정상화를 천명하는 터에 한국과 수교하지 말라고 중국에 종용할 명분은 없습니다. 다만 한중수교를 북한과 서방관계 진전 속도에 맞춘다는 양국간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북한 「핵계획」과 전후 보상문제가 각각 맞물려 대미·일 접촉이 답보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이에 한중수교라는 「우회로」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양국간의 현실적 이해가 저변에 깔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만큼 북한도 사회주의 일변도 외교에서 탈피한 전방위 외교의 일환으로 적극적인 대남 정책을 표방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해봅니다. 대서방 관계개선과 공존을 우선한 정책입니다.
▲정 위원=한중수교의 파장은 동북아권을 뛰어넘는 지대한 것입니다. 특히 「냉전의 각축장」인 한반도를 둘러싸고 익숙해온 「힘의 역학구조」에 변화가 불가피해졌습니다.
혹자는 우리가 처한 상황이 1세기전 구한말 「조선책로」 당시로 환원됐다고도 합니다. 온통 「장미빛」 청사진속에 한치의 방심도 금하는 되새김으로 들립니다.
▲김 교수=양국수교로 우리의 국제적 위상이 신장됐음을 먼저 꼽습니다. 동북아의 전통강국이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의 관계단절은 사실 한국외교를 「반쪽짜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중국을 지렛대로 그동안 북한에 비해 열세에 놓였던 비동맹권과의 관계강화도 쉬워질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북한과 가장 밀접한 중국에 공식 채널을 확보함으로써 이를 통한 대북 협상진전에 기대가 큽니다.
▲박 교수=앞으로 이 지역에서 중국의 역할이 확대되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한중수교를 계기로 「반쪽」이었던 중국 외교가 완전해졌음은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예비된 노태우대통령과 북한 김일성 부자,그리고 일왕의 중국방문을 계기로 중국의 적극적인 중앙무대 복귀활동이 분격화될 전망입니다. 국력을 내세워 치열히 전개될 중국과 일본의 지역패권 다툼에 실리와 균형을 취하는 우리의 슬기가 더욱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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