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의 장막」 걷고 초강대국 발돋움/민주화문제·민족갈등 당면과제소련해체이후 공산주의 종주국이 된 중국은 역사적인 한중수교를 계기로 다시한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49년 공산화된 이후 43년간 실로 혁명적 변화를 거친 중국은 이제 대외경제면에서의 개방정책으로 동북아는 물론 세계 정치무대 전면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한때 「죽의 장막에 가린 잠자는 거인」으로 불렸던 중국대륙은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 초강대국으로서의 역할수행을 위한 입지확보에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이미 60∼70년대의 문화혁명이후 농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 등 4개의 근대화란 장기목표를 내걸었다.
이제 한중수교로 더욱 가까이 다가올 중국의 다양한 면면을 간략히 살펴본다.
▷정치◁
19세기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으로 곤욕을 치른 중국은 49년부터 줄곧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를 유지해왔다.
물론 민주동맹 등 8개 위성정당이 있지만 정치적 영향력은 전무한 상태다.
헌법상 국가최고권력기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이고 국가행정은 국무원이 관장한다.
최고실력자 등소평 주도로 82년 제5기 전대회에서 개혁헌법이 통과된후 중국은 국가성격을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에서 인민민주주의 체제로 대치,당정분리를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양상곤 국가주석 강택민 공산당 총서기겸 중앙군사위 주석 이붕총리 등 3인이 현 중국정치를 대표하고 있지만 실제 정국주도권은 노령으로 2선에 물러앉은 등소평이 여전히 쥐고 있다.
지난 24일로 미수(88세)를 맞은 등소평은 11월 제14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중국의 고르바초프」라는 개혁파 주용기가 새 총리에 기용되도록 정지작업을 펴는 등 자신이 추구하는 개혁·개방 정책의 완결을 위해 끝까지 진력하고 있다.
91년 12월 소련의 공준분해 이후 서방의 대중 평화공세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보수파의 견제가 강화되긴 했지만 등소평의 후광을 등에 업은 개혁파의 득세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경제◁
78년 12월 공산당 제11기 3중대회에서 등소평의 개혁정책이 채택된 이후 중국은 풍부한 지하자원과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과감한 경제체제 개혁에 나섰다.
경제면에서의 대외개방과 관련 84년 IMF(국제통화기금)에 가입한 중국은 86년 3월 ADB(아시아개발은행) 정회원국이 되는 등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체제 구축을 향한 발걸음을 서둘렀다.
특히 87년 공산당 제13차 전국대표대회에서 결정된 연안지구 경제발전 전략은 외국자본의 유입을 가속화시켜 중국 경제발전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는 지적이다.
10년이상 꾸준히 경제개혁 정책을 실시해온 중국은 91년 수출 6백20억달러 수입 5백33억달러를 기록,총 87억달러의 무역흑자를 내고 있다.
급속한 경제개혁에 따른 부작용도 최근 중국 경제의 중요한 특징이다.
국내 자본부족으로 이미 90년말 총외채가 5백25억달러를 넘어선데다 최근에는 남부 광동성 경제특구인 심천에서 일확천금을 노린 「주식폭등」까지 발생해 중국 지도부를 당혹케 했다.
▷사회문화◁
11억 인구의 중국은 전인구의 93%를 차지하는 한족을 포함,총 56개 민족이 공존하는 명실상부한 대륙국가이다.
공산당 집권이후 중점 실시된 농업정책이 어느 정도 성공,절대적 빈곤상태를 벗어나긴 했지만 전반적인 국민생활 수준은 상대적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소득증대에 따라 농민가운데서도 소위 「만원호」가 등장했지만 1인당 GNP는 개도국 수준인 3백달러선이다.
현재 중국사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급속한 개방·개혁정책 실시에 따른 사회불안과 민족갈등에서 비롯된다.
89년 천안문 사건이후 정치민주화운동이 지하로 잠적하긴 했으나 사회·경제구조 변화에 따른 폭발위험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또 티베트 등 5개 자치구에 기반을 둔 수많은 이민족들도 개혁물결에 편승,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장현규기자>장현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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