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수출 작년보다 30% 줄어/지하경제 기승… 국영상점 “말뿐”/지역간 교역안돼 루블경제권 붕괴가속○「양파껍질」현상
러시아에 진출한 서방기업들은 현 러시아 경제를 「마트료쉬카경제」라고 부른다.
「마트료쉬카」는 하나의 인형속에 똑같은 모양의 작은 인형이 서너개,많게는 대여섯개씩 들어있는 러시아 전통공예품이다. 양파의 껍질을 벗겨내면 또다른 양파껍질이 나타나는 원리와 똑같다.
마트료쉬카경제는 옐친 대통령의 경제팀이 급진경제 개혁조치를 시행하면서 구 소련으로부터 물려받은 구 체제의 껍질을 수없이 벗겨냈지만 아직도 경제전반에 걸쳐 사회주의경제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있는 현실을 꼬집는 말이다.
예컨대 물가자유화조치가 시행된지 8개월여가 흐른 지금도 대부분의 상품가격은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나라 상급 국가기관에 의해 책정된다. 러시아내 모든 상업활동의 80% 이상을 점하는 국영상점들이 판매할 물건을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영상점에서 소비자에 이르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에는 자유시장과 개인상점이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대부분의 상업활동은 국영상점을 통해 이뤄진다. 그러나 국영상점은 주로 단일품목만을 취급하고 넓은 지역에 하나 혹은 둘정도 개설돼있어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매우 좁다. 이처럼 경제 하부구조가 전혀 변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실시된 가격자유화 조치는 물가만을 턱없이 올려놓는 결과를 초래했다. 경제원리와 현실이 겉돌고 있는 것이다.
○물가상승률 천%
러시아당국은 올상반기 물가상승률을 6백% 전후로 추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1천%에 육박하고 있다는게 서방 경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는 러시아경제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오히려 러시아경제팀의 개혁이상과 실물경제간의 괴리는 경제기반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리고 각종 경제지표를 마이너스상태로 돌려 놓았다.
금년 상반기(1∼5월) 수출실적은 1백20억달러로 지난해 같은기간에 비해 30%나 줄었다. 가득외화의 70%를 차지하는 원유 및 천연가스 생산의 어려움을 더욱 심각하다. 정치불안정·임금인상·생산시설 노후화 등이 겹쳐 석유생산량은 오는 95년이 되면 지난해(4억6천1백만톤)의 절반수준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5∼10%선에 육박하고 GNP규모도 작년보다 15%가량 줄었다. 외채는 7백40억달러로 급증했다.
이같은 경제상황은 올가을 농산물 수확이 끝나는 10월이후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식량파동 예상
러시아경제전문가들은 올 식량생산은 지난해보다는 증가하겠지만 목표수준인 90년도의 1억1천6백만톤을 훨씬 밑돌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여기에다 농산물생산의 75% 이상을 차지하는 국영농장과 집단농장들이 물가상승을 이유로 곡물가격 현실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나서 또다른 식량파동을 예고하고 있다.
○민영화 지지부진
러시아경제구조의 왜곡은 심각한 현금부족 현상에서도 그 심각성을 볼 수 있다.
러시아의 개혁지도부는 당초 국영기업 매각을 통해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해 가격자유화에 따른 인플레현상을 억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지난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실시한 국영기업의 민영화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금년 목표치인 25%선을 크게 밑돌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각 기업체에서는 임금을 4백억루블이나 체불할만큼 심각한 현금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의 발권은행인 중앙은행은 금년 8월중에만도 6천억루블을 새로 발행할 예정이지만,돈가뭄이 해갈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경제활동에서 혈액에 해당하는 현금의 유통이 원활하지 못한 것이다.
급진경제 개혁의 또다른 문제점은 실업자 급증현상이다. 국제노동기구는 러시아의 실직사태가 지난 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을 방불케하는 대량 실업사태로 발전,올해말까지 1천5백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반해 지하경제는 정치·경제적 혼란기를 틈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나와있지 않지만 러시아의 지하경제 규모는 지난 1년동안 배이상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러시아의 소비자들은 대부분의 상품이 마피아조직에 의해 지하로 빼돌려져 터무니없이 높은 값에 거래되고 있다고 불평한다. 국가의 통제아래 있는 국영상점마저 검은 손이 지배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쿠데타실패와 각 공화국의 독립으로 가속화한 루블경제권 붕괴의 폐해도 심각하다. 고르바초프 대통령 정권말기부터 그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루블경제권의 균열은 각 지역이 비교우위를 지닌 생산제품을 퇴장시키는 이기주의를 보이면서 특정상품의 편중화를 낳았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식량이 남아돌고 발트지역엔 가전제품과 육류가 넘치는 대신 에너지가 모자란다. 또 러시아는 에너지가 풍족한 반면 식료품이 모자라는 현상이 빚어졌다. 이런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CIS체제내 교역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옐친정부는 그만한 통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옐친 통제력 한계
러시아 국민들은 1년전 쿠데타 진압과정에서 품었던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자 경제실정의 책임을 현 경제팀의 가이다르 총리대행에게 돌리고 있다. 이미 그의 퇴진설이 나돌고 군산복합체의 대표적인 인물인 아르카디 볼스키가 그뒤를 이을 것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경제총수가 바뀐다고 경제가 하루아침에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개악이 될지도 모른다.<이진희기자>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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