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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가 왜 「금지」인가/이문희(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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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가 왜 「금지」인가/이문희(화요칼럼)

입력
1992.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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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는 「여론」을 얼마나 측정해내나­ 이 물음에 한마디 답이란 있을 수 없다. 몇가지 교과서적인 말들도 썩 신통한 것이 못된다.「여론조사란 예측되는 결과를 재확인하는,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과학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은 것」이라는 아주 부정적인 시각에서부터 「공정하게만 진행된다면 주먹구구보다는 훨씬 과학적인 것」이라는 것까지 다양하다.

○자유언론에 위배

그러나 여론조사는 우리 사회의 여론측정 방법으로 착실히 자리잡아 가고 있다. 자유언론이 표방되는 나라에서 매우 바람직스럽고 또 당연한 현상이다. 되레 걱정은 조사가 남발되다 보니까 별의별 숫자가 「여론조사」의 탈을 쓰고 각종 미디어,인쇄물에 넘쳐 흐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보편화되어 가는 여론조사가 아직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제도로서 수용되지 못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주 한국편집인협회가 낸 헌법소원이다. 편협의 소원은 여론조사 실시와 그 결과 공표를 금지한 대통령선거법 65조가 언론출판 자유와 선거권을 보장한 헌법 21조,24조를 침해한 위헌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이런 법이 건재한다는 것도 놀랍고 이런 문제에 대한 정리도 없이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대권을 치르겠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배짱도 놀랍다.

위헌이냐 아니냐의 판가름은 헌법재판소의 일이다. 우리의 관심은 조사결과가 얼마나 투표자에게 영향을 주며 그 영향이 금지할 만큼 나쁜 것이냐는 것이다.

여론조사라는 것이 본격화된 1930년대 이후 여러 연구는 조사결과가 투표양상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앎으로써 유사한 견해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라든가 「다수의견이라는 것이 제시되면 사람들이 그 견해에 회귀성향을 보이고 따라서 다수는 더욱 다수화,소수는 더욱 소수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 그것이다. 「여론조사에서 우위로 판명되는 것이 되레 역효과를 주고 결집을 억제한다」는 것도 있다. 이런 취지 때문인지 프랑스는 투표일 1주전부터 조사발표 금지를 규정해 놓았고 독일은 투표당일에 한해 금지했다. 우리 개정안은 투표 10일전부터의 금지를 규정해 놓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들은 남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을 아는 것은 자신의 태도결정에 중요한 정보요소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후보의 학력·경력·전반적인 업무수행 능력·당적·과거기록 등과 한치의 다름없이 얼마나 많은 사람,어느 층이 지지 또는 반대하는가는 대상선택에 요긴한 정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런 정보는 많을수록 좋다. 최종 결정은 이런 모든 것이 입력된 후의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조사금지의 입법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정작 국민이 아닌 기성 정치권이라고 매도하기도 한다. 실제 여론조사의 본고장이라는 미국에서 조차 1920년 이후 조사발표 규제법안이 의회에 제출되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고 또 번번이 폐기됐다. 이웃 일본에서도 지난 5월 집권 자민당이 규제안을 들고 나오고 의외로 야당이 호응까지해 자유언론 문제로 논란을 일으켰었다.

○철저관리가 관건

선진국중 드물게 「투표 1주일전 보도금지」를 고수하고 있는 프랑스의 강변중의 하나는 여론조사에 대한 그들의 관리체제이다. 프랑스는 1977년 제정된 법에 의해 모든 여론조사는 공표전에 정확성과 공정성에 대한 심사를 받게 되어 있는데 이런 철저한 관리는 조사가 곧 투표라고 할 만큼 정확도가 높기 때문에 공표에 신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잘 관리된 조사라고 늘 정확한 것은 아니다. 1948년 미 대통령선거에서 트루먼의 재선대신 공화당 듀이의 당선을 점쳤던 갤럽조사가 그 대표적 예다. 조사는 어디까지나 조사일 뿐이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실시된 일부 조사들이 같은 사안에 대해 너무나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무리 조사의 주체,시기,방법 등이 다르다하더라도 일단 우리 조사들의 질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질의 천차만별이 너무나 심하다.

그거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한다면 조사결과를 신뢰하느냐 마느냐는 것은 결국 접하는 사람의 책임에 속하는 문제이지 법의 규제로 보호할 수 없는 문제라는 말이 된다. 수많은 의견에 대한 선택이 각자의 것인 것처럼 여론조사 결과도 수용자에게 책임이 지원지는 것이다.

여론의 측정이 자유롭고 그것을 공표하는 것이 자유로워야 하는 것은 정작 다른 차원의 의미 때문이다. 바로 우리 헌법이 보장한다는 자유언론의 원칙이다. 그래서 여론조사는 더 많아져야 하고 그 결과에의 의존은 좀더 세련되어야 한다.

우리는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다. 간단없이 후보에 관한 정보들이 공개돼야 하고 유권자들은 열심히 「후보연구」를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누가 얼마만큼의 지지를 받고 어느 층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도 빠져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고 지난날처럼 어느 기관조사에선 누가 앞섰느니 어느 당에선 누가 뒤섰느니 하는 것이 또다시 수군거림으로 돌아다닌다면 그것처럼 난센스는 없다.<편집인·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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