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제기획원의 수석국장 자리가 20일 가량 비어 있었다. 5개년계획 등 장단기 정책수립을 실무적으로 총괄 지휘하는 경제기획국장 보직이 공석으로 방치된 것은 기획원 창립 31년만에 전무후무한 이변이다.기획국장이 얼마나 요직인지는 지금껏 이 자리를 거쳐간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잘 알수 있다. 이희일·최창락 전 동자장관,고 서석준 전 부총리,강경식 전 재무장관,고 김재익 대통령경제수석,이진설 현 경제수석,이형구 산업은행 총재,김대영 주택공사 사장,김인호 환경처차관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번 인사진통은 지난달 21일 전임 국장이 승진한뒤 후임자를 내정하면서 돌출했다. 최각규부총리,이진설 청와대수석 등 경제팀 사령탑은 후임으로 재무부에 근무중인 기획원 출신 이모국장을 내정키로 합의,그를 대신해 기획원에서 재무부로 파견나갈 간부를 물색했다.
이같은 내정방침이 얼마나 확고했던지 재무부 고위관계자는 공개적으로 『이제 기획원서 누가 오느냐가 초점』이라 밝힐 정도였다.
그러나 사단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부총리까지 직접 나서서 설득했지만 기획원 국장들은 한사코 『내가 왜 가느냐』고 버텼다.
시간은 자꾸 가고 임자는 나서지 않고… 마침내 부총리는 부처간 인사교류를 포기,현직 국장 5명을 연쇄 교체하는 것으로 인사를 매듭지었다.
일견 대수롭지 않은 것 같은 이번 인사가 뭘 그리 문제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인사권자인 부총리의 방침을 집단 거부해 무산시킨 기획원 간부들의 자세는 공직사회에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항명」의 성격이 완연하다.
더욱이 일각에선 기획원 간부들이 유독 특정지역 출신이 많은데다 하필 당초 내정된 재무부 모국장이 또다른 특정지역 출신이어서 그의 요직 등용을 막으려는 조직적 반발기미마저 보인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만에 하나 이같은 지적이 사실이라면 이는 조선 선조임금때 정5품에 불과하나 장래가 보장된 이조전랑 자리를 둘러싸고 동인과 서인이 반목,사색 당쟁의 씨앗을 만든 역사적 과오와 너무 흡사하다.
어쨌든 『국장 인사조차 마음 먹은대로 못할 만큼 령이 서지 않는 경제팀이 남은 기간 뭘하나 제대로 하겠느냐』는 정부 고위관계자의 촌평에 온 몸이 섬뜩해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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