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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에 본 민족정책/밖에서 본 한국(한상진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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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에 본 민족정책/밖에서 본 한국(한상진칼럼)

입력
1992.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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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새로운 강국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8·15 광복절이 다가온다. 밖에서 느끼는 심정은 더 착잡하다. 냉전체제가 종식되면서 세계정세는 물론 동아시아 정세도 급격히 변하고 있건만,우리는 아직 구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국내 정치는 계속 표류하고 있고 6공화국이 자랑해온 대북 정책도 냉전의 유제에 묶여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황영조의 올림픽 쾌거가 다행스럽다고나 할까 일본에 대해서만은 결코 지고 싶지않은 우리 국민의 강한 도전심,열망,긍지를 생각할때 이번 마라톤 금메달은 사실 국민적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일본 모리시타와의 아슬아슬한 선두 접전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마지막 2㎞를 앞두고 우리 선수가 시원스럽게 앞서가기 시작했을때 실로 통쾌한 희열,감동,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스포츠는 스포츠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경험에서 우리가 암시받은 것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광복이후 무수한 역경을 딛고 올라서면서 우리는 이제 무엇인가 우리나름의 다양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제대로 포착하는 이론이 있고 이를 효율화시키는 조직방식,합리적 지원체계,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자원을 존중하고 결합시키는 지도럭이 구비된다면 많은 분야에서 세계 첨단의 훌륭한 결실을 맺을 수도 있으리라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자세로 8·15가 남긴 미완의 역사적 과제,즉 민족국가의 완성을 향한 의지를 되새길 때가 아닌가 한다. 마라톤에서만이 아니라,한반도에 평화와 번영,통일을 이룩하는 과제에 있어서도 과거의 편견이나 타성,냉전논리에 집착하지 않고 우리안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활용하는 자세로 획기적 발전을 이룩할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 현실은 아직 그렇지가 못하다. 때문에 8·15를 맞는 심정이 착잡해진다. 남북이산가족 방문이 무산된 것도 서글프지만 핵이다 뭐다하여 서로 전제와 단서를 달아 일을 어렵게 만드는 방식이 꼭 국내정치를 닮은 것 같다. 말로는 좋은 말을 다하면서도 실제로는 역사의 전진을 방해하는 보수세력,펜타곤에 한 다리를 걸친채 미국 강경우파의 눈으로 우리문제를 보는 세력이 아직도 강한것 처럼 보인다.

우리의 대북정책은 외형상의 전진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딜레마를 안고 있다. 말로는 북한사회의 개방을 강조하지만,실제로는 그 개방을 유도하고 촉진시킬 수 있는 정책수단이나 외부지원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차단 시킴으로써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동기와 타성이 안보관료체계안에 깊숙이 내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민족정책의 일관된 철학,원칙,리더십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미국이 더이상 아시아의 경찰일 수 없다고 논한 8월10일자 뉴욕타임스 사설은 지역안보를 위한 일본의 역할증대를 당연시 하면서도 일본의 군사력 증대가 주변국,특히 남한과 중국의 긴장을 고조시켜 공동대응을 촉진시킬 지 모른다는 흥미있는 진단을 보이고 있다. 일본경제의 높은 해외원료 의존도,세계시장의 블록화경향,냉전체제의 붕괴 등으로 인해 아시아를 겨냥하는 일본의 군사력 증대는 피할 수 없고 미국과의 제2의 전쟁도 다가오고 있다는 논의마저 있다. 종래의 냉전체제 하에서는 가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새로운 발상이 밖에서 다양하게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역시 민족문제를 보는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 같다. 하나 주면 하나 받는 식의 옹졸한 게임을 북한과 계속할 것이 아니라,체제경쟁에서 우리가 이미 승리했다는 자신감으로 북한이 개방되면 될수록 체제의 다원화와 함께 민주화는 물론 민족전체의 번영과 공존이 촉진된다는 인식위에서 대범하게 행동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북한 접근을 우리가 막을 이유가 없고 설사 북한이 남북이산가족 방문을 무산시켰다 해도 우리의 경제지원을 지연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북한에도 과연 남한처럼 개혁세력이 있는가 하는 것은 오늘날 논쟁적 쟁점이지만,우리로서는 보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개혁 엘리트가 성장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이들의 입지를 강화시켜주는 일관성있는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작년 가을 콜럼비아 대학에서 열린 비공개 교수 세미나에 초청연사로 온 미 국무성 고위관리는 남한 대북정책의 비일관성을 매섭게 꼬집은 적이 있다. 대통령의 말과 정부의 행동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얼마전 우연히 그를 다시 만났을 때,그 나라의 발표를 상기시키면서 오늘의 상황을 물었는데 과거보다는 일관성이 훨씬 커졌다는 대답을 들은 적이 있다.

그의 판단기준이 무엇이었건간에 그동안 우리 사회에 성장한 근대적 세력의 변화욕구에 부응하려면 우리의 대북정책은 민족적인 관점에서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번영,통일을 진작시키는 방향으로 훨씬 더 일관되게 나가야 하리라 본다. 외풍에 흔들리거나 과거의 냉전논리에 편승함이 없이 우리의 잠재력을 올바로 잃고 표현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8·15를 맞이하여 주역과 조역,연출이 잘 조화된 황영조신드롬을 민족문제에 연결시켜 생각해 보는 묘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서울대 교수·뉴욕 콜럼비아대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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