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해녀 부모의 강인함 받아/가난·무관심의 나날 끝내 이겨/90년 경부역전대회 MVP·올 백상체육대상 수상『뛰다가 죽더라도 꼭 한국 마라톤 56년의 숙원을 풀고야 말겠다』
황영조선수(22·코오롱)는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코스의 막바지 고갯길을 달리며 어금니를 악물었다. 황 선수는 그 옛날 아테네의 마라톤 전투에 참가한 병사를 생각했다.
42.195㎞를 달려 승전보를 전하고 전사한 그 병사처럼 자신도 메인스타디움에 제일 먼저 들어가 조국과 전세계에 한국인의 승리를 전하고 쓰러지고 싶었다. 또 56년전 베를린서 우승을 하고도 일장기를 단 가슴을 펴지 못했던 손기정선배의 아픔도 생각했다.
황 선수의 마라톤 인생은 56년전 같은날(8월9일) 일장기를 달고 첫 금메달을 따낸 손기정옹 만큼 설움과 한의 세월이었다. 손옹이 나라 잃은 설움을 삼켜야했다면 황 선수는 가난과 무관심에 눈물을 흘려야했다.
고향인 강원도 삼척군 근덕면 초곡리에서 내땅 한뼘 없이 산 아버지 황길수씨(52)와 어머니 이만자씨(54)는 2남2녀의 자식들을 위해 주인없는 바다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고기잡이를 나간 아버지,해녀로 바다에 자맥질을 하루종일 하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어린 세동생과 바닷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튼튼한 심장을 물려받은 황은 이때부터 거센 바닷바람을 안고 모래사장을 뛰었다.
그외에는 달리 할 것이 없었다. 가슴이 터지도록 뛰고 나면 배고픔도 잊을 수 있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삼척시에 있는 근덕중에 입학해서는 사이클을 타기 시작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두바퀴가 2㎞나 되는 긴거리를 통학해야 하는 황 선수에겐 부러운 존재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고 호통을 쳤다. 위험한데다 운동보다는 못배운 한을 아들을 통해 풀어보려는 마음에서였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서도 강릉 명륜고에 진학하자 곧바로 육상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반대를 알고 있지만 우선 장학금이 주어져 어려운 집안살림에 보탬이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매일 강릉시내 야산을 10㎞씩 오르내리는 훈련을 하면서 어릴때 다져 놓았던 다리힘이 빛을 발했다.
2학년때인 88년 경험삼아 처음 출전한 한국일보사 주최 경부역전마라톤서 두각을 나타내 우수 신인상을 받았고 90년에는 최우수 선수로까지 뽑혔다.
이 대회는 1천m나 3천m의 중장거리 선수로 나서 볼까 생각했던 황 선수에게 마라토너의 끔과 자신감을 갖게 했다. 지난해 11월 일본 벳푸마라폰 참가를 앞두고 경부역전대회에 참가,소구간 우승을 차지하며 컨디션을 다졌다.
고교졸업후 황 선수는 마라톤 인생에서 오늘이 있도록 해준 정봉수감독(56·코오롱)을 만나 일취월장했다.
선수들의 장점을 철저히 레이스에 적용시키는 정 감독은 황 선수의 엄청난 폐활량과 강한 다리를 갈수록 언덕이 많아 어려워지고 있는 세계마라톤 추세에 활용할 수 있게 했다.
그런 훈련으로 지난해 7월 영국 세필드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언덕이 많고 비포장으로 울퉁불퉁한 길을 2시간12분40초로 거뜬히 달려 우승을 따냈다.
황 선수로선 마라톤 풀코스 완주 2번만에 이룬 영광이었다. 이 공로로 황 선수는 지난 1월 한국일보사 제정 백상 체육대상을 수상했다.
7개월후인 지난 2월 또다시 일본 벳푸마라톤서 세계제패에 도전했다. 정 감독과 단둘이 대회에 참가한 황 선수는 국내에서 관심조차 보이지 않은 가운데 2위로 골인했고 2시간8분47초의 기록은 한국마라톤 10년 숙원인 「마의 10분벽」을 깨는 신기록이기도 했다.
그 공로로 받은 1억원의 포상금으로 배고팠던 한도 달랬다.
1백68㎝의 키,56㎏의 체중이 마라톤 선수론 더없이 적격인 황 선수는 이번 우승이 자신의 정신력과 올림픽 기간내내 절에서 우승을 빌며 두문불출한 어머니의 정성이 함께 어우러진 결과라고 말했다.
황 선수는 금메달을 목에 걸고 나오면서 『이제는 세계기록 경신을 위해 뜀박질을 해야한다』며 자신과의 싸움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이대현기자>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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