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연 총재 힘 막강… 고르비 측근/옐친 급진책 좌초상태,대안 없어/혼돈 정치판도에도 “새바람”【베를린=강병태특파원】 러시아의 급진 경제개혁이 좌초위기에 몰린 가운데 온건개혁파의 리더이자 고르바초프의 측근이었던 아르카디 볼스키 러시아 산업연맹 총재(60)가 유력한 새 총리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과 경제주간지 등은 최근 볼스키의 총리 승계 가능성을 전망하는 기사와 인터뷰 및 프로필 등을 일제히 게재,그의 부상과 향후 역할에 주목했다.
볼스키는 소련 붕괴후 과도기 러시아정국의 막후 핵심주역으로 간주돼 온 인물이다. 그가 이끄는 산업연맹은 전제 군수산업체 등 2천여 국영기업 대표자들의 이익대표단체로 소련체제하에서 부터 강력한 정치경제적 발언권을 행사해 왔다. 특히 정치적 권위가 추락하고 있는 러시아정부 아래서는 실물경제 및 행정경험이 없는 가이다르 총리의 급진경제개혁팀에 최대 견제세력으로 작용해 왔다.
볼스키는 그동안 가이다르 총리팀이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 경제학자들의 권고를 추종,전면 가격자유화 등을 서둘러 경제혼란을 야기한 것을 비판하는 점진개혁론자들의 배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경제혼란이 가속되고 이에 따라 옐친 대통령의 「친미」 성향에 대한 비판이 대두하는 상황에서 「진보적 보수세력」들의 압력을 주도,가이다르 총리의 급진개혁 노선을 사실상 와해시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옐친 대통령의 지시로 새로 마련된 「경제개혁 심화계획」은 명칭과는 달리 급진개혁시책의 대폭적인 완화를 기조로 하고 있다. 이 계획을 작성한 예프게니 야신은 바로 산업연맹의 수석경제연구원으로 「볼스키의 대리인」이다.
이와 함께 옐친은 최근 블라디미르 슈메이코 등 3명의 산업연맹 회원들을 부총리로 임명,볼스키의 영향력 증대를 확인케 했다.
옐친이 늦어도 가을이전에 겸직하고 있는 정부 수반자리를 내놓으면 실질적 행정권을 장악할 총리에 소장 이론가인 가이다르 대신 볼스키가 임명될 것이 확실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옐친은 볼스키에게 개혁정책 주도역을 맡기는 것을 기꺼워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러시아 전체 공업생산력의 73%를 차지하는 막강한 산업연맹 산하 국영기업들의 협조없이 경제개혁 추진이란 어렵고,특히 급진개혁이 좌초상태에 빠진 상황에서는 대안이 없다는 분석이다.
볼스키는 향후 경제개혁의 방향에 관해 「국가의 조정역할」을 강조할 뿐 급진개혁의 전면 수정을 주장하지는 않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국영기업 민영화에 대해 『7백50만명의 최고 기능인력이 종사하는 전략 군수산업의 민영화는 원천적으로 어렵다』고 강조한다. 또 그는 지난해 독일방문때 『서방차관의 대부분이 소비재 수입으로 낭비됐다』며 서방지원 의존에도 부정적 시각을 보였다.
경제정책분야를 넘어 한층 주목되는 것은 볼스키의 과거 정치행로 및 역량을 감안할 때 혼돈상태의 정치판도에 적잖은 변화를 일으킬 것이란 분석이다.
모스크바 자동차공장의 금속기술자에서 안드로포프 서기장의 수석보좌관으로 입신했던 볼스키는 고르바초프 시절에는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분쟁 해결특사로 파견될 정도로 측근에 있었다.
90년 고르바초프의 후광을 업고 막강한 산업연맹 총재에 오른 그는 체제변화 와중에서도 산업연맹과 자신의 영향력을 그대로 유지했다.
최근들어 그는 산업연맹 조직을 배경으로 「전러시아 개혁연합」이란 정당을 창설했다. 또 민족주의 진영의 대표인 루츠코이 부통령과 초당적인 「시민연합」을 결성하고 「러시아 타임스」란 일간신문 창간도 추진하는 등 활동영역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다.
옐친 주도의 친미적인 급진개혁세력의 퇴조기미와 함께 진행되고 있는 볼스키의 부상은 점진개혁세력의 대부격인 고르바초프의 정치복귀 움직임과도 연결지어 주목해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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