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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캤다” 온동네가 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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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캤다” 온동네가 열광

입력
1992.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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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 멋진 설욕… “장고만세”/박장순선수집7일새벽 박장순선수(24·삼성생명)가 금메달을 움켜쥐는 순간 충남 보령군 청소면 진죽리 398 박 선수의 집 안방서 손에 땀을 쥐며 TV를 지켜보던 가족·마을사람 등 10여명은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려 조그만 시골마을이 떠나갈듯 했다.

『장고 만세』

박 선수 별명을 외치는 이웃주민들 옆에서 어머니 임숙자씨(50)는 조용히 합장하며 감격의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 박종석씨(57·회사원)는 이웃들에게 『거보쇼. 내 아들이 분명히 금메달을 딴다고 장담했지』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박씨는 묘비석을 수출하는 중소업체인 한국석재에 다니며 논 1천여평도 함께 경작하며 그런대로 살림이 넉넉한 편이다.

박 선수는 「장고」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의리와 의협심이 강해 어릴적부터의 골목대장 노릇을 했다.

특히 힘이 세 서너살 위 형들도 번쩍들어 누일 정도였다. 3형제 가운데 둘째인 박 선수가 운동을 시작한 것은 국교 3년때.

과거 씨름선수로 군대표까지 지낸 아버지의 권유로 씨름을 시작했던 박 선수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레슬링으로 종목을 바꾸었다.

서울올림픽에서 아깝게 은메달에 머문 한을 푼 박 선수는 지난해 한국체대를 졸업하고 현재 삼성생명에 소속돼 있다.

고향에 내려오면 부모님과 함께 꼭 절에 다녀올 정도로 독실한 불교신도답게 박 선수는 「정심」을 좌우명으로 삼고있다.

동네에서 효자로 소문난 박 선수의 취미는 경기가 끝난뒤 짐을 싸들고 무전여행을 떠나는것.

바르셀로나 카탈루냐체육대학 체육관에 애국가가 울려 퍼진 이날 새벽 박 선수의 집앞 마당에서는 마을주민 50여명이 둘러앉아 막걸리 잔을 건네며 밤이 새도록 축하잔치가 이어졌다.<보령=전성우기자>

◎역경딛은 쾌거… “은도 장하다”/김종신선수집

레슬링자유형 48kg급 결승전에서 금메달 기대주 김종신선수가 아깝게 은메달에 머무는 순간 전남 함평군 함평면 내교리 328 김 선수의 고향집은 환호와 박수,아쉬운 탄식이 엇갈렸다.

전날 하오 5시 벌어진 조수위결정전 장면부터 줄곧 TV로 지켜본 홀어머니 노순금씨(64)와 형수 황혜숙씨(33)는 아들과 시동생의 아쉬운 은메달에 말없이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노씨는 『종신이가 바르셀로나로 떠난뒤 동네 주민들과 좋은소식을 기다려왔다』며 『당장달려가 고군분투한 아들을 안아보고 싶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김 선수가 레슬링을 시작한 것은 82년 함평중에 입학하면서 부터.

가난한 농촌가정의 4남1녀중 차남으로 태어난 김 선수는 중학교1학년때 아버지가 중풍으로 몸져눕고 어머니마저 생활비 마련을 위해 서울로 떠나 학비 마련조차 어려웠지만 체육특기자로 발탁돼 운동에 전념할수 있었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말수가 적은 김 선수는 억척스런 집념으로 연습벌레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83년 아버지를 여의고,89년에는 가장이던 형 운채씨(당시 33세)마저 교통사고로 숨진 역경을 매트위에서 삭이고 오늘의 영광을 안았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식당에서 주방일을 돌보며 매달 20만원의 생활비를 대왔던 어머니 노씨는 지난달 28일부터 고향집에 내려와 아들의 승전보를 기다려왔다.

노씨는 13평도 채안되는 좁은 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느라 바빴지만 동네주민들이 권하는 막걸리잔을 받아들고 오랜만에 시름을 잊었다. <함평=김종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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