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색깔 바랜 88년 2월의 한국일보 신문철을 들춰본다. 5공화국을 보내고 6공화국을 맞는 그해 2월의 신문지면에는 곳곳에 기대와 설렘이 스며 있다. 지나가는 시대는 권위주의 시대요,새로 맞는 시대는 민주화시대로 규정지어 있음도 지면에서 읽을 수 있다.25일자에는 전날인 24일 저녁 힐튼호텔에서 있은 전두환 전임대통령의 이임사가 지면을 크게 장식하고 있다. 26일자에는 25일의 13대대통령 취임식에서 행한 노태우 신임대통령의 취임사 내용이 대서특필되고 있다.
이 이임사와 취임사를 다시 읽으면서 눈에 띄는 대목은 「평화적인 정부이양」에 관해 언급한 부분이다.
역사의 전면에서 퇴장하는 전임대통령은 단임실천으로 평화적인 정부이양의 대국민약속을 지킨 것을 자신의 가장 큰 기쁨으로 치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신임대통령은 그같은 선례를 남겨준 전임대통령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다. 민주주의의 요체인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정부수립후 꼭 40년만에 이뤄지는 것이기에 어떠한 찬사도 아깝지 않다는것이 그때의 분위기였다.
그로부터 4년6개월여가 흘렀다. 그때의 신임대통령도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떠나야 할때가 불과 6개월여밖에 남지 않았다. 두번째의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 당시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어떤 잣대로 재단할 수 있을까. 과연 진정한 평화적인 정권교체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5공과 6공의 교체는 헌법에 따라,그리고 무력에 의하지 않은 교체라는 점에서는 분명 평화적인 정권교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후에 진행된 정치상황은 평화적인 정권교체의 의미를 반감시키고 있다. 퇴임후 전국을 마음대로 여행하고 싶다던 전임대통령은 유배생활과 청문회의 불명예를 겪었다. 해외 망명의 압력도 겪어야만 했다.
전임지도자의 유배와 해외망명은 흔히 혁명적 상황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서 5·6공의 교체는 결코 완성된 평화적 정권교체라고는 평가할 수 없다. 반쪽짜리의 평화적 정권교체일 뿐이다. 5·6공의 교체에 대해 40년만에 이룩한 한국 민주화의 새장이라고 했던 그 당시 어느 정치학자의 평가는 불과 몇년만에 빛이 바래게 된 셈이다.
첫번째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처럼 미완성으로 끝나게 된데대해 5공측과 6공측은 서로 다른 논리를 펴고 있다. 6공측은 5공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각종 비리를 애당초 잉태하고 있었다는 점과 여소야대의 상황논리를 들어 불가피했음을 강조한다. 이에대해 5공측은 전임자를 격하시키기 위해 치밀히 계산된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며,이는 정치적 신의를 저버린 것이라는 주장이다.
양측의 이러한 주장은 결국 감정싸움으로 번져 6공 출범후 지금까지 5·6공의 갈등 현상으로 국민에게 깊게 투영되고 있다.
전임자와 후임자,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권력집단간의 갈등은 민주주의제도가 정착한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최근 영국 정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처 전 총리의 메이저 현 총리에 대한 공개비난도 전임자와 후임자간에 빚고 있는 갈등현상의 하나이다.
자신이 키워준 메이저 총리가 홀로서기를 하려는데 대해 강한 불만을 품은 대처 전 총리가 「메이저리즘의 불가」를 선언하며 비난의 포문을 연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5·6공간의 갈등은 이와는 다르다는데 문제가 있다. 영국에서 처럼 정책이나 노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여권내의 권력다툼에서 비롯된것이 5·6공의 갈등이기 때문이다.
5·6공의 갈등이 우리의 정치문화와 일상생활에까지 좋지 않은 교훈을 남기게 된 것도 이런 까닭에서이다.
권력다툼에서 비롯된 5·6공 갈등은 그렇지 않아도 깊어져가는 정치에 대한 불신의 골을 더욱 깊게 하는데 한몫을 했을 뿐이다. 적도 동지도 없는 것이 정치라고 하지만,5공때 한배를 탔던 사람들이 서로 갈라져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는 국민들은 정치를 과연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또 이러한 현상은 자라나는 세대에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 것인가. 정치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위한 싸움의 장으로만 인식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제 또 한번의 정권교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앞으로의 정권교체는 우리 헌정사에 어떤 모습으로 기록될 것인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 나라 정치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 만큼이라는 것이 정치학의 분명한 전리이다. 역으로 그 나라 정치의 수준은 그 나라의 국민의 수준을 지배한다는 것도 분명한 진리일 것이다.<편집국장 대리>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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