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정가 거센 회오리/극우 황민당 총재 아사히신문서 폭로/다케시타 전 총리 직접 관련… 의혹 증폭【동경=문창재특파원】 일본의 우익단체와 폭력단이 정계 실력자들과 끈끈한 연대관계를 맺고 있음이 폭로돼 자민당의 참의원선거 압승 축제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이 사건에는 이번 선거에서 가장 많은 당선자를 낸 다케시타(죽하등)과 오너인 다케시타 전 총리가 직접 관련돼 의혹은 증폭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아사히신문은 극우단체 일본 황민당 총재와의 인터뷰를 근거로 87년 이 단체의 다케시타 총재 선출방해운동이 광역 폭력단 이나가와(도천)회 두목의 청탁으로 중단됐었다고 보도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나가와회 이시이(석정진) 회장이 동경 사가와규빈(좌천급편) 와타나베(도변광강) 사장(58·구속중)으로부터 청탁을 받아 당시 황민당 총재였던 이나모토(도본호옹·작고)씨에게 다케시타 총재 선출반대운동 중지를 요구,즉시 운동이 중지됐다는 것이다.
이같은 「은혜」를 빚으로 생각한 와타나베 사장은 그후 융자 또는 채무보증 명목으로 2천5백억엔을 이시이 회장에게 흘려 주었다. 사가와사건을 수사중인 검찰도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우익단첵 간부들을 불러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고쿠(사국)지방 다카마쓰(고송)시에 본부를 둔 황민당은 87년 1월부터 다케시타씨를 성토하기 위해 가두 선전방송차를 동원해 동경 중심가에서 『다케시타를 자민당 총재로 뽑자』고 떠들기 시작했다. 극우단체의 이같은 행위가 총재선거에 결정적인 장애가 된다고 판단한 다케시타 진영은 자파소속 의원들과 경찰까지 동원해 이를 막으려 했다. 그러나 총재선거가 일주일후로 임박한 10월초까지도 가두 선전활동은 계속됐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활동을 중단한 경위를 현재의 황민당 총재 오시마(대도용민·41)씨는 아사히신문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가두 선전활동의 돌연한 중단 이유는.
『87년 10월2일 고 이나모토 총재가 아카사카 프린스호텔에서 이나가와회 이시이 회장과 만났다. 이시이 회장이 「다케시타를 다나카(전중각영) 전 총리 자택에 보내 병문안과 총재 출마인사를 하도록 하겠으니 운동을 중지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나모토 총재는 그날중 부하들을 데리고 동경을 떠났다』
이시이 회장의 약속은 이행됐는가.
『다케시타씨는 10월4일 다나카 저택을 찾아갔으나 집부근에 보도진이 너무 많아 돌아갔다. 우리가 「약속과 다르지 않은가」고 항의했더니 이틀후 다나카 저택방문이 실현됐다』
이시이 회장은 누구부탁으로 운동중지를 요구했나.
『그의 뒤에는 와타나베 동경 사가와 사장이 있었다. 이시이 회장은 「의리있는 사람」의 부탁이라 했다. 당시 와타나베 사장은 많은 정치인들과 접촉하면서 「정치는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정치인의 부탁을 받고 이시이 회장과 의논한 것이 아닐까 한다』
다케시타 반대운동의 동기는.
『국민의 모범이어야 할 자가 다나카 총리가 병으로 쓰러져 궁지에 빠졌을 때 다나카파 국회의원들을 모두 데리고 나갔다(다케시타파를 만든 일을 말함). 불난 집의 도둑이다. 반성을 촉구할 필요가 있었다』
운동중지 요구경위는.
『7월께부터 폭력단 관계자가 찾아와 중지해달라고 말했고 경찰의 압력도 있었다. 경찰의 움직임은 8월중순부터 뚝 끊어졌다』
정치가들은 동향은.
『폭력단 다음으로 정치가들이 찾아왔다. 경찰의 움직임이 끊어진 후로는 그들이 뛰기 시작했다. 그 건으로 당시의 자민당 현직의원 3명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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